「우리나라 국민 10명중 4명은 정신질환자다」.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된 정신보건법안의 규정대로라면 이런 결론이나온다. 전체 국민의 40% 이상이 정신질환자로 분류되는 것이다.정신질환의 범위가 흔히 말하는 정신병외에 인격장애를 비롯한 적응장애 약물중독 신경증(노이로제) 등의 비정신병적 정신장애까지포함한 것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심리학계와 의료계는 인권 사각지대가 많은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인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국회는 문제가 되는 조항을 그대로 둔 채 법 제정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학계가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정신질환자의 범위가 광범위한데 비해 후속 조항은 심한 정신병 환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정신병원입·퇴원에 관한 규정들로만 이뤄졌다는 것이다. 가벼운 정신질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조항없이 정신질환자의 범위만 넓혀놔 결과적으로 인권침해 가능성만 높였다는 주장이다. 아무나 정신질환자로몰려 정신병원에 입원될 수 있는 소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민법상의 피보호자를 정신질환자로 신고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 보호자만이 아니다. 정신과전문의나 경찰관도 정신질환자로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진단을 시도지사에게 신청할 수있다. 반대로 시도지사가 정신과전문의 2명의 동의만 얻으면 정신질환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정신병원에 수용할 수 있다.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신과전문의의 동의만 있으면 정신병원에 입원될수 있는 것이다.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은데도 정부와 국회가 정신보건법을 통과시키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민 정신건강에 대한 법이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신보건법을 제정해야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수있다고 주장한다. 법안에 인권침해 소지가 높은 강제입원 규정을넣은 것도 중증의 정신병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해서 보건복지위는 「지금은 문민정부인데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정신과전문의의 진단이 있어야 하는 만큼 인권침해 우려는 지나친 걱정」이라는 입장이다.보건복지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법은 정신질환자를 대규모 정신병원에 수용함으로써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만 한다. 이는 지역사회와 연결된 소규모 정신보건센터육성에 주력하는 선진국의 정신보건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다. 카톨릭대학 심리학과 이영호교수는 『정신질환자가 사회로부터 장기간격리 수용되면 정신질환이 심화되고 사회에 복귀하기가 어려워질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 번 입원하면 영원히 퇴원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의 동의만으로 강제 입원 가능정신질환을 치료할 정신과전문의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정신과전문의와 수련중인 전공의의 숫자는 1천3백98명(94년 자료). 인구 10만명당 정신과전문의의 수는 2.2명으로 일본(7.3명)영국 (7.6명) 미국 (9.2명)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번 법안은 모든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정신과전문의에게만 일임하고 있다. 학계는 1천3백98명의 정신과의사로는 중증의정신질환자를 치료하기에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부족한 정신과전문의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출신의 정신보건심리사나 정신보건간호사에게도 가벼운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상담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정신보건법. 학계와 의료계가 이 법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침해 우려와함께 시대를 거스르는 정신보건 정책을 걱정하는 것이다. 언젠가복지재정이 넉넉해져 「수용소」같은 대형 정신병원 체제에서 벗어나 정신질환자를 사회에 동참시키는 지역사회 정신보건 체제로 옮겨졌을 때 지금 법안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보건법을 만들려면 좀더 시간을 두고 제대로 하자는 것이 학계의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