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컴퓨터(PC) 업계 입장에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은 호시절이었다. PC업체들은 「돈을 긁어모은다」는 말이 어울릴만큼 많은 이익을 냈다.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PC업체들은 시련에 빠져들고 있다. 신문제목만 봐도 이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가정용PC를 가장 많이 팔고 있는 패커드벨도 예외가 아니다. 이 회사는올들어 자금사정이 악화돼 고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품 주문을취소한 적도 있다고 한다.AST리서치는 한때 손꼽히는 PC업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적자기업이다. 디지털 이큅먼트의 PC 사업부문도 적자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IBM은 지난해 PC 사업부문에서 어림잡아 1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미국 컴퓨터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부문은 가정용PC이다. 그런데 요즘 이 부문마저 성장세가 예전같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가정용 PC시장 성장률은 40%를 상회했다. 그러나 올해는 15~20%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언제가는 PC도 다른 공산품과 똑같은 길을밟게 된다고 예상했다. 많은 메이커들이 여기저기서 부품을 사들여단순히 PC를 조립함으로써 극히 작은 이윤을 따먹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PC에서는 사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사무용 PC의 이윤은 가정용 PC의 2배에 달한다.◆ 변덕심한 고객취향 맞춰야사실 대다수의 대규모 PC업체들은 지금도 번창하고 있다. 최대의PC업체인 컴팩의 경우 92년이후 이윤이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컴팩이 올해 10억달러 이상의 순익을 낼 것으로 추산한다. 델컴퓨터나 게이트웨이 2000도 올해 사상최대의 이윤을 기록할 전망이다.그러나 가정용시장이 커짐에 따라 PC산업 판도도 확연히 달라지고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98년에는 가정용시장이 업무용시장을 능가하게 된다. 이때를 겨냥해 휴렛패커드 컴팩 IBM 등대형업체들이 가정용 PC(일명 「홈 PC」) 전문업체인 패커드벨을뒤쫓기 시작했다. 이런 업체들은 업무용에서 번 돈을 가정용 시장을 차지하는데 쏟아부을 것이다.가정 고객들은 기업 고객에 비해 변덕이 심하고 요구사항도 많다.기업 고객들은 화면이 컬러이고 용량만 충분하면 만족한다. 하지만오락을 좋아하는 가정 고객들은 사운드 그래픽 비디오가 충분히 뒷받침되는 PC라야 지갑을 연다. 펜티엄 PC가 기업보다 가정에서 잘팔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가정 고객이 원하는 PC를 제때에 공급할 수 있는 메이커라면 앞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없는 업체엔 어두운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유행에 뒤진 PC를 팔려면 가격을 대폭 깎아줘야 한다. 그만큼 채산성이 악화될게 뻔하다. 패커드벨이 이런 운명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패커드벨은 올해 가정 고객들이 70MHz급 펜티엄 PC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100MHz급 PC를 요구했다. 게다가 컴팩이나 IBM과 같은 대형사들이 PC 가격을 낮춰 패커드벨의 강점을 약화시키는 한편 패커드벨의 약점인 품질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패커드벨로서는 올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재미를 보지 못하면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경쟁업체들은 패커드벨이 가격을 올리든지 도태하길 은근히 바라고있다. 그래야만 가정용 PC에서도 채산성이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바람이 성취될지 예측하기엔 아직 이르다. 분명한 것은이제 PC산업에서도 고객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하는 일이 기술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는 사실이다.「The end of the good times?」 Dec. 15,1995. ⓒ The Economist,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