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아서는 사업할만 합니다」. 김영삼 정부 출범초 중소기업들은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입을 모았다. 새정부 들어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지원조치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정부가중기구조개선사업을 위해 1조4천억원을 푼다고 하면 전경련은 기협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화답하고 은행은 꺾기를 억제한다고 화음을맞췄다.그러나 2년이 지나면서 이같은 장미빛 꿈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말많은 제사에 음복할 게 없다」는 식으로 중소기업대책에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발표만 요란했지 내세워지는대책이라는 것은 재탕에 삼탕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올들어서만도 중소기업대책은 수없이 발표됐다. 지난2월의 「 중소기업지원 9대시책」 5월의 「중소기업지원을 위한 상업어음할인 활성화대책」 8월의 「중소사업자에 대한 자금지원방안」과 12월8일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의 중소기업지원방안 마련등…. 이같은정책이 발표대로 시행됐다면 더 이상의 대책은 필요없을지 모른다.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다. 심하게 말해 화려한 대책은 발표용이고실제 시행여부는 「나몰라라」로 일관된다.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이 이어지고 중소기업 부도가 줄어들지 않으면 「회의」를 소집해중소기업대책을 발표하고 넘어간다.◆ 특별법 입법과정서 알맹이 빠져 유명무실중기지원 9대시책 골격의 하나인 지역신용보증기금 설립이 차질을빚고 있는게 대표적이다. 올해안에 경남 광주등 2∼3개 지역에 신보를 설립한다고 발표했으나 중앙정부의 예산을 일체 지원하지 않고 지방금융기관의 기존신용보증기금 출연금 전환도 불허키로 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8월9일 김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마련됐던 「중기지원 특별법」도 입법과정에서 알맹이는 다 빠져 유명무실해졌다. 중소기업특별세를 만들어 1조원 규모 중소기업육성기금을 신설하는 핵심조항이재경원 등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8월10일 재경원이 마련한 「중소사업자 지원방안 수립계획」도 마찬가지다. 이때 지원의 골자였던 하도급대금 결제방식의 개선은 △어음제도 폐지 △어음만기를 60일에서 45일로 단축 △현금결제확대등에서 현금결제확대유도로 국한되면서 흐지부지됐다. 더욱이 현금결제를 확대하더라도 중소기업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현금결제를 잔뜩 기대했으나 중소기업만 골탕먹는나쁜 관행만 생겼다. 과거에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나눠받아 자금이 융통됐는데 현금결제를 한답시고 납품이 다 돼야 대금을 준다』(미금시에서 자동제어시스템 부품을 만드는 C씨)는 것이다.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책이 실효가 없는 반면 규제완화와 자유경쟁을 내세워 추진되는 중소기업고유업종해제등으로 인한 부담은늘어만 가고 있다. 페인트 PE랩 정수기 용접기 등에서 대기업의 중기잠식이 심화돼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중소기업이 애써 시장을 개척해 놓으면 대기업이 막강한 자금력과판매조직을 동원해 뒤늦게 뛰어든다. 『WTO출범으로 중기정책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종전의 보호우선에서 탈피, 경쟁지향적으로전환돼야 한다. 이에따라 중기 고유업종에 대한 대기업 진입금지를철폐하거나 축소해야 한다』(이규억 산업연구원장)는 논리에 밀려선 중소기업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중소기업에 자금을 퍼붓는 정책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금살포식 중기지원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아무리 돈을 배정해도 그 효과는 돈이 소진되면 없어지고 결국 정부에 대한 의존심만 키우기 때문이다. 『1회성·명분성 지원책은효력이 없다. 원금상환을 3년간 동결하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책이필요하다』(박상희 중소기업중앙회장)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떠나가라 김영삼, 돌아오라 전두환」. 현정부 출범초 박수를 보내던 중소기업 사장들이 최근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구속수감될 만큼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는 전대통령이지만 중소기업대책에 있어서만은 유망중소기업제도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으로부터는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고 일단 공표된 정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시행해야 한다. 중기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셈이다.김영삼 정부의 중소기업 대책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