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의 터부는 인간적 현상이다. 일부 고등동물들에서 근친간교접을 피하는 현상이 관찰되고는 있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것을 터부시하고 있을 뿐이다.지난봄 캐나다의 한 가족이 근친정사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제아무리 성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도 근친상간의 터부는 엄격하게 유지된다. 심지어 동성 연애자들에게 근친상간도 하느냐고 물으면 『우리가 짐승이냐』는 히스테리컬한 항변을 듣게 될 것이다.전문가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섹스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과 근친간의 섹스를 터부시하는 것을 「인간 성의 이중적 격리」라는 그럴듯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말하자면 일정한 「성의 영역」이 있어서 여기서만큼은 성행위가금지된다는 것이다. 일부 관광지에서 라이브 쇼를 만들어 파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섹스는 은밀한 것이다.왜 인간은 근친상간을 터부시하게 되었을까. 물론 하늘로부터 고상한 도덕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섹스는 설자리가 없다. 다행히 결론은 근친상간 금기가 도덕률의 결론이 아니라도덕률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우생학적인 고찰따위도 어림없는 얘기다. 우생학은 현대과학의 결과물일 뿐이다.근친상간이 터부시된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가족은 최소의 생산단위다. 그리고 생산증대를 위해서는 더 많은인구(식구)를 확보해야 한다. 물론 먹는 입보다는 먹일 수 있는 일꾼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근친상간은 노동력(인간)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는 형편없이 열악한 방식이다. 만일 딸이 아비와 상간을 하고 그 결과로 자식을낳는다면 아비는 모두 3명을 먹여살려야 한다. 이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생산방식이다.물론 한 집안에 생산능력(출산능력)이 있는 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남자의 사냥능력과 여자의 생산능력 모두를 고루 갖춘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외부에서 여자를 공급받는 것이 가장확실한 방법이다.더구나 결혼제도를 통해 인간은 상품과 문화의 교환이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여자는 교환의 매개물이되고 섹스의 경험이 없는 완전한 상품(처녀)일수록 가격이 높게 매겨지는 것은 당연하다.수처녀를 숭배하는 것이나 근친상간을 금기시하는 것이나 결국 뿌리는 같다는 얘기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