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 이른바 화교의 숫자는 5천5백만명. 동아시아 인구의 10% 안팎이다. 그러나 화교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이 지역 상권을 휘어잡고 있다. 동아시아 소매업의 3분의 2 가량은이들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 동아시아 백만장자 열명 가운데 아홉명은 화교이다. 이들은 수일내에 2조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현금을동원할 능력을 갖고 있다.중국 본토에 대한 투자에서도 화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미국 유럽 일본이 투자한 돈을 더해도 화교가 투자한 금액에 미치지 못한다.화교가 설립한 기업중에는 대기업이 많다. 그러나 큰 기업에서도한결같이 가족 중심의 경영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의사결정은 중앙집중식이다. 이사회는 창업자나 그 가족의 결정을 무조건 승인하는기구에 불과하다.창업자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화교기업의 경영권이 2세로 승계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 중심 경영방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시작했다. 그러나 섣부르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려다가 갈등만 초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족기업의 분쟁은 대개 후계자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지난달 타이베이 증시에서 대만 최대의 제조업체인 포모사 플라스틱의 주가가 곤두박질했다. 창업자 왕영칭 회장의아들로서 후계자로 꼽히던 윈스턴 왕이 간통행각이 발각돼 미국으로 쫓겨났기 때문. 투자자들은 윈스턴의 형제 11명이 후계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으로 보고 포모사의 주식을 팔아치웠다.화교 2세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서양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마친뒤 20대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경영하는 기업에 임원으로 입사한다. 그러나 전문교육을 받은 2세들도 아버지의 입김에서 완전히벗어나지는 못한다.인도네시아의 리포그룹에서는 창업자 모취타 리아디의 두 아들이경영권을 잡고 있다. 이들은 리포그룹의 주식을 상장시키는가 하면 전문경영인들을 끌어들여 기업의 소유권을 분산시키려 했다.그러나 투자자들 사이에 불안심리가 고조되자 아버지가 나서 이같은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화교기업에서는 종래 친인척관계가 매우 중시됐다. 창업세대가 물러나고 2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이런 관행도 달라지고 있다.신세대 화교기업인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가족이나 친구 대신미국이나 유럽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창생들을 선호한다.화교기업인 태국 방콕은행의 창업자 친 소폰패니치는 대체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그것도 신용대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서양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경영권을 넘겨받은 아들챠트리 소폰패니치는 아버지와 다른 전략을 쓰고 있다. 그는 안면이 없는 사람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등 은행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일부 화교는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려고 시도한다. 통신·금융업체인 홍콩의 퍼스트 퍼시픽의 경우 소유자는 살림 가문이지만경영은 필리핀계인 매뉴엘 팽글리넌 전무를 비롯한 전문경영인들이맡고 있다. 대만 컴퓨터회사 에이서의 창업자인 스탄쉬 회장은 기업을 여러개의 회사로 나눠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있으며 계열사들을 하나씩 증시에 상장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기업들은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 화교가문은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들을 전적으로 믿으려하지도 않는다.일부 화교기업인들은 적자에 허덕이는 계열사라도 체면이 상할까우려해 매각하길 꺼린다.홍콩대학교 경영학교수인 고돈 레딩은 ?화교기업에서는 규모가 일정 수준에 달하고나면 경영이 불안해진다?고 지적한다. 가족경영체제를 고수하다 보니 여러 나라에 수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게 되면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된다는 것.화교 창업자들은 기업이 이 규모에 이르기도 전에 기업을 분할해2세들에게 나눠주려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녀들간의 상속분쟁으로기업이 쪼개질 수 있다. 화교기업들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있다. 하지만 가족경영의 한계로 인해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하는데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면 중국은 가족경영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화교기업인들의 투자에 힘입어 더욱 번성할 것이다.「Inheriting the Bamboo Network」 Jan. 5, 1996 ⓒTheEconomist,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