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립된 관료집단이… 있다』. 정치권력에 맞대응할만한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며 사실상 정치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관료집단이 존재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일본뿐인지도 모른다.일본 관료기구의 기본틀은 메이지(明治)18년(1885) 태정관제가 해체되고 내각제가 발족한 이래 변천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관되고 있다. 패전후 육해군 내무성 사법성 등은 해체됐지만 대장성을 비롯한 행정시스템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국가목표를 「전쟁수행」으로부터 「경제부흥」으로 바꾼 관료들은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깃발을 내걸고 경제성장을 선도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그런데 지난 93년에 일본의 관료사회를 크게 진동시킨 사건이 하나있었다. 당시 집권여당의 실세인 오자와(小澤一郞)는 국회활성화를목적으로 한 이른바 오자와 구상을 추진했다. 주요내용은 △관료들에 의한 국회답변을 폐지하고 △현재 국회의원들인 정무차관을 부대신으로 바꾸어 각성에 2~3명씩 배치하며 △부대신 아래에 국회의원을 정무심의관으로서 약간명씩 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1백명안팎의 국회의원이 행정관청을 직접 장악하게 된다.그러자 관료들로부터 불만이 집단적으로 분출됐다. ?초선 재선 의원들인 정무심의관이 정책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가?, ?국장들이할 일까지 정치가가 대신하게 되면 관료를 목표로 공부할 학생이한 명도 없게 된다?, ?정치가가 정책은 물론 관청의 인사에까지손을 대게 될 것이다.? 사무차관을 정점으로 연공서열로 구성된관료집단속에 정치가가 대거 들어오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다.오자와는 자기의 구상을 <일본개조개혁 designtimesp=20561>이란 저서에서 ?정치가에의한 관청점령은 아니다. 관료는 관료로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해 순수히 「테크노크라트」로서 정치가를 보좌하는 것이 좋다』고쓰고 있다.정책결정을 정치가가 해야 하나? 아니면 관료가 해야 하나? 문제의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민주주의하에서는 정책의 기본은 국민에 의해서 선택된 정치가가 정하고 관료가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그러나 정책의 「기본」에 선을 긋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행정수요는 고도로 복잡화해 실질적으로는 관료가 강대한 권한을쥐어왔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가 대신에 정책을 결정하여 왔다고 하는 자부심이 일본의 관료에게 있었다. 오자와 구상은 그러한관료주도체제를 타파해 주역의 자리를 정치가가 차지하겠다는 의사임이 분명했다. 한편 관료들은 ?입법부가 행정을 지배하면 삼권분립이 유지될 수없다』는 반론을 제기하며 집단적으로 정치와의 권력투쟁을 맹렬히전개했다.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이론무장은 법무성이 담당하고 행정조직법상 정무심의관의 신분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는 총무청, 외국의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외무성이라는 역할분담도 있었다. 거의 모든 부처가 총동원돼 정치권에 대한 수면하의 설득과 교섭에 나서기도 했다.일본관료집단의 「보스」격인 이시하라(石原信雄)내각관방부장관(사무)도 오자와 구상에 나서서 반대했다. 일본에서내각관방부장관은 각 성청의 최고책임자인 사무차관들이 모이는 사무차관회의를 주재하는 사실상 일본관료기구의 정점이라고 할 수있다.이시하라는 오자와 구상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관료들이 적은월급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아끼면서 일하는 것은 자기가 정책을 입안해 실행에 옮길 때까지 모든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오자와 구상대로 된다면 공무원은 단순한 허드렛일만 하게 될 것이다.』결국 오자와 구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관료집단은 단순한 「테크노크라트」로서 정치가를 보좌하는 집단으로 남기를 거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