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혁제품업체인 쌈지의 천호균사장(47)은 지난 93년 홍콩에서 열린 국제잡화제품박람회인 「홍콩페어」를 생생히 기억한다. 일주일간의 전시기간동안 쌈지의 전시장 앞에는 매일 발들여 놓을 틈없이사람들로 꽉 찼다. 이곳에 나온 피혁제품 취급업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한국에서 이런 패션감각이 높은 상품이 나오다니…』 사실 그랬다. 이 때까지 한국에서 나온 피혁제품들은 유럽제품의 모방이거나주문자상표부착(OEM)제품이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쌈지가 내놓은 제품은 단 한 제품도 모방은 없었다.더욱이 형태나 색감 및 품질이 완벽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기에 충분한 감각을 갖추었던것이다.이 전시회를 계기로 홍콩과 싱가포르 일본등의 바이어들이 서로 에이전트를 따기 위해 쌈지로 몰려들었다. 단순히 쌈지의 제품을 수입해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쌈지의 대리점으로서 현지에 「쌈지SHOP」을 개장하겠다는 거였다. 특히 홍콩측 바이어는 쌈지 SHOP의디스플레이까지 본사에 맡기겠다고 제의해왔다.현재 쌈지는 홍콩에 7개의 숍을 가지고 있다.또 대만에는 독점대리점을 가지고 있으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일본 등에도 쌈지 SHOP을 가지고 있다. 쌈지라는 이름은 이제 세계적인 브랜드가됐다.쌈지브랜드가 이처럼 유명해진 이면에는 천사장의 남다른 마케팅전략이 숨어있다. 천사장이 피혁제품사업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꼭16년째이다. 지난 80년 대우중공업을 다니다 남대문시장앞 인송빌딩에 여직원 1명과 고급피혁 수입업을시작하면서 이 분야에 처음발을 들여놓았다. 이때부터 그는 피혁분야에서 많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먼저 국내에서 피혁전문오퍼로서는 그가 첫번째였다. 그는고급피혁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수입해왔는데 예상외로 잘 팔렸다.84년 장안평에 공장을 마련하고 핸드백을 만들면서부터 그의 색다른 마케팅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 핸드백이라면 딱딱한가죽으로 각이 진 형태가 전부였다.◆ 소비자 18~23세 제한 마케팅포지션 설정그러나 그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주머니나 배낭처럼 생긴 핸드백을고안해냈다. 요즘 유행하는 그런 여성용핸드백을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이같은 핸드백이 처음 나왔을 때 업계에서는 『저건 핸드백도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거지백」이라는 별칭이붙어졌다.데코라는 상표로 처음 출하된 이 상품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젊은층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핸드백의 형태를 전반적으로 뒤바꿀만큼 이 거지백은 인기가 높았다.천사장은 천성이 좀 독특하다. 『남들이 하는 일은 전혀 하고 싶지않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헤어스타일이나 복장도 보통사람들과는 달라 보인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 마케팅강의를 하러 갔다가 퇴장을 당한 일도 있을 정도다. 천사장의 이런 성품이 오히려젊은층의 감각을 일깨우는데 큰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거지 가방이 히트를 치자 천사장은 이번엔 형태감을 깨트리면서 색상이 가미된 핸드백을 개발해 내놓았다. 그 때까진 가죽이라면 가죽 특유의 원색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는 레드 블루 화이트 옐로 등다양한 색상의 가죽제품을 출하했다. 이어 92년에는 또 다른 벽을허물었다. 지금까지 핸드백은 핸드백전문점에서나 살 수 있었으나천사장은 핸드백전문점이란 고정관념을 깨버렸다.핸드백과 코디네이션이 되는 모자 선글라스 구두 티셔츠 액세서리등을 한곳에서 판매하는 숍개념을 도입했다. 제품에 브랜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쌈지라는 브랜드아래 각종제품을 창안하는 독특한마케팅을 펼쳤다. 이 가운데 선글라스가 히트를 치기도 했다.◆ ‘디자인은 생명’… 모방은 사표감이 전문코디제품을 팔면서 그는 이 제품은 젊은 고객이라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또 다시 남다른 전략을 편다. X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이전에 이 쌈지소비자의 연령을 18세에서23세로 제한했다. 연령에 대한 마케팅포지셔닝을 명확히 설정한 것이다. 대부분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수요자를 광범위하게 잡아야많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는 이 연령층의 제한에 큰 비중을 두고 이들 연령에 꼭맞는 제품의 생산만 고집했다. 지금까지 이들 18세에서 23세 연령은 수요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접어들면서 이연령층의 수요가 급팽창,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로 자리를잡았다. 메트로미도파 현대백화점 등에 설치된 쌈지SHOP을 가보면항상 젊은이들로 붐빈다.대학생들보다는 직장인이나 전문직여성이더 많은 것도 이 판매장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이 쌈지사업을 해오면서 천사장은 부인으로 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받았다. 평택고등학교에서 국민윤리교사를 하던 그의 부인은 현재쌈지의 디자인실장이다. 그녀는 디자인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국내에서 톱디자이너로 꼽힌다. 요즘도 유명업체에서 스카웃제안이 자주 들어오지만 「보수가 맞지 않아(?)」 옮기지 않고 있단다.쌈지에 있어서 디자인은 생명이다. 무엇보다 이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결코 어떠한 디자인도 모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사장은 『다른 디자인을 카피하는 디자이너는 즉시 사표를 받는다』고말한다. 이 조항만큼은 엄격히 적용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디자인을 결코 모방하지 않으면서 젊은층의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이들 연령층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쌈지는 18세에서 23세 사이의 연령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 연령층의 생활 옷 유행 등 이들 나름대로의 문화에 대한 노하우가 많다고 말한다. 천사장이 이들 고객에 대한 연구를 그치지 않는 것은 『처음 코디점을 차렸을 때 소비자가 가장 큰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쌈지라는 이름으로 유명백화점에 점포를내려 했으나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쌈지전문점에서 소비자가 움직여주자 백화점들도 어쩔 수 없이 소비자편을 들어주었다.때문에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힘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을그는 신봉한다. 제품을 단순히 하나의 상품으로만 여기지 않고 예술화하는데 힘썼던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어떠한 제품에 대해서도기저에 아트(Art)가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가죽으로 예술품을 만들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실현했다고믿는다. 그의 예술이념이 이제 온 지구촌으로 펼쳐나가려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