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기업에서 임원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려있는 30대그룹에서별을 단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성임원이 한명도 없는 그룹이수두룩한 실정이다. 심지어 부장급조차 없는 곳도 한둘이 아니다.그런 가운데 지난 93년 이후 가뭄에 콩나듯 여성임원이 탄생하고있어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한 여사원들에게 그나마 희망을 주고있다. 지난해 연말에 단행된 주요기업 인사에서도 기아중공업 조성숙 이사가 임원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현재 국내 30대그룹의 실질적인 여성임원 수는 전부 합쳐봐야 9명에 불과하다. 물론그룹 소유주의 친인척을 넣으면 이보다 약간 늘어난다. 하지만 친인척 여성임원들은 예외없이 어느날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임원급으로 내려온 경우라 별로 의미는 없어 보인다.여성임원이 가장 많은 그룹은 삼성이다. 그룹 차원에서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을 과감하게 발탁, 모두 4명의 여성을 임원자리에 앉혀놓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삼성1호 여성임원인 삼성생명 대전영업국장인 임춘자 이사. 보험설계사로 출발, 임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71년과 72년 연속해서 전국 최고의 보험약정고를 기록하는 등 능력을 발휘해왔다. 요즘은 후배들에게 영업노하우를 전수하며 대전영업국을 이끌고 있다. 삼성에는 임이사 외에 주혜경삼성데이터시스템이사, 장선희 삼성화재이사, 이정희 삼성의료원이사 등 3명의 여성임원이 더 있다. 주이사는 사원교육을 맡고 있고,장이사는 보험영업관리가 주특기다. 또 이이사는 간호학과 교수 출신으로 간호부장을 겸하고 있다.◆ 삼성그룹, 여성임원 4명으로 가장 많아현대그룹에는 권애자 현대건설이사와 이선재 금강개발이사가 있다.권이사는 66년 공채로 입사, 임원자리에 오르는 집념을 보였다. 특히 권이사는 결혼후 한동안 쉬다가 84년 재입사한 특이한 경력을갖고 있다. 지금은 현대건설 직원들의 후생복지를 총괄하고 있다.금강개발 이이사는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일하다가 임원으로 특채된경우다. 문화사업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동부엔지니어링채선엽이사도 능력을 인정받아 91년 임원으로 입사했다. 공무원 출신인 채이사는 서울시청에서 목동기획단, 기술심사기획단 등을 거치며 조경전문가로 활동했다. 「남산제모습찾기」 때도 실무추진반에 참여, 기본계획수립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요즘은 「제주도개발사업에 따른 경관영향」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앞서 말한 기아중공업 조이사는 인하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여성엔지니어로는 처음으로 별을 달았다. 74년 공채로 입사해 지금껏프레스부에서 한우물을 파며 국내 프레스분야의 실력자로 꼽혀왔다. 이밖에 한라그룹 이은정 상무는 전문비서로 일하며 정인영 명예회장을 잘 보좌해 고속승진을 거듭해온 케이스다. 91년 대리로한라에 들어온 이후 94년 이사가 됐고 2년만인 지난해 다시 상무로올라섰다. 비서의 기본이랄 수 있는 어학(영어와 일어)에 능통하며연설문 작성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입사 이래 줄곧정명예회장의 해외출장 때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30대그룹 여성임원의 특징은 자기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승진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은 결과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것이 인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고경영자에 오르기 위해서는 회사내에서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며 경력을 충분히 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당분간30대그룹에서 여성사장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는 여성임원들 대부분이 특정분야의 일만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니 인터뷰 / 장선희 삼성화재 이사"목표의식·책임감 갖고 정도영업 추진"장선희 삼성화재 이사(50)는 보험업계에서 여장부로 통한다. 지난74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점포장으로 발탁된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사로 승진, 사내외 여성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장이사는 요즘도 업계에서 둘뿐인 여성임원의 한사람이자 삼성화재 송파지점장으로서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일단 가정에 돌아가면 평범한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변한다. 남편(작가 김종태씨)의 뒷바라지도 하고 하나 뿐인 아들을 돌보기도 한다. 물론가족들이 잘 도와주는 면도 있지만 일단은 그녀 스스로 두가지 일모두 성공적으로 꾸려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인2역을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뭔가 남다른 성공비결이 있을법한 대목이다. 또 25년간 남성들과 경쟁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터라 여성으로서 느낀 점도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먼저 장이사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지난해 이사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회사에서 여성이라해서 차별을 하지 않고 공정하게 심사한 결과라고 봅니다. 특히 삼성은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여성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편이지요. 그런 점에서 회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열심히 일해서 보답을 해야겠지요.』이어 장이사는 자신이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이사 자리에 오를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을 목표의식과 책임감이 강한 데서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격상 일단 목표를 정하면 남자직원못지 않은 추진력으로 밀어부친 결과 회사로부터 높게 평가받은 듯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장이사는 해마다 회사 차원에서 실시하는감사에서 상당히 후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감사에서도 영업적인 측면에서 연간 목표를 넘긴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 관리도 빈틈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이사는직원들에게 늘 정도영업을 강조, 보험업계에서 흔히 있는 불미스런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장이사는 보험회사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영업통이 아니라 관리통이다. 입사 이래 줄곧 현장에 나가 영업을 하기보다는 사무실에서 직원을 관리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특히 회사의 특성상 여사원들을많이 다뤘다. 그러다보니 여사원들에 대해 느낀 점도 한둘이 아니고 선배로서 할 말도 많다고 한다. 장이사는 우선 여사원들의 직업의식이 남자사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스스로 한계를긋고 일을 대충대충 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결혼후에도 일을 계속하겠다는 여사원이 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장이사는 여사원 스스로 능력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질적으로 남녀간에 능력 면에서 별차이가 없는데도 입사 이후 노력을게을리 해 남자사원들에게 처지는 사례가 많다는 것. 따라서 이런점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장이사는 여사원이 회사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가정일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얘기한다. 가족들의 협조가 필수적이겠지만 본인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애정을 갖고 가정을 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장이사 자신도 이를 실천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시간이 부족해 청소는 일하는 파출부에게 맡기고 있지만 식사만큼은 손수 준비한다. 이제껏 한번도 주방을 남의 손에 넘겨준 일이 없을 정도다. 장이사는 『가족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이해해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노력 덕분인 것 같다며가정이 편하니 회사에 나와 일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없고 즐겁다』며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