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꽃에서 기업 경쟁력의 핵으로.」사무실내에서 여성들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며 사무실 분위기나 돋워주던 「꽃」에서 기업의 경쟁력을좌우하는 「핵심 인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이제 더이상 사무실에서 전문 업무없이 잡무만 처리하다가 나이들고 결혼하면 「시든 꽃」으로 퇴사하는 「얼굴 마담」이 아니다. 오히려남자들 틈을 비집고 회사에 입사, 살벌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경제 전쟁터의 「여성 전사」다.영업 홍보 광고 기획 기술개발 등 여성들이 진출하는 분야도 다양해졌다. 사무실내에 「우먼파워」의 영향력이 광범위하게 퍼지고있는 것이다. 이런 맹렬여성들은 여자라서 차별당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여자라서 봐주는 것도 싫어한다. 남자와 동등한 업무 수준과동등한 대우가 이들이 내세우는 요구조건이다.최근들어 직장내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급상승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일차적으로는 대졸 여성들의 기업 진출 증가를 꼽을 수 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직원하면 대개 사무실의 업무보조를 위해 고용된 고졸 여성을 떠올렸다. 기업들은 서류 복사나 서류 정리, 잔심부름 등을 담당할 사무 보조원으로서의 여성을 원했지 남자들과같은 입장에서 일할 여성을 원하지는 않았던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도 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에서 대졸 여성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일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 수준도 높아졌다. 자신의 고유 업무를 부여받고 남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핵심업무」를 원하게 된 것이다.때맞춰 기업들도 고급 여성노동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제구조가 고급 여성인력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던게 가장큰 원인이었다. 산업환경과 소비행태가 소프트화되면서 기업은 변화된 경제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고급 여성인력을 찾아나서게 됐다.이용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비행태가 감성화되고 소비주체가 여성화되면서 국내 기업은 여성을 알지 못하고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자연히 기업 스스로 소비 주도세력인 여성의 심리를 잘 알고 분석할 수 있는 여성인력을 요구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여성을 주소비자층으로 하는 의류 화장품 구두 등 패션관련 산업에서 고급 여성인력을 필요로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95년 기업내 대졸 여성 비율 11.3%지식산업의 성장도 고급 여성인력의 기업 러시를 부추기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광고 영화 방송 출판 소프트웨어 등 지적능력과 창조력이 요구되는 지식산업의 경우 굳이 남자사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여성의 감성과 세심함, 사고의 유연성 등이 더 절실하다. 최근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와 광고회사 영화사 출판사 등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기업들이 대졸 여성인력을 꾸준히 늘려 왔다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국내 50대 그룹의 경우 7년전인 90년에만 해도 전체 대졸 신입사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2%에 불과했다. 신입사원 1백명 중에 여성은 기껏해야 4명이었다는 얘기다. 이 비율이 95년에는 11.3%로 늘었다. 대졸 신입사원 1백명 중 11명이 여자인 셈이다.대졸 신입사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기업의 벽은 여성에게 높다. 예를 들어 95년에 대학을 졸업한남자의 50대 그룹 취업률은 32.1%였다. 1백명의 남자 대졸자 중 대략 32명은 50대그룹에 취직이 됐다. 그러나 여성의 50대 그룹 취업률은 5.8%에 불과하다. 여자 대졸자 1백명중 많아야 6명만이 50대그룹에 입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95년 남자 대졸자와 여자 대졸자의 취업률은 각각 61.7%와 46.3%였다(여성개발원 자료). 여성 대졸자의 50대 그룹 취업률은 전체 여자 대졸자의 취업률에 비춰봐도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김태홍 여성개발원 책임연구원은 『50대 그룹 뿐만이 아니라 국내전체 기업을 다 놓고 따져봐도 대졸 여성이 기업에 취직하는 비율은 대졸 여성의 전체 취업률에 비해 형편없이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김연구원은 『고학력 여성이 기업에 취직하는 비율이 낮은 이유는 기업과 사회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차별과 합리적인 차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비합리적인 차별이란 말그대로 여성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편견에서 나오는 이유없는 차별이다. 기업이 채용에서부터 남성을 더 선호한다거나 여성의 승진 기회를 제한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또는임신한 여자가 일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든가 여자가 일을처리한다는데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라는 식의 사회적 편견도 여기에 포함된다. 합리적인 차별이란 남성보다 여성을 고용하는데 더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다.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남자들보다 회사를 그만두는 비율이 높다. 게다가 보건휴가나 출산휴가 등으로 인해 기업이 져야하는 비용은 남자보다 많다. 이런 추가 비용 부담으로 인해 기업은 아예 원천적으로 여성인력을 꺼리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 채용한 여직원을 실무부서에 배치하려고 할 때 그 부서원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경우도많다. 부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게 여성을 반대하는 이유다.『최근 기업은 한 직원당 얼마만큼의 이익을 냈느냐로 부서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성과제다. 그런데 부서원 중에 여자가있으면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실무부서 책임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간에 회사를 그만둘 확률이 남자보다 높은데다 혹시 출산일이라도 끼여있으면 여자에게 일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가 출산휴가를 갈 경우 일이 중간에 중단되기 때문에 아예 임신중인 여성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이용만 연구원)그러나 기업이 문제시하는 합리적 차별이란 사회 전체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지 여성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여성들 중에 합리적 차별의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합리적인 차별은 어차피 자신이 임신했거나 출산할 경우에 일시적으로 겪는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정작 고학력 여성을 좌절시키는 것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차별이다.한국갤럽의 나선미부장(37)은 『남녀 임금 차별 문제를 개선해 달라고 회사측에 요구했을 때 남자 직원들이 「여자는 고객들 술접대도 못 하니 남자보다 일의 효율성이나 성과가 떨어지고 그러니 임금도 덜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때 정말 실망했다』고말한다. 월급을 덜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여직원에 대한 남자 동료들의 사고방식이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나부장은 『출장가서도「그 회사는 여자밖에 없냐. 왜 여자를 보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며 『「여자가」하는 편견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통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여자가」라는 편견은 편견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차별」로 여성의 발목을 잡는다. 기업이라는 조직내에서 여성의행동폭을 제한하는 올가미인 셈이다. 1년간 다니던 A전자를 그만두고 최근 대학원에 진학한 P씨(27)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어렵게들어간 회사고 뒤에 들어올 여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만두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5년을 일하고 10년을 일한뒤를 생각하니 갑갑했다.』 눈에 보이는 차별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는 분명히 있더라는 설명이다.삼성종합화학의 C씨(26)도 『명예퇴직이니 조기퇴직이니 해서 회사를 반 강제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하물며 저런 위치의 남자들까지도 그런데 여자인 나는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자괴감이 든다』고 밝힌다.◆ 비합리적 사회적 편견 사라져야비단 여성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겠지만 직장내에서 여성의 입장은 남성과는 또 다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직장생활을 시작한지1∼2년 지나면 기업이라는 조직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에 주어진 한계를 깨닫는다』고 말한다. 광고회사나 출판사 영화사 등업무가 비교적 독립적이고 인사관계가 다른 업종에 비해 수평적인기업이나 의류회사처럼 여자의 능력을 특별히 높이 사는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마찬가지다. 은연 중에 가해지는 비합리적인 차별이많은 여성들을 직장에서 몰아낸다. 힘겹게 들어왔지만 「여기에서이런 취급을 받기보단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게 낫다」고 자위하면서 다른 길을 찾는다. 이렇게 떠난 대부분의 여성들이 선택하는 길은 공부를 좀더 한 뒤 일한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전문직종으로옮기는 것이다.물론 여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조직생활에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을 단순히 「비합리적인 차별로 인한 비전 부재」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두번이 아니라 계속 여성을 몰아내는 조직이라면 기업에도 문제는 있다. 21세기는 정보화와 소프트화로 대변된다. 미적 감각과 지적 능력, 상상력이 중시되는 21세기 경제구조에서는 이전처럼 남성 중심의 하드(Hard)한 조직으로는 생존하기 힘들다. 조직을 떠나는 여자를 탓하기에 앞서여성을 떠나게 하는 조직에는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21세기에는 조직이 「여성」처럼 소프트해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기기가 힘들다. 여성인력이 조직에 중요한 이유가여기에 있다. 고급 여성인력의 활용 여부가 21세기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