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1년 한 후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가정말 일에 미쳐서 내 모든 것을 바쳐 일을 한다면, 그에 해당하는승진과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불행히도 나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당시 2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던 내 직장은 외국인과의 거래도 많은 곳이었으나 가장높이 올라간 여성의 직위는 계장이 고작이었다. 계장으로 승진한여성들의 나이는 거의 40대 중반으로 숫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던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20대 후반의 대졸남성이라면 쉽게 올라갈수 있는 자리였건만 여성들에게는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오르기 힘든 자리였다.여러가지 불평등함을 느꼈지만 난 악착같이 일했고 그리고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았다. 당시에는 임신한 여성이 계속 근무하는 예가워낙 드물다보니 나름대로 조신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난다. 결혼이나 임신은 삶의 한 과정일 뿐이고 직장인으로서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어 결혼식 전날까지 회사에 나가고 아이 낳기 일주일전까지 업무를 계속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여성들의 경우 결혼이나 임신 때문에 직장생활을 중도하차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정말 나 자신의 일처럼 걱정스럽게 느껴진다. 실제 내 주위를 둘러 보아도 광고대행사나 언론직, 교사 등을제외하고 일반 기업에서 결혼하고 특히 전문관리자로 나선 경우는상당히 드물다. 그래서 아이들 키우면서 직장생활 잘하는 사람들이존경을 받을 정도다.여성들의 경우 한 회사의 중간관리자이자 아내, 며느리, 사회인 등다양한 역할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다양한역할들이 서로 상호보완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찌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잘 조화시키기는 무척 어렵다. 자신의삶에서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까운 주위사람들과의 대화로문제를 풀고 협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우리 부부의 경우 매주 서로의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주요 일과중의 하나다. 남편의 경우 회사 회식이다, 야근이다, 퇴근후의 수업이다 해서 바쁘고 나 역시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사전에 스케줄을체크하고 만약 저녁약속이 겹치는 날이 있으면 한쪽이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거나 둘 다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이라면 돌볼 사람을 미리찾는다. 가능한한 우리 부부중 한 명은 아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는데 아이가 자랄수록 신경 써야 할 사항이 많아지기때문이다.아이를 위해서는 그날 그날 있었던 일과 친구들과의 관계 등을 열심히 들어주고, 배우고 있는 예능과목이나 공부할 것을 신경써 주어야 하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 엄마노릇을 하다보니 아이키우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서 전업 주부들이 아이들교육에 굉장히 열성을 보인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주눅이 들기도한다. 맞벌이 주부나 전업주부나 득과 실은 다 있는 법인데도 아이에게 괜히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고 자위하며 지낸다. 가능하면 반상회에도 참여하고 이웃 주부들과도 자주 만나는 것이 삶의 지혜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디 가면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고, 어느 학원 선생님이 교육을 잘 시키고, 육아는 어떻게 한다든지, 어떻게하면 양념이 맛있다든지 하는 등 다양한 생활정보를 얻는 것은 새로운 기쁨을 준다.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좋은 사람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보고, 사회생활도 다 해보라는 것이다. 이제는 재택근무도 가능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도 예전보다는많이 없어졌다. 가사일을 돕는 남성도 많아졌으니 얼마나 좋은가. 특히 선진국의 경우 창업주의 3분의 1이 여성이라 하지 않는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점을 활용한다면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자신이 생각하는 5년후의 내 모습, 10년후의 내 모습을 항상 그려보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이렇게말하는 나 역시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많이 부족하고, 허점투성이지만 뭐 어떤가. 인생이란 매일 매일 배우는 것이 아닌가.열심히 사는 여성은 그 자체만으로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한다.한태숙씨는 88년에 결혼, 현재 7살된 딸을 두고 있다. 「라디오베리타스 아시아 한국어방송」에서 PD및 아나운서로 활동했으며 무역회사에서도 2년간 근무했다. 그후 호텔롯데 홍보실에서 10년간 일하다가 95년 한국 피자헛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