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삼미부도는 국내 금융기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한보철강부도이후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제일은행 등 한보에부실여신이 물린 시중은행의 신용도를 하향조정했다. 이어 삼미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방한한 S&P사는 지난 27일 한국의 모든금융기관에 대해 전면 재평가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국제무대에서 국내은행들은 「부실여신기관」이라는 낙인이 여지없이 찍혀버린 셈이다. 그 여파는 당장 해외차입의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기적으로 일본계은행의 결산시점이 맞물리기도 했지만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의 경우 상당수의 거래선이 차단됐다. 차입금리도 엄청나게 올라 한보철강 부도전보다 연 0.3%포인트 이상올랐다. 은행들의 해외 현지법인들이 돈을 제때 빌리지 못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국내 본점에서의 긴급수혈이 뒤따라야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환시장에서 달러환율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자 한국은행은 25일 10억달러의 자금을 긴급지원했다. 오죽했으면 국제수지악화로 외환보유고가 고갈직전인 한국은행이 10억달러의 「거금」을 지원했을까.창립후 최대위기를 맞고있는 제일은행의 새로운 사령탑을 맡은 유시열행장은 『연간 해외차입규모가 1백억달러에 달하는 우리은행으로서는 연간 3천만달러 이상의 추가이자를 감수해야할 판』이라고걱정했다. 부실이 또다른 부실을 부르는 현상은 기업에만 적용되는것은 아니다. 금융기관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이같은 금융계 파장을 우려해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지난 27일 『정부는 개별은행의 자금사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은행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하는등 적극 대처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금융기관의 해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물 투자기피 해소해야단기차입뿐만 아니라 기간물차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만 해도 은행들의 주요 자금조달원으로 인기를 끌었던 해외본드나 FRN(변동금리채)의 경우 상반기중 발행을 사실상 포기상태다. 올들어 기간물차입에 성공한 은행들은 국가신용등급을 갖고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뿐이다. 상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구태여 발행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비싼 이자를 주고 은행수지를 맞출 수 있겠느냐 』며 『하반기쯤 상황을 봐가며 기간물차입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보람은행 한일은행 장기신용은행 등 1/4분기에 주식예탁증서(DR)의 발행을 추진했던은행들도 2/4분기로 연기했다.기업들이 해외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증시가 수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데다 국내주가가 한보삼미 등 굵직굵직한 기업의 부도로 한국 기업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올들어 1/4분기중 해외증권을 발행한 기업은 기아자동차(8천만달러) 메디슨(4천4백스위스 프랑) 대우(5천5백만달러)대유통상(1천2백만달러) 등 4개사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분기당평균 11개 이상의 기업들이 6억달러 가량의 해외증권을 발행했던데비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해외증권발행을 주관한 증권사관계자들은 해외투자자들의 한국물에 대한 투자기피로 소화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중소기업들이 해외증권을 발행하기는 더욱 어렵다.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도로 해외투자가들이 인수를 꺼리는데다 그동안 중소기업의해외증권에 많은 투자를 해온 국내 금융기관의 현지법인들이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따라 2/4분기에 전환사채(CB) 주식예탁증서(DR)등 주식관련 해외물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던 한국합섬 녹십자 등이 차질없이해외증권을 발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증권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해외에서 저리의 장기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서는 증시가 먼저 활성화되고 금융기관들의 신용도가 회복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금융기관이 해외에서신용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