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경제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불황의 긴 터널을탈피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재계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판단에서다. 근검절약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현장밀착경영을 통해 어려움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또 임직원들이 다짐대회를 갖고 임금을 동결하거나 상여금을단체로 반납하는 사례도 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해결 차원에서사업구조를 바꾸는 기업도 급속히 느는 추세다.현대그룹은 요즘 경쟁력강화운동인 10-10운동(텐텐운동)을 활발히벌이고 있다. 생산성은 10% 늘리고 경비는 10%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는 여기에다 임직원이 근검절약 정신을 생활화할 수있도록 비용절감 10대 과제를 선정해 출장비, 접대비를 각각 10%줄이고 반일휴무제 실시와 연월차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해 수당을10% 절감한다는 방침이다.특히 현대는 경영진이 비행기를 탈 때 종전보다 한등급 낮춰 이용하는 등 솔선수범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가 절실히 필요하다』며『직장과 가정에서 최대한 아끼자』고 강조하고 있다.경영진의 노력에 보답하듯 현대 평직원들의 의지도 대단하다. 상당수의 계열사에서 평직원들이 중심이 돼 임금동결을 결의하고 있다.봄이면 으레 임금인상률을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과는아주 다른 양상이다.대한알미늄의 경우 올해 초 노조가 중심이 돼 임금동결과 무기한무쟁의를 선언한데 이어 토요일 격주휴무도 반납했다. 현대 계열사가운데 생산직 근로자들이 임금을 올려받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지난 8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또 현대전자와 현대자동차서비스는 간부사원들이 자체 모임을 갖고임금동결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 모두 과장급 이상에 대해임금을 지난해 수준에서 묶기로 했다. 이밖에 현대자동차도 최근위기극복 실천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실천대회를 갖고 전직원이자발적으로 월급을 올려받지 않기로 했다.◆ ‘내가 먼저’ ‘JUMP21’ 등 다양삼성그룹 역시 사장단이 앞장서서 경제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특히 사장단은 최근 회의를 갖고 주인의식의 확립을 통한 사회적 신뢰회복과 경제자신감 되찾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삼성이 여기에 앞장서자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내가 먼저」캠페인을 범그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내가 먼저」 캠페인은 삼성 임직원 개개인이 직장이나 가정, 또는 사회에서 궂은 일, 힘든일, 누군가가 나서야 할 일을 솔선하여 실천하는 등 다시 뛰겠다는뜻이다. 삼성은 또 에너지절약 4개년 계획도 추진중이다. 그룹의경영효율을 높이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20% 이상을 줄여오는 2000년까지 총 4천1백59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절감운동을 펼 경우 연간 1억2천만달러 규모의 원유수입 경감으로 국제수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LG그룹은 전사원이 참여하는 그룹 차원의 캠페인보다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불황탈출에 나서고 있다. 계열사인 LG화학이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세계 최고의 경쟁력 갖추기 캠페인인TA(Turnaround)운동을 벌이는 정도다.구조조정에 그룹의 사운을 건 LG의 관심분야는 정보통신과 차세대반도체 등 미래산업쪽이다. 투자액만도 엄청나 이들 분야에 모두23조원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을 방침이다. 반면 부가가치가 낮거나장기적으로 볼 때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90여개 사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할 계획이다. LG는 우선 앞으로 3년 안에 약 40여개의사업에서 손을 뗄 예정이다.쌍용그룹도 경비절감차원의 대책보다는 의식개혁과 구조조정 쪽에비중을 두고 있다. 김석준 회장 스스로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경영방안)가 있더라도 소프트웨어(의식개혁)가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듯 근본적인 경영체질을 바꾸는데 진력하고 있다.이에 따라 쌍용은 경영인프라를 다시 구축하고 해외사업에도 본격진출하며 국내에서도 유망사업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특히 쌍용은 내실경영에 힘을 쏟아 모든 조직과 인적자원을 질중심으로 바꾼다는 입장이다.◆ 노력만큼 효과나타날지 미지수OB맥주의 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과 지난해 회장이 바뀐 금호그룹 역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서 불황탈출을 노리고있다. 두산은 이미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로부터 그룹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도 받아놓고 있다. 특히 두산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단계 구조조정을 단행해 한국코닥, 한국네슬레, 한국3M 등3개의 합작법인을 정리한데 이어 올해 들어 2단계를 진행중이다.기본방향은 유사, 중복사업을 통폐합해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린다는 것. 현재 25개인 계열사를 오는 98년까지 19개로 줄인다는 방침도 아울러 세워놓고 있다.그룹의 한 관계자는 『1단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그룹의 몸집이한결 가뿐해졌다』고 성명했다. 금호는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중이다. 더 이상 국내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적으로는정보통신과 금융에 관심이 지대하다. 기존의 사업군에 이들 새로운분야를 보태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대신 중소기업형 업종은 과감하게 도려낼 계획을 정해놓고 있다. 기업의 힘을 키우는데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다른 그룹들도 불황에 시달리는 지금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판단하고 변신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그룹 총수가 앞장서서 의식개혁운동과 구조조정에 많은 관심을 보일만큼 적극성을보이고 있다. 자칫 지금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창 급부상하고 있는 한솔그룹도「JUMP21」이라는 새로운 경쟁력강화운동을 벌이고 있고 동아나 한화 등 다른 그룹들도 사정은 비슷하다.재계의 본산인 전경련도 경영혁신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10일 월례회장단 회의에서 생산성향상, 근검절약, 일더하기 등 주요 그룹들이 벌이고 있는 혁신활동을 전체 회원사로 확산시켜나가기로 합의했다. 또 전경련의 경제대책회의 산하에 7개의 위원회를두어 기업들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최종현 회장은 자신의 명의로 4백29개 전회원사에 편지를 보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최회장은 이 편지에서 지금의 경제난은 반드시극복될 수 있다는 자심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기술개발, 마케팅능력배양, 경비절감과 생산성제고를 위한 투자확대와 경영혁신을 촉구했다.몇몇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적잖다. 특히 한집안 식구라 할수 있는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각 그룹들이 앞을 다투어 불황타개책의 일환으로 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면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은데다 급조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그룹에서는 다른 데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외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사실 경영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경제살리기 바람을 타고유행병처럼 번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요즘의 기업들을 보고있노라면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너무 형식에 치우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꼬집는다.지금 단계에서 기업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제해결의 열쇠는 기업들 스스로 쥐고있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전개방향이나 노력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의 경우 심한 불황기였던 지난 70년대초 경단련을 중심으로 공생캠페인을 벌여 성공한 적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이 되어 힘을모아 불황에 맞선 결과였다.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들의분발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