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기가 힘들다? 경기가 좋을수록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데즈먼드 해리스는 그의 명저 「맨워칭-인간행동을 관찰한다」에서 여성들의 치마길이와 경제상황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차세계대전이후 여성들의 스커트길이와호·불경기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어 경기가 좋으면 스커트길이가 짧아지고 경기가 나쁘면 스커트길이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덧붙여 주식시세가 올라가면 스커트길이가 올라가고 주식시세가 내려가면 스커트길이도 내려간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경제여건에서는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가 길어진다는 말이 된다.실제로 지난 93년 거품경제의 후유증에 따른 경기불황으로 고전중이던 일본에서는 불황탈출을 알리는 각종 경제지수들이 발표되는가운데 여성들의 긴치마가 유행해 경기와 치마길이에 대한 논란이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황의 길로 들어선 지난해에 미니보다는 무릎길이의 샤넬라인이나 공주패션이란 이름아래 긴치마가 유행했으며 겨울에는 온몸을 감싸는 숄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경기불황을 반영했다는 것이 패션업계의 말이었다.◆ 소주 소비 늘고 위스키는 줄고코오롱상사 패션마케팅팀의 최현호씨는 『경기와 치마길이의 상관성은 패션교과서에 나오는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불경기일수록요란함보다는 베이직한 것에 충실하려는 트렌드가 주류를 이룬다』고 말했다.색채학자들도 색상이 경기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불경기색깔」이라는 것이 있다. 검정 갈색 자색 등 어두운 색을 말한다.미국색상협회는 「경기가 좋을 때에는 밝고 깨끗하고 명쾌한 색깔이 득세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에는 검정 갈색 암홍색 암자색 등 이른바 불경기 색깔이라는 어두운 색깔들이 득세한다」고 분석하기도했다. 이를 말해주듯 지난해에 나온 국내 유명의류업체들의 색상흐름도 감청색이나 검정색계통의 어두운 색상들이 주류를 이뤘다. 대표적인 캐주얼의류인 진의 경우도 검정색이나 짙은 감청색 등이 유행했다.화장품도 립스틱의 경우 짙은 포도주색이나 암갈색과 같은 어두운계통의 색상이 크게 히트쳤다. 태평양에서 나온 카키색의 「천년후애」의 경우 발매 2개월만에 1백50만개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을 정도다.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 역술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늘어난다. 불안감 때문이다. 역술인 최전권씨는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 (점을 치러오는)사람들도 늘어난다』며 『최근 정치·사회적인 불안과 경기불황으로 정치인 중소기업인 상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고 있으며 명퇴·조퇴 등으로 직장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회사원들이 그 다음으로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치마길이 색상 역술원 등이 경기불황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더듬이」라면 경기불황에 따른 다양한 현상도 뒤따른다. 우선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각 기업들의 퇴직바람에 정신과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른바 실직증후군(Layoff Syndrome)환자들이다. 정식진단명은 아니지만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불안 우울증 불면증 두통 소화불량 등의일반적인 증상을 말하는 정신의학용어다. 「밝은마음 정신과의사모임」의 도정호정신과의원원장은 『경기침체시에는 스트레스로 인한두통 근육통이나 소화불량 우울증 등 스트레스성 적응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며 『최근 불황과 퇴직 등에 따라 이런 증상을 상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했다.치과병원도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목동 O치과의 오모씨는『경기가 나빠지면서 치과환자들이 아파서 죽을 정도가 아니면 병원을 찾지 않아 매출이 30%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보철 등 통증이 원인이 아닌 치과진료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치료도주머니사정을 고려해 충치환자의 경우 금 등 고급재료를 이용한 치료보다는 아말감과 같은 저가재료로 치료받으려는 환자들이 늘었다』는 것이 오씨의 말이다.불황으로 주류업계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서술소비가 줄어들고 주머니가 가벼워진 주당들이 맥주나 위스키보다는 소주를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진로의 최모씨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전체적인 술소비가 줄어들었다』며 『술종류로 보면 맥주나위스키 소비가 줄고 소주 소비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주류도매업체인 북창기업의 한 관계자도 『주종별로는 맥주가 약 30%, 양주가약 5%정도 줄어든 반면 소주는 약 10%정도 늘었다』고 말했다.주류업계의 출고량에도 이 같은 사실이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 2월말 현재 소주업계의 맥주출고량을 보면 약 6천4백57만ℓ로 전년동기의 5천6백43만ℓ에 비해 약 14%정도 늘어났다. 대표적인 소주업체의 출고현황을 보면 진로가 2천7백29만7천9백67ℓ에서3천11만1천8백25ℓ로, 경월이 8백76만6천9백19ℓ에서1천28만8천6백48ℓ로, 보해가 4백86만5천9백55ℓ에서5백76만2천36ℓ로 각각 늘었다.반면 위스키의 경우 진로 두산 보해 등 국내 3사의 경우 총출고량이 2월말 현재 94만4천ℓ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1백24만ℓ에 비해약 31.4%가 줄어들었다. 특히 술시장은 경기불황의 영양으로 주름살의 골도 깊어 한 주류도매업자는 『주류도매상의 경우 약 70%가적자로 허덕이고 있으며 약 10%정도는 자진 휴·폐업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종로 5가 C식당의 이한란씨도 『경기가 안좋아 장사가 전혀 안된다』며 『전에는 갈비에 맥주였다면 요즘은 소주에 삼겹살정도만 해도 잘 나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밝은색 짧은 반바지 등 반대기제도 등장그러나 불황으로 모두 주름살이 늘고 어둠침침한 미로를 헤매는 것은 아니다. 항상 택시기사가 부족해 차고에 노는 택시를 세워두던택시업계는 오히려 인력과다의 상태를 보이는 곳도 있다. 대륙여객의 김만성씨는 『1백20여대의 택시가운데 전에는 운행을 나가지 않고 노는 차량이 제법 있었지만 최근에는 명퇴 등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몰리면서 사람이 남아돌고 있다』고 말했다.인력시장에도 경기불황의 한파로 단순인력이 넘치는 색다른 현상이빚어지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단순노동인력을 공급하는 남대문성남 가락동 등 2차 인력시장에 일거리를 찾는 사무직출신 구직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남대문인력시장에 건설잡부일을 구하러 나왔다가 허탕을 쳤다는 김모씨는 『요즘 새벽시장에 일거리를 찾아 나오는 명퇴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있다』며 『그러나 일자리가 없어 초보자인 그들이일자리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직업소개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방영복직업소개소의 방영복소장은 『일거리를 찾는 명퇴자들이 요즘 많이 늘었다』며 『그러나 건설잡부 파출부 등의 일당직이나 식당 공장 등에서 일하는 월급직이나 모두 일자리가 없어 허탕을 치는 상담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한편 최근들어서는 경기와는 무관하게 치마길이가 짧아지거나 색상이 밝아지는 등 「반동」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들어 여성의류업계에서는 무릎까지 오는 버뮤다반바지 등 짧고 편안함을 추구하는옷맵시가 여름을 앞두고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밝은 색상도 차츰 힘을 얻고 있다. 화장품의 경우 오렌지 핑크 등 밝은 색조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신촌 그레이스백화점내 쥬단학화장품의 박은경씨는 『최근에는 오렌지 핑크계열의 색조가 유행』이라며 『경기가 안 좋은데도 봄이되면서 밝은 색상의 화장품이 잘나가고 있다』고 말했다.이런 현상에 대해 최현호씨는 『경기호전의 신호라기 보다는 「카운터트렌드」라고 할수 있는 반대기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빛이 강하면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는 논리다. 불황기에 전체적으로패션흐름이 강해지며 짧은 바지나 치마가 다시 유행하는 것은 침체경제에 대한 반대기제로 밝고 튀는 면을 쫓는 정서상의 흐름이라는것이다. 따라서 현재안주형보다는 미래지향적이 돼 사이버룩이나메탈룩처럼 깔끔하고 밝은 카운터트렌드가 나타난다는 것이 최씨의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