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과소비 추방과 무분별한외국여행 자제 등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에서부터 벤처기업이나 정보통신업 등을 통해 국내산업구조를 자본과 기술집약적 구조로 개편하자는 전문가 진단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정치권도기업과 가계의 노력에 발맞춰 경제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가계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경제 살리기」에 나설 정도로 우리 경제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현재의 어려움이 경기순환상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데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전문가들중에는 이같은 경제난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중 하나가바로 시장경제원리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기업들이 줄기차게 완화를 요구해온 각종 행정규제는 물론 「튀거나앞서 나가는 자」를 경계하는 사회풍토, 기업가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 등이 기업들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기업을 정치자금 조달처 정도로 인식하거나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경제를 「재단」하는 움직임이경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한마디로 반시장적 분위기가 불황을 극복하려는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얘기다.◆ 질투와 시기심도 시장경제 방해전경련이 출자해서 설립한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은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해야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며 『기업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활력을되찾기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인을 경시하는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공소장은 시장경제 원리를 방해하는 심리적인 요소로 △질투와 시기심 △자기기만 △통제욕구 △유토피아를 위한 열정 △집단주의와평등주의 등을 열거한다.자신보다 능력있거나 부유한 사람에 대해서 이유없이 질투하거나시기하는 심리는 다수결의 원리와 결합돼서 개인적 책임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법과 제도를 마련한다. 통제욕구는 연속되는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이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외부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속성. 이는 정치인이나 경제관료들이자신의 의도대로 경제를 계획하려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공소장은 정부의 과도한 경제개입이 현재의 경제난을 가중시켰다는입장이다. 역설적으로 정부가 통제욕구를 억제할 때 경제발전이 순조로웠다고. 그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재평가작업에서 높은 점수를주는 항목이 이들 집권세력이 경제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기업가들의 창의와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이 『한보사태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현정부가 섣불리 단기부양책을 추진했다가는 국민들이 부담해야할 사회적 비용만 늘어난다』며 단기부양책을 반대하는 것도 이같은 주장과 일맥상통한다.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은 무소유 경영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군사정권의 대항이데올로기로 각광받았던 평등주의의 영향으로국내지식인들은 이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기업체를 선호하는 모습을보인다. 지난 95년초 부도가 난 광림그룹을 살리자는 운동을 주도한 지식인들이 전형적인 예다.광림기계 광림특장차 광림정밀의 창업자 윤창의 회장은 주식을 모두 종업원들에게 분배하여 「무소유 경영철학」과「공동체 경영」을 실현한 기업인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들 지식인들은 부도직후 『경쟁력 높은 제품을 만들고 경제정의 실현을경영의 중심에 두는 기업이 넘어지는 것을 두고볼 수 없다』며 회사살리기를 주도했다. 사적 재산권에 기초해서 운영되는 시장경제와는 동떨어진 정서를 보여준다.반시장주의적 집단주의 전통은 「세계경영」을 외치는 기업에서 조차도 나타나고 있다. 지연이나 혈연 학연을 중심으로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소위「오피스 정치」가 기업에서도 나타난다. 이같은 분위기로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줄」을 잘 서는 것도 현실적으로 요구된다. 오피스 정치 때문에 불필요한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능력계발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때마다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로 내몰린다.이같은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는 특이한 것으로 다가간다. 한국인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워난 보리스 B 임씨는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회식은 단적으로 말해 시간낭비,자원낭비고 건강낭비다.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자기발전에 투자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또한 직장을 옮기면 배신자처럼 여기고 다시는 그 회사에 발붙이기 어려운것도 취직을 단순한 계약관계로만 보는 서양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기업내부에 스며든 집단주의 전통의 또다른 예로 최고경영자와 신입사원의 연봉차이가 별로 없는 것을 들수 있다. 미국 디즈니사의아이스너 회장이 1천6백억원의 연봉을 받아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국내 상장회사 최고경영자들은 1억원을 넘기기 힘들다. 수조원을 주무른 정태수 한보총회장의 심복인 김종국 전재정본부장이 국회청문회에서 밝힌 연봉도 9천만원을 넘지 못했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이 2천만원이라고 할 경우 그 차이는 4배에 불과하다.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경영자로서의 권위와 영향력은 연봉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국민과 기업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도 문제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이구동성으로 시장기구의 자율성을 신뢰하라며 정부에 행정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요즘 뭐하고있느냐』면서 경제타개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를 질책하고 있다.이같은 반시장주의와 반기업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인이나기업가를 높게 평가하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는게 시장경제옹호론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즉 선진국에 비해서 부족한 「정신자본」을 축적해야 시장경제가원활히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신자본은 양심에 따른 행동,자발적인 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감,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할 수 있는 결단력을 뜻한다.이같은 정신자본이 축적돼야 현재의 경제불황을 넘어 선진국으로진입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정부패 / 정치력과 경제력 집중이 주원인부정부패는 한국경제의 원죄인가. 한보 TV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같은 자괴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행정부, 한보그룹의 부패커넥션인 「수서비리」로 국민을 분노케 했던 정태수 총회장이 불과 6년만에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사상 최대의 부도극」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했다.왜 부정부패의 악순환이 계속되는가. 다양한 원인이 제기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력과 경제력의 집중을 들수 있다. 정총회장이경제와 직접 관련없는 청와대 총무수석을 「기둥」이라고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처럼 정치권은 개별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의 힘을갖고 있다. 또한 고 건 국무총리가 취임일성으로 『과도한 행정규제가 특혜를 낳고 부패의 온상이 되며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1만1천여개의 행정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한 것처럼 과도한행정규제도 부패의 온상이다.국내 30대 재벌들이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위해서 조성하는 비자금 규모는 대략 1조9천억원으로 추정된다. 비단 천문학적 액수만 문제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과 시장질서를 왜곡시킨다.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해야 하는 기업활동을 방해한다.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기업과기업가들에 대한 왜곡된 상을 남긴다. 구조화된 부패구조는 시장경제를 멍들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