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기침체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외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환율과 금리의 불안정도 심화되고 있다. 실업률이 이미 3%를 넘어섰고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도산도 많아 국민들이체감하는 경기지수는 더욱 얼어붙은 것같다. 일부 재벌의 자금악화와 부도설이 꼬리를 물고 있으며 예측기관마다 경제가 더 어려워질것이라는 전망만 무성하다.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이 현정부의 임기말에 맞물려 효율적인 정책집행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경제의 어느 부문을 보아도 밝은 면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뾰족한 처방이나 적극적인 정책대응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시간이 지나면 다시 경기가 순환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한다.그러나 과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인가.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물론 불황에 대한 처방은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문제의 속성상 획일적인 정책수단으로 불황을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주체가 문제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 동일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을 때어려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의 도전에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역동적인 경제여건의변화를 정부와 기업, 근로자와 소비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좌우된다. 실제 90년대 우리 경제의 여건은 아직 한번도 경험하지못했던 새로운 변화로 점철되어 왔다. 개방화의 물결 속에 국내시장에서도 외국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하고, 정보화의 진전으로 거리와 시간의 개념이 없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민간부문의 성장과 대외개방으로 정부정책의 유효성은 떨어지고, 시장경쟁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국민경제를 구성하고있는 정부와 기업, 가계가 국민이 과연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처하고 있는가.먼저 문제의 핵심은 정부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같다. 정부는 시장기능을 보완하고 효율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여 원활한 경제흐름의 틀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부의 역할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을 존중하는 체계적인 정책을일관성있게 추진하여야 한다.◆ 공공부문 비효율성 제거도 시급그러나 문민정부의 정책은 불행하게도 일관성도 없고 체계적으로조정되지도 못했고 시장우호적인 규제완화를 게을리 했다. 다시말하면 정부는 지난 60~70년대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경제활동에 간섭과 규제를 일삼아 왔다. 「경제회복 100일」 작전으로부터 시작한 문민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팀을 자주 교체해 왔다. 실명제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은경제정의의 실천에 기여했지만 「가진 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정책」을 표방한 나머지, 기업가의 경제 마인드를 위축시키는 결과를가져왔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원동력이 되는 핵심요인을 간과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또한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를 강조하였고 시장기능보다 정부역할을 중시한 나머지,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않았다.나아가 정치성이 강한 세계화와 OECD의 가입으로 국민들의 마음을정부가 주도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부풀려 놓았다. 이러한 정책의긍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행수지의 적자나 과소비의 확대는 분명 정부에 많은 책임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국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3만달러 소득에 버금가는 소비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부 스스로가 경제의 거품을 조성하는데 일조한 셈이다.이러한 정책이 가져오는 효과는 너무나 자명하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우리 기업도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의 영향으로 소기의 정책목표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문이 열려 있는 경제에서 어떻게 우리 정부가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영향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문을 열어 놓고 내부규제만 강화하면 국내산업은 공동화되기 마련이다. 우리 기업의 세계화와 대외투자의 확대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그렇다고 기업을 탓할 수만도 없다. 그것은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따름이다.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책은 환율과 금리 등 여타의 거시정책과 산업정책에서도 유효성과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따라서 경제 살리기의 첫걸음은 정부부문의 인식전환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정부가 더 이상 「경제계획」을 선도하거나 민간의 생산활동을 규제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정부기능이 선진화되어 「기업을 위한 부처」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제는 시장과 기업이 주도하는 선진화된 경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부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에 개입하고,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신호등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로부터 중립적인 경제정책의 수립이 이루어져야 하고 정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틀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더 이상 기업과국민의 위에 있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업에서부터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이 정부기관에 의해서 좌우되는 풍토에서 어떻게 경제 살리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공공부문의 내부에 존재하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와 공공부문은 대부분 독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따라서 시장경쟁이 없는 독점기업과 같은 내부의 비효율이 산적해있다. 또한 전문성이나 자율성이 결여된채 부처이기주의나 순환보직제, 복지부동이 보편화된 풍토에서는 공공부문의 효율을 기대할수 없다. 금융부문에서도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분할과 인사개입,정치 예속적인 관행으로는 효율성의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이렇듯 모든 공공부문이 비효율만 가득찬 경제구조 속에서 어떻게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구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의 도전에 걸맞는 정부조직과 대폭적인 감량경영이 공공부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최소한 선진국 정부와 동일한 수준의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하여야 한다.물론 기업과 가계에도 많은 문제의 근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기업은 그동안 정부의 보호와 규제 속에서 국내시장의 안이한 방어에만 익숙해져 왔다. 국내시장의 독과점을 바탕으로 이윤을 축적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시장개척보다는 사업의 다각화를 통한 외형확대에만 주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은 국내시장도 외국시장도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된 셈이다. 따라서 전문화된기술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핵심역량의 개발에 주력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21세기의 국가경쟁력은 궁극적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초일류기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과거와 같이 단순한 기술을 바탕으로 원료와 자본을 해외로부터 도입하여 가공수출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우리 경제의 불황도 결국은 많은 우리 기업이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경제가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하여 과거와 같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변화를 모든 경제주체가 인식하고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부는 시장 우호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기업의 자율적인 활동을 지원해야 하며,기업은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고유의 핵심역량을 길러내야 한다. 또한 노사관계의 선진화와 임금의 안정이 이를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근로자가 갈등이나 대립 또는 수직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한 경제회복은 물론 우리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