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가.벤처업계의 요즘 상황은 바로 이 속담 그 자체이다. 창업투자제도가 생겨난지 10년만인 올해들어 벤처캐피털 및 벤처업계와 주변 환경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올들어 규제의 고리가 하나 둘씩 풀리기 시작하더니 근간에는 아예 새로운 틀을 짜려는 분위기다.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벤처캐피털회사들은 최근 벤처기업 투자에열을 올리고 있다. 90년대 초반께 창업기업에 활발히 투자했던 한국기술투자 장은창투 등 일부 벤처캐피털회사들은 최근 투자원금의10~50배나 되는 수익을 거두고 있다. 메디슨 미래산업 태일정밀 등이 상장되면서 이들에 투자한 벤처캐피털들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술투자의 경우 지난해 매출 2백9억원에 순익 1백3억원을 올리는 놀라운 결실을 거두었다.요즘은 장외시장인 코스닥증권도 다소 활기를 띠면서 벤처기업의주가가 급등해 벤처기업 및 벤처캐피털 모두에 큰 이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국내 54개 창업투자회사와 3개 신기술금융회사 및 한국종합기술금융(KTB)은 요즘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벤처 유망주들에 대한 주식투자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신기술금융회사들은 안전한 융자에 집중했고 창투사들도 투자의무비율을 지키는데 급급했던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이다. 그만큼벤처캐피털의 본업에 충실하는 셈이어서 바람직하다고 할수 있다.◆ ‘통산부 벤처기업 육성방안 졸속’ 비판도벤처업계는 최근 발표된 통산부의 벤처기업육성방안에 더욱 고무돼있다. 그러면서도 너무 호들갑스러워 반신반의하는 측면도 있다.물론 벤처가 경기침체의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이라는데 대부분이공감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경제의 부흥사를 볼때 벤처의역할이 지대하다는 것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냉정히 보면 정부가 벤처에 모험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연간 1만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부도나는 상황은 어쩔수없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한 느낌조차 든다. 마치 시들어 가는 나무를 되살리기 보다는 양질의 새싹만 가꾸는데 전념할 양인 듯하다.시장개방이 가속화되는 현실을 보면 대부분 업종의 중소기업들 가운데는 몇년내 경쟁력을 상실해 도산할 위험이 있는 회사도 많은것 같다.물론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의지가 넘친 나머지 현실성보다는 이상을 좇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통산부의 벤처기업 육성방안을 보고 졸속이라고 비평하는 점은 정책입안자들이 새겨야할 지적이다. 일단 발표해놓고 여론의 비판을 받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차라리 편할정도이다.이번 벤처육성안은 벤처업계의 요구수준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것들이 많다. 「대기업 출자한도 예외인정」 「중소·벤처기업 전용의3부시장 개설」 「벤처자금에 대한 출처조사 면제」 「벤처기업 육성 특별법제정」 등이 골자이고 기타 세세한 것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어렵다. 역으로 얘기하면 그동안 업계 요구사항 안들어주고뭐했냐고 질책할 수도 있는 셈이다.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지 채 1년도 안돼 관계기관과의 의견조율도 없이 비슷한 기능의 주식 3부시장을 만들겠다고발표했으니 의구심을 살수밖에 없다.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안도 그렇다. 기존에 벤처캐피털 관련법안이 3개나 있다. 그위에 특별법을 만들어 벤처기업의 창업 성장에 장애를 받지 않도록 기존법의 각종 규제를 예외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벤처 관련 법안을 하나로 통일하기는 커녕 새로운 법을 만들 경우 정책추진에 있어 혼란이 초래되고 부처간 마찰도 빚어질 공산이 크다.그동안 벤처 관련제도가 규제의 틀을 못벗고 업계에 별 도움을 못줬던 것은 따지고 보면 강력히 추진할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하다. 통산부가 추진하려니 재경원이 막고 재경원이 이끌려니 통산부가 반발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실무부처인 중기청은 실권이 없어 수동적으로 움직였던 것이 그간의 관행이다. 그만큼 「벤처」는중소기업 육성과 관련해 부처들이 생색내기에 좋은 과목이다.이번 통산부의 발표 이전인 지난해 10월 재경원이 급작스럽게 벤처육성을 위한 한 방안을 제시해 업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재경원장관이 느닷없이 「우량 창투사의 신기술금융회사(재경원산하)전환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때도 통산부나 중기청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것도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발표했다.이때 통산부와 중기청은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는 꼴이었다. 통산부는 물론 창투사 단체인 투자회사협회 역시 졸지에 대형 창투사6~7개를 재경원에 빼앗길 처지가 돼 난감해했다. 다만 해당 창투사들만 창업투자외 리스 팩토링 등 다양한 업무를 할수 있을 가능성에 다소 들떴었다.◆ 벤처관련 규제 풀고 시장원리에 맡겨야재경원의 이 발표가 통산부(중기청)관계자들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한 요인중 하나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어영부영 하다간 재경원에 알짜는 다 뺏길 것 같은 위기감도 느꼈을 것이다.「창업억제법」으로까지 불리던 중기청의 창업지원법이 바뀌고 제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설립후 7년이내의 업체에만 투자토록한 업력제한 규정철폐, 투자의무비율 완화 등 창투업계에서 요구하는 개선안을 들어주겠다고 곧바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일부 창투사를 신기술금융회사로 전환하려는 재경원의 계획은 결국무산되고 말았다. 이달초 해당 6개 창투사가 신기술금융사로 전환하지 않기로 재경원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있을 여신금융개편안이 어떤 모습일지가 불투명한데다 창업투자의 성공사례도 잇따르고 있어 신기술금융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이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통산부의 발표는 벤처에 관한한 통산부(중기청)가 실권있는 전담자란 점을 선언한 것으로도 해석할수 있다.정부는 벤처 육성책으로 오는 2005년까지 4만3천개의 벤처기업을창업·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에 조급해할 것이 없다. 우선 실현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가면 되는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갖가지 대책에 앞서 사회전반에 벤처정신이 충만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벤처관련 규제를 풀고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부터 과감히 실천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니 인터뷰 / 배인탁 동양창업투자 사장"투자자금 공급·회수 원활해야"벤처비즈니스는 업종 특성상 모험심이 있고 순발력 과감성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어울리는 분야이다. 동양창업투자의 배인탁 사장(42)은 이러한 소질을 지닌 벤처캐피털리스트이다.그가 동양그룹 기조실 경영전략팀장으로 있다 그룹의 창투사 육성방침에 따라 지난해 41세에 일약 대표자리에 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벤처업무를 맡은지는 얼마 안됐지만 식견은 꽤 앞서 있다.경기고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출신(기계공학 박사)인 그는 미국 유학시절부터 이미 실리콘밸리의 벤처 관계자들과 정보를 교류할 정도로 이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 때문에 배사장은 벤처캐피털업계에선 가장 앞서 미국식 프로페셔널리즘을 도입하고 있다.미국식 벤처를 잘아는 그는 최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안에 대해『매우 획기적인 것이지만 벤처제도 개선에 앞서 이를 둘러싼 저변환경을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재편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견해를 밝힌다. 『정부가 법 제도란 수단을 통해 군림하거나 관리하려 해선 안되고 그 테두리 내에서 비즈니스가 자율적으로 행해지도록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산부의방안대로 벤처기업육성 특별법을 만들고 벤처·중기 전용의 3부시장을 개설한다 해도 이것 자체가 또다른 형태의 규제가 될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그는 『실리콘밸리가 벤처캐피털의 본고장으로 발전할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세계에의 도전을 좋아하는 미국인 특유의 기업가정신과정부의 규제 간섭이 없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문화풍토 때문』이라며 그예를 들었다.또 고급·전문 인력을 공급해주는 유수의 대학이 주변에 있어 긴밀한 산학협동체제가 갖추어져 있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통해 창업자및 투자자에게 쉽게 자금을 공급하고 회수할수 있는 점도 미국 벤처의 성공요인이란 설명이다.배사장은 스스로 도전정신으로 무장해 있다. 그는 올들어 사내 분위기 쇄신을 위해 파트너들이 무한책임하에 유망업체를 철저히 분석해 투자를 결정하는 미국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심사역들에게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고 투자성과에 상응하는 인센티브제를시행,억대 연봉도 받을수 있게 한 것이다.해외투자에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벤처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 7년전 설립한 지사를 통해 유망업체를 골라 적극 투자하고 있다. 현재까지 실리콘밸리내 투자건수는 12건(2백만달러정도)이나되며 올해중 3건정도를 새로 투자할 계획이다.『미국과 한국간 국경없는 투자체제를 구축해 양국 기업들에 기술제휴 합작등으로 연결해주고 투자지원을 확대해나갈 작정』이라고배사장은 강조한다.그의 투자영역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벤처포럼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 동남아 벤처상황을 파악했다. 배사장은 미국 벤처가 하이테크중심인데 비해 태국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은 로테크(저급기술) 위주라며 성장률이 높은 이지역에도 투자할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