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작가 전승일씨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붓이 아닌 컴퓨터의 펜입력장치. 물론 전씨 앞엔 이젤대신 모니터가 놓여 있다. 그러나 모니터안에는 수채화같은 화사한 그림이 들어있다. 물감이 마르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그림을 그려나간다.디지털아티스트 이상윤씨는 항상 프로그래머와 함께 작업한다. 머릿속에서 구상한대로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야 하기때문이다. 이상윤씨는 그림의 움직임을 프로그램으로 만든다.컴퓨터는 붓과 물감을 대신할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편리하게사용할수 있어 이미 실용성이 강한 디자인분야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 자리잡은 상태다. 그러나 컴퓨터는 편리함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영역을 무한하게 확장할수 있어 새로운 창작도구로 주목받고 있다.컴퓨터는 간편하면서도 저렴하게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컴퓨터를 활용한작품중엔 동영상이 많다.컴퓨터아트는 배포되는 방법도 기존 작품들과 크게 다르다.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되고 도록으로 만들어져 독자의 손에 들어가지않고 CD타이틀로 만들어지거나 인터넷을 통해 배포된다.◆ 컴퓨터 활용 작품엔 동영상 많아CD타이틀로 만들어진 작품은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림이나 조각과는달리 독자들이작가의 작품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돼 있다.이전에는 미술관을 거닐며 보기만 하면 됐지만 CD타이틀에 수록된작품들 중에는 마우스의 움직임만으로 작품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것도 있다.예를 들어 스케이트가 있는 정물화에 마우스의 커서를 대고 움직이면 스케이트가 커서를 따라 움직인다. 평범한 정물화에 마우스로클릭하면 모양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컴퓨터아트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아직은 다양성을 모색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아트가 자리잡지못하는가장 큰 어려움은 작품의 유통구조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컴퓨터아트의 대표적인 매체인 CD타이틀이 확고한 수요기반을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작품이 다른 종류의 오락물을 담은 CD타이틀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이 때문에 이상윤씨는 『오락보다 예술이 더 재미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조각이나 회화와 같은 기존의 미술품들의 경우 진품은 오직 하나일수밖에 없는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작품의 가치가 올라간다. 반면 컴퓨터아트는 진품이 따로 없다.복사본과 원본의 차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희소가치란게 있을수없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복사할수 있기 때문이다.기술의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신기술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작가들에게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대자본의 후원을 받는 광고와 같은상업물의 기교가 너무나 뛰어난 것도 컴퓨터아티스트들을 힘겹게만드는 요인이다. 광고나 디자인 특수효과는 컴퓨터를 활용한 역사가 훨씬 깊어 예술가들보다 훨씬 풍부한 노하우를 축적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광고나 특수효과가 너무 재미있어 일반인들의 흥미를 독점할수 있기 때문이다.교육 역시 컴퓨터아트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소설을 읽는 목적이수능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의 교육현실에선 다양성이 나올수없다.문화적 공간이 많아 어려서부터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자연스럽게자극받을수 있어야 한다. 해묵은 논란거리인 검열 역시 해결돼야할숙제중 하나다.컴퓨터아티스트 강홍구(42)씨는 『예술만이 할수 있는 것을 찾아야한다』며 컴퓨터아트가 담아야 할 내용을 「비판정신」이라고 강조한다. 『생활속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가질수 있도록 하고 한번이라도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수 있는 여유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다만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설득력있게 담아내는가입니다.』가벼우면서 신선한 방법에 메시지를 담아야 그 메시지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컴퓨터아트가 자리잡기 위해선 작가와 독자의 저변확대가 필수적이다. 수많은 독립작가들이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특기를갖고 축적해온 노하우가 사회저변에 깔렸을 때에야 비로소 대작이나올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