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하면 돈이 벌리는 시대에는 「차입경영」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자본이 축적되지 못한 상황에서 내부유보를 통해 사업확대를 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다. 개미가 성을 쌓는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차입경영의 시대에는 톱경영자의 능력이 사업 아이템발굴과 자금차입수완에 따라 평가되기 일쑤였다. 나머지는 밀어붙이면 만사가 해결됐다. 은행돈은 먼저 빌려다 쓰는게 임자라는 소리도 그래서 나왔다. 「한강의 기적」에는 차입경영이 쌓아올린 모래성같은 불안한 요소들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그러나 90년대들어 「매출지상주의」 「시장확대주의」에 제동이걸렸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몸집을 불리기보다 기본 체력을 닦는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더욱이 개방화 국제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취약한 자본구조가 멍에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의 경쟁사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 5∼6%의자금을 넉넉하게 끌어다 쓸 때 우리 기업들은 제2금융권과 사채시장을 기웃거리며 금리불문하고 급전을 조달해 쓰는게 다반사였다.자금시장이 경색되면 3년 연속 흑자를 내고도 부도리스트에 올라야한다. 중견 모방업체인 유성의 부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재무구조가 워낙 취약하다보니 기업들이 해외에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조달해 쓰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이다.영업이익을 6.5%(96년 제조업기준)정도 내고도 금융비용을 까고 산출한 경상이익률은 0.99%로 뚝 떨어진다. 땀흘려 일하고도 번게 없는 셈이다. 최근 몇년새 그런 장사를 해왔다. 이런 추세로 불황이장기화될 경우 앞으로 계속 이런 비참한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차입의존도가 높은만큼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은 늘어난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금융비용부담률(금융비용/ 매출액)은96년중 5.8%로 95년의 일본(1.3%), 대만(2.2%)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한 자본구조 탓에 힘써 일해도 번게 없다차입경영의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서 남은 것은 얼룩진 상처와 회한뿐이다. 올들어 부도를 낸 한보 삼미는 파티의 기분에 젖어 있다헤어나지 못하고 침몰한 케이스이다. 규모확대의 시나리오가 붕괴되고 자본의 비효율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자기자본비율이 5%를 밑돌고 20%가 넘는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 버틸수 있는 회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빚이 더큰 빚을 낳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가 기업 자체를 짓눌러버린다.증권거래소가 집계한 12월 결산 상장법인(은행 제외)의 부채총액은지난해말 현재 2백6조7천억원 규모였다. 반면 자본총액은1백1조8천억원으로 부채비율(2백63.85%)이 전년보다 더 높아졌다.80년대 버블기에 에퀴티 파이낸스로 60조엔에 달하는 뭉칫돈을 자본시장에서 끌어다 쓴 일본기업들이 90년대들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장점유율위주의 확대경영의 말로를 일본기업들은 실감하고 있다. 과잉설비투자와 재테크에 주력해온 일본기업들도 결국 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됐다.◆ 경영의 기준, 주주중심으로 짜여져야차입경영의 시대에는 주주가 실익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로 전락하기 쉽다. 화려한 매출, 높은 시장점유율의 공과는 모조리최고 경영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런 메커니즘에서는 1인 대주주가 경영권을 독식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확대경영에 따른 기업부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주주들인데도 말이다. 삼미그룹이 부도를 내면서 4만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했다. 「회사는 누구의 것일까」코퍼레이트 거버넌스(CorporateGovernance)의 논의는 그래서 필요하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회사의 주인은 당연히 주주들이다. 주주의 이익에 상반되는 경영은설자리를 잃게 된다. 기업경영의 기준도 마땅히 주주 중심으로 짜여져야 한다. 주주중심의 경영은 바로 자본효율을 높이는 것이다.경영자의 능력도 자본효율을 얼마나 높였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90년대 들어 살로먼 브라더스는 자본효율에 따라 톱경영자의 연봉을 1백만달러에서 2천5백만달러로 증감시키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자본효율을 악화시킨 경영자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주주(소액주주 포함)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미국 일본기업들이 서둘러 ROE경영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주주자본)으로 나눈 수치인ROE는 투자자(자본참여자)들의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해많은 수익을 거두었는지를 따지는 지표이다. 기업의 경영성과를 가늠하는 새로운 지표인 EVA(EconomicValue Added)도 따지고 보면 ROE처럼 자본효율을 꼼꼼하게 따져보기 위한 개념이다. 당기순이익은 타인자본에 대한 비용만을 반영해산정한 손익이다. 따라서 자기자본의 사용에 따른 기회비용을 꼼꼼히 따져 경영성과를 정확하게 분석하자는 의도에서 8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에 의해 도입됐다.<한경Business designtimesp=4909>는 국내 상장사들이 얼마나 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우리나라의 기업회계기준상 자기자본이나 당기순이익이 갖는 몇가지 문제점을 보완해 수정ROE라는 새로운 지표를 분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7백64개의 상장사중3월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30개기업을 제외한 7백34개기업을 대상으로 수정 ROE를 조사했다. 자료는 감사인 감사결과 수정된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했으며 조사는 상장사협의회에 제출된사업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총자본회전율 높이고 주주자본 늘리지 말라전체 상장사들의 지난해 평균 수정ROE는 9.73%로 96년 평균 실세금리(11.87%)보다 2.14%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상장사중자본잠식 상태여서 아예 수정 ROE를 산출할 수 없는 회사도 42개사로 전년보다 12사가 증가했다.수정 ROE분석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대부분의 상장사들이불황기에 사업구조조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익을 부풀리려하지않고 감가상각 및 부실자산 등을 과감하게 회계에 반영시켜 털어버렸다는 점이다. 전년도에 적자를 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노력했던 증권사들도 부실자산을 과감하게 회계에 반영시켜 적자폭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당장의 아픔이 있더라도 장기적인 비전을 찾아보려는 경영전략에따른 것이다. 한보 삼미 등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로 기업들 사이에위기감이 확산된 것도 이같은 현상의 또다른 요인이 됐다. 이에따라 ROE보다 수정ROE가 높은 기업들이 훨씬 많았다.경제전문가들은 ROE를 높이기 위해선 사용총자본회전율을 높이고가능하면 주주자본을 늘리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코스트가 낮다고 무턱대고 유상증자를 실시해 사업을 확장하면 결과적으로ROE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업확대가 필요할 경우 기업매수 등을통해 본업이외에서 안정수익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일본 기업들은 ROE를 높이기 위해 소량생산으로 재고부담을 줄이고가능하면 가격경쟁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90년대들어일본의 노무라증권이 상품수를 30%가량 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기술우위를 바탕으로 고가품 생산에 주력하면 1인당 이익을 유지해자산사이드의 수익성저하를 막고 있다. 쉽게 말하면 밸런스 시트중심의 경상이익주의에서 벗어나 자본효율을 중시하는 경영을 펼치고있다.국내 기업들도 자본효율중심의 경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직을 대대적으로 리스트럭처링하고 경영력이 없는 사업부를 찾아내 정리하겠다(LG그룹)는 기업들도 점차 늘고 있다. 사업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익이 창출되는 아이템만 영위해야 한다.불황기일수록 ROE중심 경영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수정ROE 추이 살핀후 투자하라ROE(Return on Equity)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백분율이다. 주주들이 투자한 자본이나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등을 합친자기자본을 경영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통상 ROE가 실세금리보다 높으면 그 기업의 경영자는 일단 「합격」이라고 볼수 있다. 주가도 상승세를 탈수 있다. ROE가 높으면 배당을 높일수 있고 내부 유보도 할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회계기준에 비춰볼 때 자본효율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선 기존의 ROE공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경Business designtimesp=4922>가수정 ROE란 새로운 지표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산재평가 감가상각 재평가적립금등 실질적인 경영성과와 무관한 수치를통제해 한국 현실에 맞는 지표를 만들었다.물론 수정ROE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몇년동안 적자를 기록해 자기자본을 까먹은 회사가 약간의 이익을 올려도 수정ROE는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재무구조의 건전성여부도 함께 살펴봐야한다. 이번 조사에서 자기자본비율(자본총계/총자산)로 재무건전성을 가늠했다. 자기자본비율이 높으면서수정ROE가 높게 나타나면 우량한 회사라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총자산회전율 매출액순이익률을 부문별로 분석해보면 그 회사의 기업내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부동산처분 등에 따른 특별이익이나 특별손실을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기업의 경우 수정ROE가 경영내용에 비해 높게 나오기도했다.주식투자자들은 수정ROE의 추이를 살펴본 후 성장성이 예상되는 종목을 발굴하는 것도 유용한 투자기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