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의존경영」. 우리나라 기업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중의 하나다. 자기자본보다는 빚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예사다. 수익성을 따지기 보다는 외형부풀리기 경쟁에나섰던 「양경영」이 이런 부채누적의 근인이다.우리나라 기업의 재무구조를 보면 이같은 지적이 결코 과장된 것이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수 있다. 증권거래소가 집계한 12월결산 상장법인(은행은 예금이 부채라는 특수성 때문에 제외)의 부채총액은지난해말 현재 2백6조7천2백억원. 반면 자본총액(자기자본)은1백1조8천4백48억원에 머물렀다. 부채총액을 자본총액으로 나눈 부채비율이 무려 2백63.85%에 이르고 있다. 이는 95년(2백43.93%)보다 19.92% 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반면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 자산총액)은 37.8%에 머물고 있다.30대 재벌은 정도가 더 심하다. 30대그룹의 상장회사 부채총액은1백84조7천1백27억원으로 전체 상장회사 부채총액의 68.7%나 된다.반면 자기자본은 54조1천1백68억원으로 절반을 약간 상회(53.1%)할뿐이다. 이에따라 30대재벌의 부채비율은 3백41.26%로 전체기업보다 77.4% 포인트나 높다.종속회사를 합할 경우엔 부채비율이 천정부지로 높아진다. 대우의개별 부채비율은 3백98%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나 연결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은 1천56%로 높아졌다. 현대종합상사도 1백93.6%에서1천15.3%로, 삼성물산은 8백82%에서 2천2백57%로 각각 악화됐다.신호전자는 1천8백10%에서 6천4백36%로 뛸 정도다.◆ 30대 재벌, 비상장사 등에 부실요인 떠넘겨그나마 이런 숫자는 증시상장요건을 맞추기 위해 크게 호전시킨 것이어서 실상보다는 낫게 여겨진다. 비상장회사를 포함할 경우 사정은 더욱 악화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30대기업집단(상장·비상장회사포함)의 부채총액은 지난해말 3백47조8백24억원. 전년보다 무려 74조8천7백72억원(27.4%)이나 늘어난 규모다. 상장사만의부채총액보다도 1백63조1천1백20억원(88.3%)이나 많다. 반면 자본총액은 70조5천4백20억원에서 77조4천60억원으로 9.7% 증가하는데그쳤다. 이에따라 부채비율은 3백86.9%에서 4백49.4%로 62.5%포인트나 높아졌다.반면 자본총액이 자산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자기자본비율은20.5%에서 18.2%로 낮아졌다. 이는 국제수준을 크게 밑도는 것이다. 제조업을 기준(94년)으로 했을 때 대만의 평균자기자본비율은53.4%에 달했다. 미국과 일본도 각각 37.5%와 32.3%에 이르렀다.우리나라는 같은해 24.8%로 제일 낮았다.비상장회사를 포함했을 때와 연결재무제표상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되는 것은 기업들이 상장사의 부실요인을 비상장사나 종속회사로빼돌리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좋은 것은 자기가 취하고나쁜 것은 감독당국의 감시의 「눈」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 회사에 떠넘김으로써 모두가 부실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전자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단독으로는7백1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16개 자회사를 포함시킬 경우엔무려 3천8백16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95년의 연결후 당기순이익이 7천9백64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드라마틱한 변화인 셈이다.그룹별 부채비율(비상장사 포함)을 보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부도위기에 몰려 금융기관들의 「부도방지협약」의 「보호」아래겨우 연명하고 있는 진로그룹(19위)은 부채비율이 무려3천6백19.4%나 된다. 자본총액(자기자본)은 1천30억원에 불과한데빚은 3조7천2백80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연간 이자비용만 해도줄잡아 4천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스스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한라그룹(12위)의 부채비율도1천9백85.59%에 달한다. 지난 2~3월 부도설에 휘말렸던뉴코아(25위)의 부채비율은 1천2백23.88%이다. 30대재벌중 롯데만이 유일무이하게 2백%를 밑돌뿐이다.개별회사의 부채비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동일패브릭(1만2천5백23.64%) 현대종합목재(1만2천1백83.52%)쌍용자동차(1만4백97.08%)등은 부채비율이 1만%를 넘는다.OB맥주(9천3백16.77%) 동해펄프(7천4백93.24%)기아특수강(2천8백32.46%) 아남전자(2천6백36.73%) 등도 예삿일은아니다.과다한 부채는 금융비용을 늘려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한국은행이 밝힌 지난해 제조업의 평균차입금금리는연11.22%. 전년(11.68%)보다 0.46%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두차례에 걸친 재할인율 인하와 그에 맞춘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체의금융비용부담률(지급이자 매출액)은 오히려 5.57%에서 5.84%로0.27%포인트나 높아졌다.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빚이 그보다 더많이 늘어나는데 금융비용이 떨어질수는 없는 것이다. 30대재벌(비상장포함)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겨우 3천5백40억원에 불과한 것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95년의 8조4천5백60억원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다.◆ 금리인하해도 금융비용부담률 높아져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빚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입을 최소화하고 내부유보를 높여오고 있는 회사도 적지 않다. 청호컴퓨터(26.4%) 성보화학(26.9%) 보락(28.7%) 새한정기(29.6%)등은 부채비율이 30%를 밑돌고 있다. 상장사 평균부채율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부채비율이 70% 미만인 기업도 30개를 넘고 있다.SK텔레콤(전 한국이동통신)과 주가 1,2위를 다투고 있는 태광산업의 유보율은 무려 1만56.2%나 된다. 상장사평균유보율(2백82.58%)을 35.6배나 뛰어넘는 수준이다.연합철강(3천8백49.5%) SK텔레콤(3천6백24.1%)고려제강(2천9백16.5%) 비와이씨(2천7백34.3%)대한화섬(2천1백68.3%)등도 높은 유보율을 나타내고 있다. 부채의존 경영은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끝내 부도를 내고 쓰러지는 운명을 예고한다. 한보와 삼미가 대표적인 예다. 또 우리나라기업의 낮은 수익성도 따지고 보면 다 빚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제조업의 매출액경상이익률은 지난해0.99%에 불과했다. 1천원어치를 팔면 겨우 10원만 이익으로 남겼다는 얘기다. 이는 95년의 3.59%에 비해 무려 3.6배나 낮아진 것이다.과다한 빚은 경기가 좋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융비용을 제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사태를 크게 악화시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재벌기업들의 부도위기는 대부분 과다한 차입금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기순환적·구조적불황이 함께 닥침으로써 이익을 내기가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부채에 대해선 꼬박꼬박 이자를 내야한다.최근들어 중견그룹을 중심으로 「군살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보·삼미가 부도를 내고 쓰러지고 진로와 대농그룹이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는데 따른 자구노력 차원에서다. 늦은감은 있지만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수 있다. 부채위에 쌓은 기업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