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회장은 현대그룹에서는 「MK」로도 불린다. 그의 영문이름이니셜이다.MK는 정주영명예회장과 변중섭여사 사이의 9남매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맏형 몽필씨가 작고한 이후 집안에서 장자역할을 해왔다.때문에 재계에서는 일찍부터 정회장이 현대그룹의 대권을 승계할것으로 보고 그가 관장하는 현대정공 현대자동차써비스 현대강관현대산업개발 인천제철 현대기술개발 등 소위 「MK그룹」의 행보에깊은 관심을 보여왔다.하지만 정회장은 처음부터 현대그룹의 차기총수감으로 낙점을 받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회장은 지난 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할 때만해도 부친인 정명예회장의 영향력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 77년 세운 현대정공이 컨테이너 세계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할만큼 성공하자 뒤늦게 부친으로부터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정회장은 특히 성품면에서 불도저같은 추진력과 보스기질을 갖추는등 부친을 쏙 빼닮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의독특한 스타일도 갖고 있다.우선 대부분의 그룹총수들과 달리 남의 말을 경청할줄 안다. 그가회의를 주재하거나 남들과 대화를 할 때 그의 「지분」은 30%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경청 70%」다.매달 두번씩 개최되는 사장단회의에는 약 60명이 참석한다. 주력회사와 기업규모 순으로 그동안의 사업실적과 예정사항, 주요업무사항이 보고되는데 한 계열사라도 빠지는 일이 없다. 이는 종합기획실이 실적과 예정사항을 총괄보고하고 그룹회장이 관심사항별로 묻고 의견을 듣던 과거 방식과는 1백80도 다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정회장은 대부분 듣기만 한다. 그룹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을제외해놓곤 정회장 대신 회장단이 나서 관심사항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각 회사 보고스타일도 바뀌어 과거에는 볼수 없던 영상물까지 사장단회의에 등장하곤 한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정회장의 경영방침에 따라 달라진 모습이다.◆ ‘자율과 책임’ 경영방침에 임직원 적극 호응두번째는 「현장주의」다. 현장을 모르고서야 현대그룹의 최고경영진에 오르는 것은 꿈도 꿀수 없다지만 정회장의 현장주의는 남다르다. 그룹회장이 되고 나서 자주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적어져 답답하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 그는 회사를 직접 경영하던 지난 95년까지만해도 매달 두번씩은 직접 울산과 창원공장을 점검할 정도로 현장을 아낀다. 7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써비스와 현대정공을 설립했을 때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대그룹 특유의 곤색 점퍼와 군화차림으로 현장에서 살았던터라 지금도 그 차림이 편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다.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회사를 키워낸 것은 근로자들과 작업현장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솔선수범한 그의 현장주의가 일궈낸 작품이었다.세 번째는 「기술주의」다. 아무런 기술도 없으면서 현장만을 강조하는 것은 「머슴스타일」의 경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4월 현대기술상을 제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술개발은 현대그룹의 영구적인 기틀마련은 물론 후세를 위한 투자이므로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기술개발을 촉진하려면기술자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높일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말한다.정회장의 이같은 발상에 따라 올해는 현대기술상의 수혜범위를 협력업체까지 넓히게 됐고 대학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벤처기술상까지 제정하게 됐다. 그의 이같은 기술중시 마인드는 한양대에서 공업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느낀 나름대로의 기술에 대한 지식과중요성이 배경인 듯 싶다.정회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대개 그를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누구를 만나건 소탈한 너털웃음과 함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외모도 투박해 저돌적이라는 평을얻기 쉽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그를 평가하는 것은 오산이다.그룹 관계자들도 추진력이 있다는데는 동의하지만 저돌적이라는 표현에는 거부감을 나타낸다.그의 사업스타일을 보면 쉽게 알수 있다. 그가 컨테이너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의 수출이 급격히 신장할 때다. 하지만 수출상품을 실어나갈 컨테이너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정회장이 남들보다 한발 앞선 것이 세계 최대 컨테이너업체로 성장하게 된 비결이다. 그렇게 성장한 컨테이너사업은 이제 국내에는거의 남아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 부문인 냉동컨테이너제조부문만 남았고 스틸컨테이너 부문은 이미 해외로 진출해 있다.남들처럼 고임금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신 현대정공은공작기계 철도차량 방산 자동차로 사업영역을 넓혀 놓았다.덩치에 맞지 않게 꼼꼼하기도 하다. 오랫동안 양궁협회회장을 맡아온 그가 지난해 애틀랜타올림픽에 격려차 들렀을 때 비서진들은 한밤중에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선수단에게 선물로 준비한 초콜릿에잠을 설칠수 있는 카페인이 다량 포함돼 있다는 것을 정회장이 포장지를 꼼꼼히 살펴 발견해 냈기 때문이다. 양궁선수단은 이런 정회장의 관심에 힘입은 덕분인지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작업복 차림이 편하다” 현장경영 중시그는 외부에 나서길 싫어한다. 특히 언론매체에 나서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들과 직접 맞대면하는 것을 꺼린다. 그룹회장 취임직후인96년 2월 종로 한일관으로 출입기자들을 초대해 불고기와 포도주로저녁을 산 것이 그의 유일한 공식 언론접촉이다. 흔히 그가 어눌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아버님과 삼촌들이 계신데 감히…』라고 말한다.정회장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가치경영」이다. 취임직후부터 내세우고 있는 경영론이다. 가치경영이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기업활동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과 만족감을 느끼게하는데 기업 경영의 목표를 두겠다는 것이다. 기업 내부구성원과외부의 고객을 모두 만족시키고 나아가서는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업과 관련된 모든 부문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치경영론이다.그 핵심이 투명경영이다. 정회장은 취임직후 국내기업 처음으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현대정보기술과 금강기획 현대종합상사를 비롯한 상당수 계열사가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앞으로 그룹 전계열사로 확대한다는 원칙이다. 그동안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IR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미 20여 계열사가 IR조직을 신설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투자자는 곧 고객」이라는 것이 정회장의 생각이다.정회장의 가치경영은 궁극적으로 「세계 일등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미래 고도산업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전자부문에서는 반도체와 통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특히 비메모리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자동차사업도 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가 되는 것이 목표이며 중공업부문도 LNG선등 고부가가치 사업에주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항공우주산업 금융사업도 그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부문이다.그러나 지금 정회장의 관심은 무엇보다 제철사업에 집중돼 있다.정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창업해 한국의 기간산업을 이끌어왔던 것처럼 그 스스로도 미래 한국 기간산업의 중심에 서기 위한 제2의도약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