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가방」. 한때 남에게 드러내놓고 팔지못하던 물건을 담아 필요한 손님에게만 살짝 보여주고 팔던 시절의 유용한 이동매장이었다. 내놓고 팔기에 창피한 물건들도 있었다. 때로는 온갖 고민의해결사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까지 되면서. 「청계천」. 어디내놓고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안은 사람들이 남몰래 찾던 세운상가주변과 황학동 벼룩시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007가방이나 청계천은성(性)이 암호처럼 은밀히 이야기되거나 가끔 술자리에서 질펀하게오가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암호는 깨지고 상징은 의미를 잃었다. 바로 도처에 생겨난 섹스숍 때문이다. 덕분에 청계천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고 007가방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된다.◆ 실구매층 30대 대부분, 남자가 70% 차지「고개 숙인 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해소이자 신탁(神託)을받은 것처럼 가끔은 해결책을 챙겨 나오기도 하는 장소로 알려진성백화점, 섹스숍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5월. 백이기획(사장 백명주)이 전국적인 화제와 논란속에 서울 이화여대입구에「미세스터」라는 상호로 문을 열면서다. 그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속속 「성인용품점」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이 내 걸렸다.지난해 한때 체인본부만 10여개에 이르고 독립점포와 체인가맹점을합해 약 2백∼2백50여개의 점포가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미세스터」 「러블리 퀸」 「프로포즈」 「야누스」 「로즈 앤 비」 「핑크숍」 「쉬쉬매스터숍」 「샐리와 머피」 「해피 러브」 등이 대표적인 체인상호였다. 올 들어서는 서울에서 일산 분당 인천 장흥 원당 춘천 등 교외쪽으로 가는 국도변에 진열대를 갖춘 승합차나 트럭을 세워놓고 영업을 하는 이동식 섹스숍도선을 보였다.이러한 섹스숍의 폭발적 증가는 그만큼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라는말이기도 하다. L섹스숍을 운영하는 한 업자는 『개점초기에는 일반인들의 호기심 등으로 하루 매출이 최하 50만원』이라며 『매출액의 30∼40%정도를 순이익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섹스숍이급증하면서 시장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콘돔만을 전문으로 제조·수출해온 업체로 최근 「아프콜」이란 이름의 섹스숍체인점을 연서흥산업의 이봉삼이사는 『성인용품시장의 규모는 (섹스숍이나 체인본부들이)무질서하게 생겼다가 사라지곤 하므로 정확히 파악이안된다』며 『국내의 콘돔시장만을 보면 소비자가격기준으로 약4백∼5백억원, 제조업체기준으로는 약 2백억원 규모』라고 말했다.콘돔을 포함한 전체 성인용품시장 규모는 훨씬 더 크다는 해석이가능하다. 백이기획의 백사장은 『현재 48개의 미세스터체인이 연간 약 7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2백억원이상』이라고 추산했다.이러한 섹스숍에서 취급하는 물건은 다양하다. 성에 관한한 없는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프콜 이태원점의 서항석씨는『80여종의 콘돔류, 세정제, 팬티 등 내의류를 포함해 약 1백50가지를 판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구경을 하지만 실구매층은 30대가 대부분으로 남자가 약 70%를 차지하며 하루 평균약 50∼6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는 게 서씨의 덧붙인 말이다. 「러블리 퀸」의 경기이북총판과 당산점을 운영하고 있는 변영호씨는 『약 1백10종류의 물건을 갖춰놓고 있으며 콘돔류, 물리기구류, 젤리, 테이프 등이 많이 팔리는 품목』이라며 『대다수의 업체들이 물건구색이나 주로 팔리는 품목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같은 물건구색은 대개가 체인본부를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이라는 게 업자들의 말이다. 체인본부나 가맹점의 경우가맹비(또는 보증금)와 인테리어비 등이 들어간만큼 불법적인 물건을 팔다가 단속에 걸려 불이익을 받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업자들은 불법적인 물건들을 숨겨놓은 채 몰래찾는 고객들에게만 은밀히 판매를 한다』는 것이 백명주사장의 말이다. 한 섹스숍점주도 『남자손님들의 대다수가 포르노비디오 포르노서적 최음제 칙칙이(피부마취를 통한 발기지속제) 등 진열장에내놓지 않은 불법적인 물건들을 찾는다』며 『원하는 사람에게만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백명주사장은『불법적인 물건을 팔았을 때 나오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러한 불법적인 성인용품의 유통에 대해 업자들은 공급업체나 도매상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정부의 허가가 없는 자극적인 물건들이 공급업체 도매업자 등을 통해 유입되고 이들로 인해 시장질서가 무너지는 한편 단속의 표적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섹스숍이감소한 것도 불법판매를 하다 단속에 걸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음제 등 불법적 물건 판매하다 문 닫기도그래서 일부 체인본부 가운데 문을 닫거나 체인점개설을 중지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 업자들의 말이다. 『섹스숍을 처음 도입했지만불법판매를 통한 이익을 노리고 공급업자들과 직접 거래하는 체인점에 대한 관리가 불가능해졌다』는 백명주사장은 『현재 운영중인48개 체인점에 대한 물건공급만을 하고있으며 더 이상의 체인점개설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삼이사도 『보따리상 등 비정상적인 통로로 유통되는 물건이 많아지면서 콘돔생산전문업체인 서흥산업이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M섹스숍을 운영하는 김영옥씨는 『공급자와 직접 연락해 물건을 받는 게 가격도 싸고 다양한 물건을 많이 갖춰놓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가 말한 「다양한 물건」이란 포르노와 최음제 등 불법적인 것을 말한다. 『체인본부가 부도나 공급업자에게서 직접 물건을 받아 판매한다』는 H섹스숍주인 김모씨도 『진열된 것 외에도 많이 있으며 말만 하면 구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섹스숍이 범람하면서 그에 따른 문제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3월에 부산에서는 음란비디오와 음란서적을 팔던 섹스숍주인과 수입불허품목인 일제콘돔을 팔던 섹스숍주인이 구속되기도 했다. 과장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공공질서 또는선량한 풍속을 문란케 하거나 공중위생을 해칠 염려가 있는 발명은등록을 받을 수 없지만 일부는 등록출원만 한후 후속절차없이 특허등록원 실용신안등록원이라는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효과가 미지수인 물건도 있다. 『직접 제품을 사용·시험해보고 판매한다』는 러블리 퀸의 변영호씨는 『최음제나 발기촉진제등을 직접 시험해봤지만 효과가 없어 아예 물건을 들여놓지도 않는다』고 말했다.한편 섹스숍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얼마전 뉴코아백화점 일산점과 구월점에 개설된 섹스숍에 대해 매장폐쇄운동을 벌여 관철시킨 음란·폭력성조장매체시민대책협의회 사무국의 김성경씨는 『청소년들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의 섹스숍개점은 금지하고 꼭 필요한 성인들만 찾는 장소로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섹스숍업주들도 많이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회사원, 39)씨는 『나이를 구분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경우 식별이 어렵지 않겠느냐』며 『판매대상과 함께 판매품목도 제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