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사립여자고등학교 3년의 에리코. 「출근」시간인 오후 5시가되면서 그가 바빠진다. 베이지색의 미니스커트, 얼굴에는 진한 화장, 서너가지의 액세서리를 붙이면 누가봐도 어엿한 숙녀. 자동차교습소에서 신주쿠의 가게로 가는 동안 애인으로부터 휴대전화가계속 걸려온다. 『오늘은 아르바이트하는 날이쟎아, 다음에만나.』 애인을 따돌리는 에리코의 솜씨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다.에리코가 일하는 가게는 카바쿠라(카바레와 클럽의 합성어). 긴자일대에서 흔히 볼수있는 고급클럽을 대중화시킨 곳이다. 한사람당 2만엔이란 저렴한 요금으로 어필한다. 일하는 사람은 여고생이나 재수생 등 「초짜(初者)」들이 대부분으로 전문적인 호스티스에 거부감을 갖는 30, 40대의 회사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작년부터사귀고 있는 애인한테는 대학촌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것으로 속이고 있다.가게에서는 새로 스카우트 해온 10여명의 여학생이 점장의 면접에응하고 있다. 『너, 솔직히 얘기해서 몇살이야.』 『지난주로만18살이에요.』 점장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스카우트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한달이면 80명 정도나 거쳐간다. 스카우트맨은 신주쿠나 시부야의 인파가 지나는 길목에서 적당한 인물을 찍는다.에리코의 가게에는 현재 2백여명의 여성이 일하는데 이 가운데20명 정도는 여고생이다. 18세 이상이면 일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주인 입장에서 경력자에게는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하지만 경험이없는 여고생은 저렴하게 쓸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에리코는 시간당2천엔에 지명료(손님이 부를 때 받는 금액)로 2천5백엔을 추가해받을 수 있다. 『노력한만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취감도느낄 수 있습니다.』 에리코의 점포에서 가장 수입이 좋은 미키라는 여학생이 하는 말이다. 그는 일주일중 5일 출근, 60만엔 정도의월수를 올린다.◆ 고갸르·엔조고사이 등 신조어 유행그러나 에리코는 근무시간대가 초저녁 무렵이라 지명받는 경우가많지 않다. 월수도 7만엔 정도에 그친다. 가게안에서는 상대적으로많이 받는 액수가 아니지만 고교생의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파격적이다. 에리코가 이날 접대한 손님은 30대 초반의 말수 적은 회사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따분한 대화를 나누다 술취한 그를 택시에 실어보냈다. 대가로 받은 액수는 팁과 함께 1만엔 정도였다. 에리코가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는 술집에서 시중을 들며 기분을 맞춰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여고생들이 하는 아르바이트중에서는 극히 일부분이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보기 드문 다종다양한 섹스산업(일본에서는 풍속산업)의 천국이다. 그리고 그 산업을 떠받치는 인력으로 여고생층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얘기겠지만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에 이르기까지 섹스산업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는 것이 일본사회 현실이다.몇해전 대중잡지인 <주간 포스트 designtimesp=4955>에 도쿄대 여학생의 누드사진이실려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명문대 여학생의 알몸은 그러나 일본사회에서 「그냥 있을 수 있는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오래 전부터 와세다대학 게이오대학 등 여대생들의 누드행렬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2~3년전부터는 이른바 풍속산업에 여고생들의 유입이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고생의유입은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여성인력의 부족을 보완함은 물론 업소의 입장에서도 적은 급여에 여성을 충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또한 고객들의 취향이 전문적인 접객여성이 아닌 아마추어인 여고생의 신선함을 원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로지적된다. 이같은 일본 풍속산업의 현주소는 신조어에서 시작, 신조어로 끝나도록 표현된다. 「XX쿠라」로 불리는 다양한 풍속업태에 「고갸르」(고등학생과 GIRL을 합성, 풍속산업에 종사하는여고생을 지칭)라는 아르바이트인력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정확히 고갸르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는 그 속성상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일본성교육협회의 다노무라이사는 『고 3학년까지여학생들중 성체험을 갖고 있는 비율은 34%로 이 가운데 30% 정도가 단지 「외롭기 때문에」 「술마신 김에」 「(남자친구에게)채였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고 말한다.그는 이처럼 뚜렷한 이유없이 성체험이 있다고 답하는 여학생중에상당수가 풍속산업과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경시청도 95년 불법매춘으로 검거된 14~19세 여학생 숫자가 5천5백여명으로 93년의 3천9백명보다 대폭 증가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전화통화만 하면 되는 「테레쿠라(전화와 클럽의 합성어)」는 최근 국내에 유입돼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전화방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데토쿠라(데이트와 클럽의 합성어)」로, 전화통화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손님들이 여자를 지명해서데이트를 즐기는 업태다. 통상 팁으로 2만~3만엔 정도를 받을 수있기 때문에 고갸르중에서도 보다 많은 보수를 원하면 데토쿠라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섹스산업 중심인력은 ‘여고생’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테레쿠라나 데토쿠라를 통해 한두번 고갸르를 만난 중년남성은 한 여성과 지속적인 교제를 원하게 된다. 이같은 교제를 말하는 「엔조고사이(援助交際)」라는 신조어가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유포된데서도 일본 풍속산업의 한 단면을 알수 있게 된다. 이 신조어는 엔조이(Enjoy)와도 발음이 비슷하지만 단순히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교제에 응해주는 대신 고갸르에게 재정적인 원조를 한다는 의미다. 30만~40만엔의 월수는 보장되는 게 보통이다.엔조고사이와 고갸르는 올해 외국언론이 일본사회를 진단하면서 등장시킨 단어중 횟수면에서 1, 2위를 차지했을 것으로 판단될 정도다. 신문 TV 등 30여개에 달하는 미디어회사들에 이같이 「기형적」이라고 밖에 볼수없는, 산업으로 정착된 불륜중계사업이야말로일본사회를 분석함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음이 분명하다.토픽거리를 찾는 신문들의 얘기만도 아니다. 독일 슈피겔, 프랑스르몽드, 미국의 LA타임즈 등 권위지로 알려진 각국의 매스컴에서일본사회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이들 매스컴에는 이제와서야 헤이세이 불황이후 일본경제의 몰락보다도 「여고생의 일상생활」이훨씬 수수께끼이며 신비롭게 느껴진 것이다. 물론 일본의 풍속산업에 여고생들만이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낮에는 회사원이고 밤이면접객일을 하는 여사원들이 결코 드물지 않다. 이렇게 해서 구성된전체적인 일본 풍속산업의 시장규모는 약 5조엔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대략 1년 방위예산과 맞먹는 액수다.대도시의 중심가 지하철역 주변의 공중전화부스는 매춘선전물로 도배가 돼 있다. 알몸의 여자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사진밑에 전화번호가 표시돼 있고 「영수증발행」이란 문구마저 뚜렷하게 박혀있다. 터키탕격인 「소프랜드」(Soup Land)만도 일본전역에1천3백여개소가 성업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무희가 온갖 포즈로 웃음을 파는 라이브쇼업소들, 속옷 한장 달랑 걸친 여자가 술시중을 드는 란제리바등도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드는 풍속업소에서 빠질 수 없다. 성인들의 시사주간지, 어린이용의 만화에서도 선정적인 화보들이 있고TV 심야프로는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을쏟아내고 있다.일본에서는 성의 상품화가 반드시 여성의 상품화를 의미하는 것도아니다. 남성누드무용수가 등장하는 여성전용바는 물론 유명여성지들이 잇따라 남성누드사진을 게재,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많은 이방인들의 낯이 붉어지게 만드는 이런 풍속산업에 대해 일본인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의 한부분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굳이 숨기려 하지않는지도 모른다.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의 한계인지 알다가도 모를게 일본의 풍속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