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고인가 고도의 계산이 깔린 의도적 유출인가. 삼성의 보고서가 급기야 기존 자동차업계와 삼성간 극심한 감정싸움으로 비화되자 자료의 유출경위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삼성측은 구조조정보고서는 공식입장이 아닌 「내부 문건」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삼성자동차 산업조사팀의 김완표과장(35)이 자동차산업구조조정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연구소에 근무하는 대학선배인 N차장에게 자료교환차원에서 건네진게 물의를 빚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구조조정 보고서 내용의 대부분은김과장이 지난 4월1일 삼성자동차에 입사하기 전에 근무하던 쌍용경제연구소에서 연구해온 것들이며 결코 전략적 의도에서 자료를유출시킨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삼성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보고서 파문이 확산됨에 따라 현대의N차장으로부터 자료입수 경위와 유출배경에 대한 확인서를 이미 받았다고 전했다. 또 일부에서는 삼성이 기존업체의 인수합병(M&A)을위한 로비차원에서 통상산업부에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하고있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측은 국내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문제가 업계 전체의 공통 관심사이고 각사마다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데도 삼성의 내부자료만 문제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이에따라 삼성은 기존업체의 조직적 반발에 일일이 그룹차원의 대응을 하지 않기로 하고 검찰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태추이를지켜본다는 입장이다.그러나 기아자동차등 자동차업계는 삼성이 기존업체의 M&A를 위해대정부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불거진만큼 자료유출의동기가 순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뭔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란얘기다. 설혹 이번 사태가 보안사고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구조조정논의를 어떻게든 제기했을 것이란게 기존업계의 해석이다.삼성이 자동차사업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는 기존업체의 인수가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은 그룹 정보맨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D그룹의 한 정보담당자는 자료유출 당사자는 삼성측이 주장하는 김완표과장이 아닌데도 삼성이 계속 이를 주장하는 점도 리포트 유출의 의도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기아, 이번엔 호락호락 안넘어간다H그룹의 정보담당자는 삼성이 기존업체를 인수하는데 걸림돌이 되고있는 출자총액제한과 여신한도관리 등의 규제를 풀기 위한 로비가 지난해말부터 상당히 진행돼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부처간에도 사업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며 이 문제가 거론됐으나 부처간 이견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쌍용그룹의 한 관계자도 올들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조세감면 등을 위한 치밀한 대정부 로비전을 펼쳐왔던 삼성이 쌍용차인수가 물건너가자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쌍용차 인수추진과정에서도 언론에 이사실을 흘린게 누구이겠느냐고 이 관계자는 반문했다. 정보를 취합하고 가공해 이를 활용하는데 누구보다도 발군의 수완을 발휘해온삼성이 구조조정논의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기아그룹도 지난 94년4월 정부의 삼성 자동차사업진입 불허방침을뒤집을 정도의 로비수완을 발휘한 삼성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멀쩡한 회사를 음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성장한계봉착, 최고경영진에 대한 불신, 경영진간 갈등 등의 악의적인 표현이 들어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아는 특히 삼성이 지난93년 기아차주식매집, 95년 소하리공장 무단촬영 등 「전력」이 있는만큼 이번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자라보고 놀랐으니 솥뚜껑이라해도 안놀랠수가 있겠느냐는게 업계의 반응이다.재계는 이 싸움이 격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이 당사자간 원만한 화해를 원하고 있고 통상산업부 등 정부관계부처도 이번 사태가 빠른 시일내 진정되길 원하고 있어서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은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을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간 이전투구가 자칫 경제주름살을 더해줄 것이란 국민여론을 우려해서이다. 다만 「연합군」쪽에서는 「원죄론」의 시각을 갖고 있어 언제 또다시 불화가 재발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