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 독립성·감독체계 놓고 대립…김융기관 주인찾기 물건너 가

금융개혁의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재경원은 지난 5월이후 금융의 틀을 다시 짜는 개혁안을 차례 차례 발표했다. 한국판 빅뱅의전주곡이 흘러나오고 있는 셈이다.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개편안」 「금융산업 개편안」 「금융기관 소유구조 개편안」 등굵직굵직한 정책들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금융개혁의 원동력은 기존의금융관행으로는 개방화 국제화시대에 경쟁력을 갖출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다. 변해야한다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있다. 지난 1월 금융개혁위원회가 설립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금융개혁을 신속히 진행시키기 위해 별도의 위원회가 설치됐다.과거의 금융관행은 한정된 자금을 전력산업부문에 집중시키기 위해신용을 할당하는데서 시작됐다. 따라서 자율금융은 설땅이 없었다.금융수요자의 권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금융기관들은 제한적 경쟁체제에서 무사안일한 경영을 해왔다. 금융부문의 낙후도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보호막 속에서 정부의정책에 따라 정책금융을 지원하면 됐기 때문에 선진금융기법을 익히거나 전문인력을 양성할 기회가 없었던게 사실이다. 구태의연한금융관행은 금융거래비용의 상승을 초래해 금리상승요인으로 이어졌고 이는 또다시 실물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을 낳았다.그러나 금융개혁의 바람은 휘몰아치는데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영시원스럽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시대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보다 절충과 타협의 「기형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명분과실리를 바탕으로 국민 다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노력이 태부족하다. 밀실에서 고위관료들은 금융개혁안을 적당히 합의해 밀어부치려하고 이해당사자들은 이에 극력 반발하는등금융개혁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개혁의 명분이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부문별 개혁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안금융개혁안중 이 문제처럼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도 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문제를 놓고 재경원과 한국은행은 의견차이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끝없는 평행선을 긋는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건전한 토론과 이성적인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 가능성은 희박하다. 갈데까지 가봐야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다.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는지 모른다.한국은행이 지난 6월27일 금융감독기관의 통합을 반대하고 금융통화운용위원위를 한은 내부기관으로 두는 내용의 한은법 독자 개정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이다. 어차피 대화가 힘든 상황이라면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서라도 재경원의 밀어부치기를 막아야 한다는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재경원의 막강한 힘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재경원은 정부의 중앙은행제도안을 고의로 왜곡시키는조직이기주의에 따른 돌출 행동이라며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이다. 재경원은 늦어도 7월 중순까지 41개 금융개혁법률안 제·개정안을 당초 발표안대로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재경원과 한국은행 양측 어느 곳에서도 대화를 위한 노력은 찾아볼수 없다.사실 금융전문가들은 감독권 통합문제는 정답을 찾을 수 없지만 다른 사안의 경우 고개를 맞대고 논의하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문제 저문제 뒤죽박죽되어 서로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한은법파동을 바라보며 국민들이 「밥그릇 싸움」을 연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박진근 연세대교수는 한은법파동에 대해 정부가 충분한 논의없이정권말기에 무리하게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금융개혁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게 아닌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코 정권 치적차원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금융감독위원회신설에 따른 한국은행의 은행감독기능문제 △한은의 외환관리기능 배제문제 △금통위의장(한은총재)임명절차문제 등은 얼마든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풀수 있는 문제이다. 또 물가안정목표를 지키지 못하면 금통위의장을 해임할 수 있는 「계약조건」도 대안(보조장치)을 찾아 시행할 수 있는 사안이다. 장병화 한국은행 조사1부부장은 한은 내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금개위 작업에 최대한 협조했는데도 정부가 일방적인 개정안을 내놔 토론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은행소유구조 개편안당초 일정한 요건(신청자의 적격성, 자기자본비율등 재무상태, 산업자본과의 결합정도, 주식인수자금의 정당성)을 갖추면 시중은행의 지분을 10%까지 보유토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은행주식소유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지배했을 때의 폐해를 우려해서이다. 그러나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현행 소유한도내에서 1백%의 주주권행사를 인정하고 지금까지 은행비상임이사회 참여가 금지되어온 5대 대기업그룹을 은행 비상임이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제도개편에 따라 삼성그룹등 일부 대기업은 비상임이사 파견을 통해 은행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수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같은 정부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막으면서도 은행경영에 기업경영의 효율성을 접목시키려는 고육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재벌의 은행소유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도 개혁안마련 과정에서 반영됐다.그러나 은행의 소유구조문제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대기업들은 은행 부실경영의 원인으로 주인없는 소유구조를 꼽고 있다.은행을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곳으로 경영권이 넘어가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관치금융현상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배 폐해는 적절한 감독기능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대기업의 입장을 반영해 재경원은 금융감독원 설립이후 금융업의 동향과 경제력 집중추이를 보아가며 소유문제를 재론하겠다고 밝혔다. 정권말기에 은행 소유구조를 손대 특혜시비를 불러올수 있다는 점이 주인찾기를 미룬채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타협안을 내놓은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일부 금융전문가들은 금융개혁의 핵심과제였던 소유구조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은행의 주인찾아주기가 물건너 갔을뿐 아니라 은행간 합병등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보고 있다. 재경원이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에 발목이 잡혀 정작 핵심문제를 근본적으로다루지 못하고 이에따라 금융개혁의 효과도 상당히 퇴색될 것으로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