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인들은 선대에 비해 아무래도 「한국적 경영풍토」에 덜익숙하기 마련이다. 주도면밀한 경영 수업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부자간이라도 할수 없는 얘기가 있고 가르쳐 주기 어려운 노하우도있는 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영하기」위해서는 학교밖의 수업을 많이 필요로 한다. 이런 경우 연배가 어울리는 젊은 경영인들끼리 모임을 갖는다면 미비점을 메우는 하나의 수단이 될수 있을것이다.한국 YPO(Young Presidents’ Organi-zation)는 바로 그런 취지에서 출범한 재계 2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과거에 비슷한 과정을겪어왔고 앞으로도 같은 길을 가야할 입장에 있다는 동질성을 갖고있다. 예컨대 충분한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에 참여한 까닭에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친다.외부에는 말하기 힘든 속사정도 적지 않다고 한다.또 이들은 어느 시점에 가선가는 전경련이나 경영자총협회 등의 조직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나눠야 할 대상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적인 자리를 통해 얼굴도 익히고 경험도 공유하는 한편 선배들로부터 소중한 조언도 들음으로써 「힘을 얻자」는 것이 조직을 있게 만든 동기라고 할수 있다.YPO는 지난 66년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명예회장 등을 주축으로 설립돼 국내 재계 2세 조직중에서는 가장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중 있는 2세가 많이포진한 편이어서 「미니 전경련」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재계2세 조직중 가장 오래돼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우선 회장급으로 김석준 쌍용그룹회장,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현재현 동양그룹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회장,설원봉 대한제당회장, 이운형 세아그룹회장, 최용권 삼환기업회장,서영배 태평양종합산업회장, 이장한 종근당회장, 이학 신극동제분회장 등이 있다.또 부회장으로는 현재 YPO의 회장으로 있는 문대원 코리아제록스부회장을 비롯해 김희근 벽산그룹부회장, 담철곤 동양그룹부회장, 박유상 동국실업부회장 등이 있고 사장급으로는 조수호 한진해운사장, 김윤 삼양사사장, 이재관 새한미디어사장, 우석형 신도리코 사장 등이 있다.회원 가입 자격은 44세 이전에 일정 규모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아야하고 회원 2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한다. 50세가 넘으면 자동으로 물러나 특별회원이 된다. 한편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조석래 효성그룹회장, 강신호 동아제약회장, 박영일 대농그룹회장이 특별회원으로 있다. YPO 회장의 임기는 1년으로 지난번에는 조수호 한진해운 사장이 회장을 맡았고 올해에는 문대원 코리아제록스부회장이 회장으로 있으며 주장건 세종호텔사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고 한다. 문부회장은 최근 김현철씨와의 연루설로 곤욕을 치른바 있는 경영연구회에서도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 2세 모임에 대해 왕성한 참여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2세경영인들은 한창 일할 시기에 있기때문에 회장 맡기를 꺼려한다는 후문이다.정확한 수는 공개치 않아 알수 없으나 YPO에는 부회장급 이상만도30명선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차세대 전경련」으로서의유감없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회원 가운데는 최근 2, 3년새 1세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고 착실한 행보를 해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그러나 반면에 회사를 넘겨받은 뒤 능력 부족으로 가업을 잇지 못한 케이스도 있어 회원들간에 명암이 교차하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95년 유원건설의 최영준 사장은 부친의 타계로 경영권을 이어받은지 2년만에 부도를 냈고 삼도물산의 김재헌 사장도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를 불러 법정관리를 신청해야만 했다.원래 YPO는 미국에서 비롯된 단체로 전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전체 회원수가 7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YPO는따라서 전세계적인 비즈니스 커넥션의 일부인 셈이다. 매년 전세계의 경영인들이 모여 사장대학 행사를 열고 지역별로도 모임을 갖는다. 예를 들면 사우디 왕자라든가 외국의 유명 기업인들도 이 자리를 통해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다는게 조수호 한진해운 사장의 설명이다.◆ 회장 맡는 것 꺼려해한국 YPO는 통상 한달에 한두번씩 조찬 모임을 갖고 각계 전문가를초빙해 강연을 듣는다고 한다. 또 3개월에 한번씩 회지도 발간해회원들의 동정 등을 상세히 알리고 있다.그러나 YPO 이름으로하는 사회활동 등 공개적인 행사는 일체 갖지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세의 눈치도 봐야 하거니와 재벌 2세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눈길을 갖고 있는 것이 한국의 일반적 정서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어차피 비공개 조직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회원간 친목을 도모하고 세미나와 강연을 통한 경영역량 축적 등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급 정보의 교류 및 인맥 구축 등 재·정·관간의유착을 도모하는 자리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일부에서는 YPO 전체 조직이 학연·지연 등으로 갈라져 소그룹을형성한다면서 이 소그룹이 정·관·법조·학계 등의 인맥을 형성하는 끈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했을 경우의 대응 방안」이라든가 또는 주요 포스트의 사람소개하기, 고위 관리를 초빙해 정보 나누기 등의 교류가 이런 자리를 통해 이뤄진다는 얘기다.한 회원은 이와 관련, 『한국처럼 규칙대로 사업하기 어려운 곳에서 나름대로 배우는 점이 적지 않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물론 재계 2세들이 업무상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사들과 교유를 갖는 데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볼수만은 없다. 하지만 일부 재계 2세들이 영향력 있는 사회적 인사들과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비정상적인 방법의 경영행위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수 없는 것이다.최근 현철씨 사건이 터진 뒤 YPO는 일반인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음인지 일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접근을피하던 차에 외부와의 채널을 아예 차단한 것이다. 회원 가입여부를 확인하려해도 『그냥 이름만 걸어놓은 것일뿐 거의 모임 참석은하지 않고 있다』며 거론되는 것을 극구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YPO 사무실은 서울 서소문 코리아제록스사가 들어있는 건물에 개설되어 있으나 사무국측은 취재진의 출입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취재에 응할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거부 이유인즉 조직내규상 모든 대외적인 접촉은 회장만이 할수 있는데 회장의 재가가없다는 것이다. 문회장은 전화 통화 요청과 서면질의를 우회적인방법으로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