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대표들이 지난 7일 긴급회동을 가졌다. 이들 업계대표들은 9일 오전에 다시 모여 회의를 가진 뒤 곧바로 여의도 63빌딩8층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대회의실에 들러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이들 협회임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주장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는 정몽규 현대자동차회장겸 협회회장, 한승준 기아부회장, 김태구 대우회장, 윤철구 쌍용부사장, 김영석 아시아사장, 유기철 현대정공부회장 등 회원사대표들과 정덕영 협회 상근부회장 등 협회임원 7명 전원이 참석했다.이들 자동차업계 대표들은 17일에도 긴급이사회를 열어 『삼성이과오를 시인하고 정중히 공개 사과할 때까지 강력히 공동 대응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도 업계대표 7명이 모두 참석, 업계의 단결력을 과시했다.이번 사건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보고서로 인해 파생된 삼성과 기아와의 갈등관계가 결국 자동차업계 전체로 번진 것이다.삼성과 기아간의 국지전이 삼성과 기존업계간 연합전 형태로 급진전된 셈이다. 자동차업계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기아만의 문제가아니라 자동차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줄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업계 최고경영자들이 유례없이 일제히 전면에 나서 공동으로 자동차시장에 신규진출하려는 삼성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개인자격 모임 결성도 등장완성차업계 대표들이 이처럼 전광석화처럼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자동차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인 자동차공업협회란 구심점이크게 작용했다. 협회 조직 가운데서도 최고경영자(CEO; ChiefExecutive Officer)의 모임인 이사회의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 자동차업체 최고경영자들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사회란 공식모임을 갖고 있다. 평소에도 이들 최고경영자들은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친분을 도모하는 한편 업계의 민감한 사안을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사전에 조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국내산업계에 이러한 최고경영자 모임이 한층 활발해지고 있다. 자동차산업 뿐 아니라 조선 반도체 등 업종별로 최고경영자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통해 업계 현안의 대정부건의는 물론 업계의 공동대응책을 마련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있다. 최고경영자의 모임이 친교모임이나 골프회동 등 비공식적인 「사교의 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제 업계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조정하는 최고경영자들의 「비즈니스의 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국선진산업계와 마찬가지로 국내에도 본격적인 업종별 「CEO클럽시대」를맞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CEO클럽은 기업내의 주요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만나 업계 현안이나 문제점들을 신속하게해결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고 의미있는 경영수단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현재 국내에서 활발하게 모임을 갖고 있는 CEO클럽은 업종별로 구성된 각종 협회가 그 중심이 되고 있다. 동종업계 업체들로 구성되는 협회는 전체모임인 정기총회가 가장 큰 의결기구이지만 이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협의체는 최고경영자들로구성된 이사회 등이라 할수 있다. 이들 협회내 최고경영자 모임의명칭은 각기 다르지만 그 역할은 대동소이하다.현재 최고경영자 모임의 명칭은 자동차 반도체가 이사회, 조선이정책협의회, 무역이 종합무역상사협의회, 항공산업이 신규사업준비위원회란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6~10회씩 공식모임을 갖고 있다. 공식모임 이외에 이들 최고경영자들은 수시로 비공식 모임을갖고 있다.증권업계의 경우 월1회 열리는 사장단회의가 업계내최고의결 기구로 자리잡은지 오래다.이들 최고경영자들은 이밖에 세미나 해외시장 시찰 등과 함께 「금요회」「수요회」등의 이름으로 비공식적인 골프회동을 가지면서자연스럽게 업계의 관심사를 조율하고 있다. 23개 화섬전문 수출업체의 오너들도 최근 한국화섬직물수출기업협의회를 결성, 월1회 모임을 갖는 등 중견·중소기업에까지 업종별 최고경영자모임이 확산되는 추세다.최고경영자 모임에서는 동종업계에 관련된 세제개편, 수출보험제도개선방안, 관세인하 등을 정부에 건의하거나 업계 전체의 이익에도움이 되는 공동사업을 논의하기도 한다.항공산업계에서는 항공기제작 단일공동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중공업계는 전동차 수입전장품 국내공동개발에 나서고 있다. 조선업계는 일본 조선업계 최고경영자들과 대표자회의를 정기적으로 갖고 있고, 반도체업계도 미국의 인텔, 일본의 NEC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생산업체 사장단들과세계반도체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국제적인 차원으로까지 모임을 확대하고 있다.최고경영자클럽이 중심이 되는 이들 각종 협회는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자동차공업협회의 경우 회원사는 현재 모두 6개사인데 전체경비의 30%를 일률적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70%는 매출액비율로 회비를 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대로 놔두는게 돕는 것 = ‘이대로회’친목을 우선으로 삼고있는만큼 협회 회장직은 해당업계의 최고경영자가 맡되 2년마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는 형식이다. 부회장은 대부분 2명을 두고 있는데 한명은 비상근부회장이란 직함으로, 다른 한명은 상근부회장이란 직함을 갖는 것이 대부분이다. 비상근부회장은 해당업계의 최고경영자가 맡는 반면 상근부회장은 해당업계와관련된 관료출신의 외부인사가 맡는 것이 보통이다. 상근부회장이협회의 예산을 집행하고 대정부로비 등 대외관계업무를 담당하는만큼 협회의 실질적인 운영자라 할수 있다.그런면에서 협회내 상근부회장이란 직함은 협회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기업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기업을 누구보다 앞장서 대변하는 묘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업계를대표하면서도 실제로 해당 업계 출신이 거의 없다.그들의 역할이대정부관계개선에 있는만큼 전직 관료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통상산업부 출신들이 절대다수다.하지만 그들은 업계와 정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때마다 곤혹스러워하기 일쑤다. 그래서 비상근부회장들은 자신들의 모임의 이름을「이대로회」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는 것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최근에는 최고경영자들이 개인자격으로 모임을 결성하는 움직임도두드러지고 있다. 그동안 최고경영자들은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하는 협회와는 달리 최고경영자인 개인이 회비를 내고 참가하는CEO클럽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2월 공식 출범한 「전자 정보산업엔지니어 클럽」은 그 예다. 이 클럽은 정회원의 자격으로 전자 정보산업계에서 20년 이상 종사한 자로 한정하고 있어 회원 대부분 유수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업계와 관련이 있는 전현직 고위관료들로 구성돼 있다.현재 LG산전의 이희종 부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해 주로 국내 유수 대기업의 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또한 김기형 초대 과기처장관, 최순달 오명 경상현 전체신부장관 등 관계 인사 등각계 각층의 최고경영자와 전문가들이 가입하고 있다.「전자·정보산업 엔지니어클럽」은 원로 경영인과 기술인들이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유망한 전문회사를 발굴해 지원하는 등 직·간접으로 국내 전자·정보산업에 관련되는 일을 분과별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어 단순 친교모임에서 탈피한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