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메이션 3편이 올여름 극장가를 장식한데 이어 올 겨울에는 대기업이 야심을 갖고 제작한 3편의 TV 애니메이션이 안방을 공략한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많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동시에국산 TV시리즈가 방영을 기다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지난주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은 <전사 라이안 designtimesp=5088> <난중일기 designtimesp=5089> <의적임꺽정 designtimesp=5090> 등. 전사 라이안은 (주)쌍용과 쌍용정보통신, 모닝글로리가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한 (주)씨네드림의 첫 작품이다. <난중일기 designtimesp=5091>는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문을 받아 하청 제작을 주로 해오던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한길프로덕션이 자체 기획한 야심작이다. <의적 임꺽정 designtimesp=5092>은 20여년전 <로보트태권V designtimesp=5093>로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김청기 감독이 세운 스톤벨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했다.올 겨울 TV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영혼기병 라젠카 designtimesp=5096>와 <녹색전차 해모수 designtimesp=5097> <바이오캅 윙고 designtimesp=5098> 등. 모두 대기업 계열사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영혼기병 라젠카 designtimesp=5099>는 동양그룹 계열의 투니버스가, <녹색전차 해모수 designtimesp=5100>는 현대그룹 계열의 금강기획이, <바이오캅 윙고 designtimesp=5101>는 삼성그룹 계열의 삼성영상사업단이 각각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이외에 제일제당이 투자한 제이콤이 내년에 극장 개봉 예정으로<꼬마대장 망치 designtimesp=5102>를, S-미디컴이 TV시리즈용으로 <크로노 퀘스트 designtimesp=5103>를제작 중에 있다. 바야흐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르네상스라고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30년간 들어온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국」이라는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이름을 이제는벗어버릴 수도 있다는 희망마저 보인다.우리나라는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30%를 제작하는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국이다. 물론 우리 이름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제작해 주는데 불과하다. 일종의 「하청공장」인 셈이다.◆ 국산작품 발표해도 잇달아 실패애니메이션 전체 제작 과정 중 우리나라가 주로 참여하는 부분은중간단계다. 애니메이션은 크게 전공정(Pre-Production)과 제작공정(Main-Production) 후공정(Post-Production) 등 세가지 단계를거쳐 완성된다.전공정에서는 기획과 캐릭터 디자인, 줄거리 구성, 시나리오 작성등이 이뤄진다. 이 전공정이 전체 작업량의 30%를 차지한다. 제작공정에서는 레이아웃에서 시작해 원화(기초그림)ㅃ동화(움직이는그림)ㅃ배경ㅃ선화ㅃ채색ㅃ연출ㅃ촬영ㅃ편집 등의 작업이 이뤄진다. 제작공정은 전체 작업량의 대략 50%에 해당된다. 마지막 후공정은 성우의 목소리를 더빙하고 음악과 음향효과를 내는 단계로 전체 작업량의 20%다. 애니메이션 선진국에서 하청 주문을 내리는 부분은 주로 제작공정이다.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그려온만큼 우리나라에는 중간단계인 제작을 담당하는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대략 4백50개 정도 있다. 이중 중심 역할을 하는 업체는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 소속의 68개사다. 이 68개 업체 중에서도 에이콤 한호흥업 대원동화 선우엔터테인먼트 한신코퍼레이션 코코엔터프라이즈 세영동화 등이 국내 7대 메이저 제작사라고 불린다. 실제로 이들 7개사가전체 애니메이션 수출량의 60%를 소화하고 있다.오랜 하청작업으로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이나 물량은 선진국 수준이지만 시장 자체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극장용애니메이션의 80%를 미국이, TV애니메이션의 65∼70%를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우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국산 TV애니메이션이 처음 나온게 87년이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67년에 <홍길동 designtimesp=5112>이라는 최초의 국산 애니메이션이 나와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다. 이 작품은 당시 1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황금철인 designtimesp=5113> <손오공 designtimesp=5114>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잇달아 제작됐으나 자본이나 기술 문제, 일본과미국 애니메이션의 침투 등으로 70년대 들어와서는 맥이 끊겼다.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다시 나온 것은 94년이었다. 국내 최초의 성인물이라는 <블루시걸 designtimesp=5117>이 오랜 침묵을 깬 주인공이었으나 결과는실패했다. 그러나 <블루시걸 designtimesp=5118>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붉은매 designtimesp=5119>(대원동화) <홍길동 designtimesp=5120>(돌꽃컴퍼니) <헝그리 베스트5 designtimesp=5121>(영프로덕션) <아마게돈 designtimesp=5122>(아마게돈제작위원회)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 designtimesp=5123>(둘리나라) 등이 잇달아 발표됐다. 그러나 이중 <아기공룡 둘리 designtimesp=5124>와 <홍길동 designtimesp=5125>을 제외하고는 제작비를 건지는데도 실패했다.서울 동원 관객만 볼 때 <붉은 매 designtimesp=5128>가 3만명, <헝그리 베스트5 designtimesp=5129>가7만명, <아마게돈 designtimesp=5130>이 8만명, <홍길동 designtimesp=5131>이 15만명이었다. <홍길동 designtimesp=5132>만겨우 캐릭터 사업까지 벌여 제작비를 손익분기점에 맞췄다. 삼성영상사업단 관계자는 『제작하는데 최소한 18억원은 드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이익을 보려면 동원 관객이 40만명은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기획 애니메이션팀 최종일 대리도 『극장용의 경우 관람 수익으로는 제작비 건지기도 어렵고 캐릭터 상품까지 팔아야 한다』며 『마케팅에 대한 개념없이 접근해 손해를 본 것으로보인다』고 밝혔다.◆ 기획력·고급 인력 부족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대기업은 극장용 보다는 TV시리즈를 더 선호한다. 삼성영상사업단 관계자는 『TV시리즈는 최소 6개월은 계속되니까 캐릭터사업을 할수 있는 기간이 길어 극장용보다는 손해볼 위험이 적다』고 지적했다. 금강기획측도『극장용은 짧은 기간에 흥행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적자볼 위험이 크다』며 『아직까지는 극장용 제작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상영할 극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기껏 얻을 수 있는 상영장이 서울의 코엑스나 지방의 문화회관 뿐이다. 극장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다. 변두리재개봉관 정도가 기껏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최선이다. 전국 일류극장을 동시에 10개 이상씩 확보하는 디즈니와는 천양지차다. 국산의 경우 작품이 걸리는 장소 자체가 이삼류인데다 상영장 수도 적으니 더욱 흥행하기가 어려운 셈이다.극장용으로 실패를 계속하면서도 제작사들이 TV시리즈보다 극장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제이콤의 김병헌본부장은 『단기간에 붐조성이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 제작업체들이 TV시리즈보다 극장용을 먼저 제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대기업과 달리 TV방송사에 작품 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선 극장용에서 성공한 뒤 TV를 공략해보자는 심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제이콤의 경우 <꼬마대장 망치 designtimesp=5139>를 극장에서 먼저 개봉할 계획이지만 중소 제작사와는 처지가 다르다. 제일제당의 영화배급망이있어 극장 잡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극장 개봉 후 얼마 있다가 이영화를 TV시리즈로 제작, 방영하기로 이미 방송사와 협의가 된 상태다.이런 점에서 대기업은 중소 제작업체보다 훨씬 유리하다. 방송국에애니메이션 판매가 쉬울뿐더러 방송국과 공동 제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강기획의 <녹색전차 해모수 designtimesp=5142>는 KBS 및 대원동화 3사의공동작품이다. KBS를 통해 방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기업도 중소 제작업체보다 조금 유리하다 뿐이지 마음이 편한 것만은아니다. 국내에서 TV애니메이션 25분짜리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1억원이 든다. TV시리즈가 26부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6억원은있어야 한다. 그런데 방송국에 팔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편당6천만원 수준이다. 성우들 더빙을 한다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작한애니메이션보다 싸다. 우리 작품이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 관계자는 『우리보다 적은 돈 들여 잘만드는게일본의 기술 노하우』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보다도 오히려제작비가 40%가량 올랐다』고 밝혔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하청 제작사들의 단가를 미국이나 일본에서 주는 단가에 맞춰야 하는데다「거품」이 들어가서 그렇다는 것이다.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투니버스의 김성수 편성제작부 부장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을 『몸통만 있고 머리와 다리는 없는 구조』라고 표현한다. 중간 제작단계는 있는데 머리 역할을 하는 창작 및 기획력과 애니메이션을 전체적으로 받쳐주는 다리역할의 음향 및 더빙 기술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이에대해 제이콤의 김병헌본부장은 『기획력이 없다고만 하지말고기획력을 발휘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작품을 발표할 TV 방영시간과 극장을 얻지 못하는데 아무리 기획하고 제작하면 무엇하느냐』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내 업체들에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전용관 설립과 국산 애니메이션 의무 방영 쿼터제가 필요하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 마음놓고 상영할 수 있는 전용관과 전체 TV 애니메이션방영시간중 몇% 이상은 국산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극장을 잡을 수조차 없는 배급 실정과 국산 애니메이션 방영비율이 6∼7%밖에 안되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돈을 퍼붓고 뛰어난인재를 키우고 기술력을 높여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