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와 서방 선진13개국이 제공한 크리스마스 선물로한국은 「모라토리엄(외채상환유예선언)」이란 최악의 상황에서 일단 벗어났다. 이들 국가들은「IMF 합의안+α 준수」를 전제조건으로 1백억 달러를 지원키로 발표했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상업은행들도 만기자금의 상환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물론 아직 대세를 낙관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국내금융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1월중에만 1백억달러 이상의 만기외채가 돌아온다. 또한 한국의 대외부채발표에 대한 IMF와 선진국의 불신이 강한상태다. 외채를 파악하는 시각의 차가 커 외채규모에 대한 견해차도 상당하다.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외채는 지난해 11월말 현재 1천5백69억 달러. 재경원이 세계은행 기준에 따라 작성한 액수다. 즉 1년이상 국내에 거주한 내국인과 외국인이 해외의 한국인과 외국인으로부터 차입한 돈을 합한 수치다. 여기에는 한국정부나 국내은행그리고 민간업체가 해외에서 빌린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예를들어IBM의 한국법인이 씨티은행 뉴욕지점에서 조달한 달러화도 한국의외채로 잡힌다. 이와는 달리 외국계 금융기관이나 개인투자자들이국내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 투자한 달러화는 포함되지 않는다.상환기간별로 나누면 만기가 1년 이상인 중·장기 외채는 6백47억달러고 1년 이하인 단기외채는 9백22억 달러다. 전체 외채중에서단기외채가 59%를 차지한다는 계산이다. 외채를 도입한 주체별로분류하면 정부나 산업은행 등이 빌린 공공부문의 외채는 20억달러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민간부문의 외채다. 기업체들이 외국으로부터 외상으로 원유나 원자재 등을 도입한 4백34억달러 그리고 은행이나 종금사 등이 차입한 금융기관 외채가 1천1백15억달러에 육박한다.현재의 외환위기를 야기한 장본인이 바로 이 금융기관이 빌린 외채다.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단기로 빌려와 국내기업들에 장기로 대출해준 외화자금이 기업들의 부실화가 심화되면서 외환위기를 낳았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그러나 IMF와 미국 등 한국의 채권국들은 이같은 수치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의구심은 한국정부의 통계에 대한불신으로 이어지면서 외환위기를 가속화 했다. 루빈 미재무장관은1백억달러의 「선물」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의 외채가2천4백억달러로 늘었다고 밝혔다. IMF도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산출기준은 재경원이나 한국은행의 그것과는 다르다.한국정부가 발표한 자료에다 △국내기업의 해외법인이 빌린 해외현지금융 △국내은행의 역외계정 △국내은행의 해외점포 차입금 등을포함시켜 2천4백억달러로 추산한 것이다. 이같은 집계방식의 상이함으로 재경원의 수치와 IMF의 통계는 8백억달러나 차이를 보이는것이다.재경원 외자자금과 권대영 사무관은 IMF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세계각국의 외채현황을 발표하고 있는데 재경원도 세계은행의 기준에 따라 작성한다』며 『IMF의 주장은 이같은 원칙에 어긋나며 외채를 중복계산하는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IMF는 채권자로서 한국과 연관있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부채를 모두 집계한 것이고 그것도 중복계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국내 A은행의 뉴욕지점이 씨티은행에서 1천만 달러를 빌려 국내 B전자업체의 뉴욕법인에 전액 대출할 경우에도 A은행의 뉴욕지점과 B전자업체의 뉴욕법인은 각각 1천만 달러의 빚을 진 것으로 잡힌다는 것이다. 실제 조달한 달러는1천만 달러이기 때문에 이중으로 계산됐다는 반론이다. 재경원이 IMF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중복 계산된 외채를 다시분류하는 것도 이같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집계방식 달라 액수 차이 커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제조업체나 금융기관의 해외 현지법인이 안고있는 외채가 새로운 외환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계론은만만치않게 대두되고 있다. 공식적인 외채에만 연연하다가 의외의복병을 만나기 쉽다는 주장이다. 이미 국내외 금융계에서는 몇몇대그룹들이 해외금융기관으로부터 상환압력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내기업은 해외직접투자 자금 및 현지법인 운영자금의 상당부분을 국내 모기업의 지급보증을 통해 현지금융으로 조달하고 있다』며 『차입 의존적 국내경영방식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해외투자사업이 부실화될 경우 이는 곧바로 국내 모기업은 물론 국내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이같은 우려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은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해외투자에 적극적인 기업일수록 이같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높다는 지적이다. 자기자본이 적고 신용이 부족한 현지법인을 대신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보증을 서기 때문이다.대우그룹의 폴란드 FSO자동차 인수 사례를 보자. 대우는 2002년까지 11억달러를 이 공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부채비율(총부채/자기자본)은 2백%로 잡았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먼저 현지법인이11억달러의 2/3를 조달했다. 모기업이 보증을 선 후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 주식연계채권의 발행을통해 자금을 마련했다. 자기자본(자본금+잉여금)으로 충당할 1/3도 대우의 단독부담은 아니다. 현지정부(또는 사업자)와 일정비율로 출자했다.이같은 대우의 파이낸싱 기법이 최근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관심의대상이 됐다. 현지법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대우가 지급보증을 선 현지법인중 하나라도 파산할 경우 그 여파가 모기업에 곧바로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국가신인도 하락과 한국기업에 대한 해외금융기관의 시각이 예전처럼곱지 않아 더욱 위험하다. 대우그룹도 이같은 위험성을 인정한다.지난해말 회장단을 해외법인으로 파견한 것도 현지법인의 부실이모기업에 몰고 올 파장을 사전에 줄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이들은 해외에 지주회사(Holding Company)를 설립, 현지법인과 모그룹과의 연결고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려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보인다.재경원 국제금융과의 한 사무관은 『지금까지 국내기업의 해외현지법인이 해외금융기관에 대해 지급중단을 선언한 경우는 없었다』며『현재와 같은 속도로 한국의 신인도가 높아지면 재계일각에서 우려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한편 금융전문가들은 IMF와 G7국가로부터 들어오는 구제자금도 한국의 또다른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분석한다. IMF와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5백70억달러 등은 상환조건이 결코 좋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령 IMF는지난 12월 18일의 36억 달러지원부터는 4.81%인 지원금리에 3%를더한 조건으로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추가지원하면서 6개월마다0.5%씩 올리기로 했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한푼의 달러가아쉽지만 미래의 상환이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이래서나온다.◆ 신뢰도만 높으면 단기부채는 문제안돼외채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금융전문가들은 단기외채가 너무 많다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S&P나 무디스사의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선진국일수록 단기외채의비율이 높다는게 이들의 논거다. 한국도 경제개발초창기 IMF나 세계은행등으로부터 장기차관을 도입하다가 점차 상업은행의 단기자금으로 변경했다는 설명이다.한국정부의 외채원리금 상환부담률(DSR)도 개도국에 비해 현저히낮다. TV나 반도체를 수출하거나 관광객의 유치를 통해 벌어들인달러화중에서 외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비중은 87년의 31.3%에서 점차 하락하여 5.4%(95년) 5.8%(96년)으로 떨어졌다. 95년의 멕시코(24.2%) 브라질(37.9%) 아르헨티나(34.7%)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벌어들인 달러화를 외채상환에 전부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얘기다. 이는 또 경제의 기초체력이 양호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한국은행 국제부 외환분석팀 신원 조사역은 『DSR가 낮은 것은 지금까지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좋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외채구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또한 단순히 외채만 파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국내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해외자산도동시에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재경원이 공식 발표한 한국의 대외자산은 지난해 11월말 현재 1천14억달러로 이들 해외자산에서 투자이익을 얻거나 이자수입을 올리므로 단순히 외채가 많다고 해서 걱정할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이같은 낙관론자들은 현재의 외환유동성 위기를 외채 때문이라고보는 것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한 설명이라고 주장한다.삼성경제연구소 최규완 선임연구원은 『현재의 외환위기는 갑작스런 외환유동성 부족에 따라 발생했다』면서 『해외신뢰도만 확보한다면 외채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아무튼 한국은 이제 수출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