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서 극으로 스윙이 심하다. 최근 한국 재벌에 대한 외국 언론과지식인들의 비판적 평가는 도가 지나친 느낌이 있다. 이들의 눈에한국의 재벌은 무모한 빚더미경영으로 현재의 경제위기를 초래한주범,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재벌이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것이다.그동안 국내에도 재벌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세력이 있었다. 외국언론과 국내언론이 모두 재벌타도 일변도인 지금 이들 국내 비판론자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극약처방을 서슴지 않는다. 소위 재벌해체라는 말이 공공연히 활자화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러나 필자로서는 재벌이 현 위기의 주범이라는 점을 납득하기가쉽지 않다. 우리가 재벌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국가이익을 우선 걱정하도록 기대한다면 이는 기업의 피동적 기회주의적 본질을 망각한 한심한 발상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순교적인기업은 더 이상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기업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적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의 재벌도 미국의대기업도 똑같다. 그런데 한국 재벌이 유독 높은 부채비율, 수많은업종으로의 다각화, 계열사간 채무보증 출자 내부거래, 높은 소유집중과 경영권세습, 믿을 수 없는 재무제표, 그리고 그룹총수의 절대권력과 선단식 경영 등의 특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했던 것이 재벌들에게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리했다는 것은 단순히 수치상의기업이윤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진다. 재벌로서는 하루에 억대의 적자를 보더라도 신문사를 갖는 것이 유리했다. 지난 수십년간 그리고 바로 엊그제까지 한국에서는 은행에서 돈 많이 빌려서 그 돈으로 땅사고 돈놀이하며 계열사 늘리는 그룹이 성공기업의 대명사였다.자칫 망할 위험을 알고는 있었으나 공생공멸의 혈맹동지인 정부와은행이 설마 망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랴. 잘되면 내 탓이고잘못되더라도 재벌이 치르는 희생은 크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뇌물준 것이 발각나도 관대한 집행유예였고 그나마 조금만 지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서 사면해주는 천국이 대한민국 아니었던가?기업의 형이하학적 본질을 인정한다면 재벌이 이 지경이 된 것에책임져야 할 측은 오히려 정부와 은행이다. 은행도 사실 하수인에불과했으니 책임은 게임의 법칙을 잘못 세운 정부에 있다.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는 지금 부실재벌의 총수가 되었을 것이며, 작고한이병철회장이 미국에 태어났더라면 위대한 전문경영인이었을 것이다.바로 이 때문에 재벌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인센티브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구호로만 외쳐 이제는 진부하지만 시장원리의도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재벌정책이다. 격렬한 경쟁하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거나 M&A되어야 하고 은행도 주식투자자도 잘못하면 망해야 한다. 1위 2위의 재벌이라도 부도가 나면 주식은 소각되어야 하며 팔리는 것은 팔고 아니면 법대로해야 한다. 금융개혁,지배구조정책의 정비와 M&A활성화, 도산법제의 정비가 바로 재벌정책인 것이다. 사실 이런 정책전환이 10년 전부터 필요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10년을 끌다가 오늘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위기를맞고 보니 애국자는 많은데 현자(賢者)가 없다. 재벌총수의 재산과경영권을 박탈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무엇인가? 재벌해체를 말하는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밝힐 의무가 있다.기실 걱정되는 것은 우리의 주력산업이다. 지금 자동차, 반도체,조선, 철강의 과잉투자를 수술하려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의 무모함은 금융과 지배구조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를 개혁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신규진입, 대출, 투자를 둘러싼 비리가 있었다면 그것을 밝히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근거없이 산업을위축시키고 공장을 멎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죽기를 재촉하는것이다. 빚으로 세웠든, 주식을 모아 세웠든 공장은 공장이다. 지금 급한 것은 위기극복이지만 위기 이후에 뭘 먹고 사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자동차, 반도체를 포기하고 하이테크와 벤처만 말하는것은 아직은 비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