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디자인 상품이 효자다.지난해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KIDP·원장 노장우)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지도한 1백50여 상품 가운데 판매액을 밝힌 29개기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지도상품들은 평균 4백75%(신제품 제외)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위 10개 제품만보면 10배 가까운 9백35%의 매출 증가율을 보여 역시 디자인 투자의 효과가 상당함을 입증했다. 특히 이들 회사 가운데에는 부도 일보직전의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나 좋은 디자인의 상품을 적기 출시, 일거에 회사를 살린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잘 디자인된 상품 하나는 어지간한 열 상품 안 부럽다」는 오래전의 유사한 구호를 연상케 했다.디자인이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빨리, 가장 큰 효과를 볼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쯤은 웬만한 기업이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약효가 나타날 것인지, 과연 없는 돈 쪼개가며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등을 확신할 수 없어 많은 중소기업들이 머뭇거려왔던 것 또한사실이다.지금까지 많은 굿 디자인(GOOD DE-SIGN) 상품전이 있었으나 이는다만 「디자인이 좋다」라는 예능적, 한시적 평가에 불과했다. 실제 이들 굿 디자인 제품이 시장에서 일정 기간동안 얼마나 잘 팔렸는지를 따지는 마케팅 차원, 통시적 차원에서의 평가는 이뤄지지않았다. 즉 굿 디자인 제품과 실제 매출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는 거의 없던 것이다. 디자인이 좋으면 잘 팔린다는 가설만 있었을뿐 실제 검증은 안된 상태이니 디자인 투자의 유인이 약했던 것은당연하다.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조사결과는 단품류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KIDP는 종래 디자인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거나 상품화시키는 것으로 그쳤으나 이번에는 지도 상품들이 시장에서 실제 얻은 반응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 응한 29개기업 제품의 디자인 개발비(금형 및 소재개발 비용 제외)는 최고 1천8백만원, 최저 6백만원이었다(기업과 KIDP가 절반씩 부담). 외국인 지도의 경우는 1만9천달러에서 6천달러가 들었다(기업과 KIDP가3대7로 부담). 이러한 디자인 비용을 들여 올린 매출액은 개발전 94억원에서 개발후 5백44억원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평균적으로 볼때 9백75만원을 들여 32억원의 매출 신장을 가져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의 투자 수익률이라면 경영자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금형이나 소재개발비를 별도로 한이유는 디자인 부분에 대한 투자를 하든 안하든 어차피 생산과정에서 금형과 소재 비용은 들어가기 때문이다.물론 매출 조사에 흔쾌히 응한 업체수가 그다지 많지 않고(매출액을 밝힐 경우 각종 「준조세」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은 업체가 훨씬 더 많았음), 늘어난 매출에 대한 디자인의 기여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는 있다. 또 시장점유율 변화에 대한 조사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매출증대의 의미가 실제보다 작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번 조사는 「굿 디자인상품이 시장에 나가 거둔 전적」을 조사한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는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히트상품으로 기업위기 탈출30개에 이르는 「효자 상품」의 공통점은 대부분 회사의 주력제품이라는 점이다. 특히 경영이 어려운 시점에서 디자인에 전력투구해만든 제품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보람은 두배 세배 클 수밖에없다. 이들 상품이 가져다 준 효과는 크게 봐서 △회사 전체 매출은 감소했지만 디자인 상품으로 인해 매출감소폭이 줄어든 경우 △큰폭의 매출 감소가 예상됐으나 디자인 상품에 힘입어 매출이 크게늘어난 경우 △매출 증가 추세중에 디자인 상품으로 인해 매출이더 크게 늘어난 경우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회사 존폐의 위기에서 탈출케 한」 사례일 것이다.주방용품 세트에서만 97년 10억원의 매출을 올린(전체 매출은 40억원) 서연아트(대표 최금덕)는 지난 94년에 한차례 부도를 맞았다가재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평소 신용을 두텁게 쌓아온 탓에 채권자들로부터 당시 채무를 3년간 연장받은 서연아트는 기존 제품과 전혀 다른 고급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외에는 다른 회생방법이 없다고 보고 디자인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단돈 몇백만원도 아까울때였지만 「주방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주부들은 수저세트 하나에도 민감해하는 시대」라고 판단, 제품과 포장디자인, 회사 CI(이미지 통합) 등을 다 바꿨다. 동시에 디자인이 떨어지는 상품은 언제라도 매장에서 철수시켜 나감으로써 「화인 센스」 브랜드는 디자인을 최우선시한다는 인식을 심어나갔다. 그러나 가격은 안내렸다.「불황일수록 물건을 싸게 팔아서는 안되며 디자인과 고부가가치로비싸게 팔아야한다」는게 서연아트의 기업철학이다.회사 전체매출이 감소한 가운데 히트 상품이 그나마 버텨준 회사로는 대흥밸브의 수도꼭지, 헤일로우의 승용 완구, 개성마그네트의공장용 전자 자석 등을 들수 있다. 개성마그네트의 전자자석은 94년까지만 해도 연간 4억원 정도의 소규모 매출을 올렸으나 95년 외관이 좀 더 산뜻하고 공장에서 쉽게 눈에 뜨이도록 디자인을 개선하고난 뒤에는 연간 10억원 정도로 매출이 늘어났다.전년 대비 매출감소가 예상됐던 것을 디자인 상품으로 인해 매출증대, 또는 전년 수준 유지를 시현시킨 것도 매우 기분 좋은 경우다.철재 AV랙(오디오 비디오 선반) 제조 전문업체인 가야산업은 96년말 출시된 TV 장식장으로 지난해에만 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96년전체 매출이 16억원이었고 97년에도 그 정도였으니 만일 TV장식장이 없었다면 매출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야산업측은 올해 내수는 어렵겠지만 수출은 전망이 밝아 97년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밝히고 있다. 주 목표로 삼고 있는 지역은 소비자들의 디자인을 보는 눈이 높은 유럽.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다.한국팬시연구원(대표 최재영)의 음식물 쓰레기 탈수기 「푸시·볼」도 마찬가지의 경우. 푸시·볼은 지난해 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 전체 매출액이 7억원이었으니 97년 8월 출시된 이 신제품이 회사 매출의 절반 가량을 책임졌던 셈이다. 한국팬시연구원측은동종의 다른 제품이 순간적인 압축으로 수분을 제거하므로 완전히물기가 소멸되지 않는데 반해 푸시·볼은 스프링 받침의 지지판이지속적으로 압축을 해줘 수분 제거 기능이 뛰어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 웨이브엑스의 테니스 라켓이나 유원산업의 전기 냉·온수기(이상 신제품), 가야리빙산업의 강제수류식 욕조, 대웅전기산업의 전기압력밥솥, 한국윤활기술의 자동 그리스 주유기, 삼광조명의 스탠드조명등(이상 기존제품의 디자인 개선품)도 비슷한 경우다. 이 가운데 한국윤활기술의 자동 급유장치는 수입대체로서도 한몫을 하고 있는 제품으로서, 기존의 기계식 제품에 이어 올해에는주문형 반도체 칩을 장착한 신제품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디어·기존상품 개선 ‘성공’29개 개업중 가장 많은 유형은 「주마가편」 스타일이다. 즉 그렇지 않아도 매출이 증대됐겠지만 디자인 투자를 강화해 매출을 더욱늘린 경우다. 우선 신제품 출시 회사로는 삼진종합상사의 구급함,동신화학의 승용완구, 에프씨산업의 욕실용품세트, 삼보의 전기 냉·온수기, 삼은전자의 실리콘 칫솔, 남양스텐레스의 차주전자 세트, 라이져코리아의 콘돔 내장 라이터, 밀양실업의 옥장신구 등을꼽을 수 있다.삼진종합상사(대표 황승용)의 제품은 구급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나 실은 차량 뒤편에 부착해 사용하는 다목적의 접이식 상자로서대표적인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할수 있다. 내부를 2단으로 분리시켜 윗단에는 세면도구나 화장품 세트 등 여행때 필요한 소품을, 아랫단에는 일회용 사진기와 구급약품 등 18종류를 담고 있다. 또 뒷면에는 「정지」라고 쓰인 야광 반사판도 있고 방향제도 넣을 수있도록 디자인돼 활용범위가 넓은 편이다. 지난해 4개월동안 9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특수 판촉물로서 순조롭게 팔린데 힘을 얻어 올해부터는 일반판매도 할 생각이다.오리 형상을 한 동신화학(대표 한상남)의 어린이 자전거는 여타 동종 제품과 달리 폴리에틸렌 수지만으로 만들어져 실내에서 타더라도 긁힘 등을 방지할 수 있으며 작고 앙징맞은 느낌을 준다. 현재일본 미국 대만 등에 의장특허를 출원중으로서 외국으로부터 수출상담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회사측은 △미국 어린이들은 도널드덕으로 인해 오리에 친근함을 갖고 있고 △일본은 작은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해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의 완구유통체인점인 토이저러스에서 독점 판매권을요청하는 등 호평을 받고 있어 회사측은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라이져 코리아의 콘돔 내장 라이터는 기두석 사장이 목욕중에 아이디어를 떠올려 회사 매출을 두배로 늘린 전형적 효자 상품이다. 처음에는 면도기 내장(분리)형 라이터로 출발했다가 콘돔 내장으로아이디어를 확장했다. 96년 우수발명품 전시회 특허청장상 수상제품으로 미국 특허를 획득했고 중국에서는 출원중이며 국내에서는실용신안특허를 얻었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10만달러 정도의 수출은 무난할 것으로 회사측은 보고 있다.또 기존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한 사례로는 에스피씨의 문구용 천공기, 닥터리의 심전계, 벨코전자의 전화기 헤드세트, 에센시아의 치솔살균기, 은성디벨롭먼트의 속눈썹 고데기, 일륭전자의 통신기기,펜타존의 유아용 멜로디 변기 등이 있다.닥터리의 심전계는 심장질환자 진단에 사용되는 고정밀 전자의료계측기로서 기능 뿐 아니라 「의료기 답지 않은」 우수한 디자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발자인 이상용 사장(의사)이 의료기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게 된 동기는 『대부분의 의료기기가 환자에게 거부감을 주는 모양을 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주눅든 환자를 더욱 질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환자, 간호사, 의사(병원) 3자의 입장에서 사용의 편리성, 외양의 혐오성,가격의 적정성 등을 검증한 뒤 판매에 나선 것이 적중했다. 현재 35개국에 수출중이며 국내에서도 유수의 병원과 상담중이다.은성디벨롭먼트의 여성용 눈썹 고데기도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상품. 여자들이 바늘이나 성냥을 달궈 속눈썹을 올리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서정주 사장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성형기를 개발, 대히트를 쳤다. 이 상품만으로 지난해 5백만달러 정도를 수출했고 30억원 가량을 내수로 팔았다. 대형 백화점에 자체 이름으로 입점해 판매하고 있는 것과 수출국이 미 일 스페인 등 18개국에 이르는 것은경이롭다. 올해에는 수출 비중을 더욱 늘려 3백억원 정도의 매출을목표로 하고 있다.단일 상품 매출만으로 볼 때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펜타존의 유아용 멜로디 변기는 원래 94년초에 개발을 마쳤다. 용변을 보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도록 되어 있어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디자인이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몸을 못가누는 점을 감안해 변기 뚜껑이 몸을 받치도록했고 남자 아이들을 위해 탈착식 소변 가리개도다는 등 인체공학적으로 재설계, 공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현재 미국 유럽과 1천만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일본과는 비슷한 물량의 수출협상이 진행중이다. 수출물량 대기에 바빠 국판을뒤로 미룰 정도라고 한다.이밖에 오토바이용 헬멧으로 잘 알려진 홍진 크라운은 「HJC」라는로고를 새롭게 하는 등 디자인을 개선해 매출을 늘렸으며 반디라이트펜으로 유명한 세아실업도 여전히 굿디자인 상품의 반열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