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외국은행관계자들은 한국의 외환위기를 언제 느꼈는가.사실 외국계은행들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현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본부로부터도 경제현안에 관한 정보를 전해듣고 있었다. 이같은 정보를 토대로 96년하반기부터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가면서 과다한 부채에 의존하는 재벌이나 이들에게천문학적 여신을 제공한 은행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예상은 적중했다. 환율이 급상승하는 등 외환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이같은 추측은 다양한 경제형태와 기업문화를 지닌 세계각국에서은행을 경영해온 노하우 덕분이다. 물론 한국보다 한발 앞선 금융기법도 이같은 문제점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줬다.IMF의 합의안중 「고금리정책」을 놓고 비판여론이 비등하다. 높은인플레이션율에 시달린 멕시코 등에서는 유효한 처방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한국정부와 IMF가 현재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한 고금리정책은 올바르다고 본다. 많은 고통이 뒤따르지만 고금리는 한국의외환위기를 해결하는 처방전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환율을 빨리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이다.현재 외환시장에서 형성된 원/달러 환율은 한국경제의 실상보다 저평가됐다고 본다. 수출이나 기술력 등 경제기초여건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투자자들의 심리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시장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같은 심리적 불안정이 환율에 반영돼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금리정책은 외국인자금을 끌어들이는 효율적인 정책이다.▶ 그러면 한국정부가 외국인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쓰면서도 기업부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무엇이라고 보는가.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골탈태가 요구된다. 정경유착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필요하다. 다국적 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재무구조나 소유구조등을 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한국재벌들이 은행에서 돈을빌려 사업을 전개해온 과거의 관행과 단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감당하기 힘든 조치다. 이같은 시련을 극복해야 새로운 환경에적응할 수 있다.또한 IMF가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의 자기자본 준수시한을 3월말에서 연말로 연기시켜 준 것도 한국기업에 희망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자기자본을 맞추기 위해 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거나중단해 온 은행들에게 숨통을 터준 조치다. 건실한 기업들도 도산시킬 수 있는 조치를 완화시켜 준 것은 바람직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외국계금융기관의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활발한 인수합병(M&A)이 예상된다. 과연 외국은행들 입장에서 한국의 은행이나 증권등은 인수할 가치가 있는가.개별 은행의 전략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은행의 국내금융기관 인수합병은 불가피한 대세라고 본다. 또 한국시중은행들을 외국은행들이 인수합병하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기초조건이 양호해 투자가치가 높은 편이다. 다만 외국인투자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이 문제다. 한국인들은 외국인투자단이 한국의 부를 해외로 빼앗아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사실 이것은 정반대다. 외국기업들은 한국에 새로운 일자리와 부를창출해 준다. 외국금융기관은 첨단 리스크 관리와 투자기법을 한국금융기관에 전수할 수 있어 한국인들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생각한다. 특히 외국금융기관의 진출로 한국소비자들은 더욱 다양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수 있다. 외국인 진출과 관련해서는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이 「Mr. TOYOTA please comes to my country」를 외치는 현실을 한국민들이 주목했으면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하는데 애로는 없는가.과거보다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 IMF합의안 이후 정부의 각종규제완화로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문호는 넓어졌다. 주식시장도 올해말이면 완전 개방된다. 또한 채권시장도 외국인들에게 문호가 개방됐다. 완전개방된 채권시장은 외국인투자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앞으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은행단들도 금융시장개방에 맞춰 주식이나 채권등에 적극 투자할계획이다.최근 불황국면에서 벗어나는 한국증시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이있다. 외국인 핫머니의 유입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과 경제기초조건의 호조에 따른 결과로 보는 입장도 있다.한국증시의 회복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적으로 볼 때, 외국투기성자금의 유입보다는 경제기초조건의 개선을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같은 추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그렇지만 정부가 경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국민들도 이를묵묵히 따라준다면 증시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회복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단기 투기성 자금이 아닌 장기투자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몇년 정도 걸리겠는가.경제가 회복되긴 하겠지만 천천히 개선될 것이다. 특히 올해는 경제가 매우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가 축소되면서 내수는 극심한 침체에 빠질 것으로보인다.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견인차는 환율상승으로 경쟁력이 강화된 수출이다. 반도체 중공업 자동차 등이 수출을 이끌 것이다.이들 제품의 품질이나 전반적인 기술수준이 양호해 환율이 1천2백∼1천3백원으로 떨어져도 수출경쟁력은 충분하다. 수출이 호조가되면 외국에 대한 부채도 갚을 수 있다. 한국경제가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시점은 내년하반기부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IMF구제금융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의 각 경제주체들에게필요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최근 상황을 볼 때 한국인의 저력을 느낀다. 특히 다음 3가지 조건이 제대로 작동하면 단기간에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첫째 정치적 리더십의 안정이다.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이점은 매우 낙관적이다.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서 정치지도력이 급속하게 안정돼가고 있다.둘째는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이다. IMF가 요구한대로 대기업이나금융산업의 투명성을 높이면 외국인투자자들의 신뢰(trust)를 얻을수 있다.셋째는 개혁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다. 최근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금을 모으거나 거품을 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보면 한국민의 저력을 느낀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한국기업이나국민들의 의식도 국제수준으로 변모돼 앞으로 정부의 보호가 없어도 잘 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리국립은행을 소개한다면.1848년에 설립된 파리국립은행은 일반고객을 상대하는 소매금융에서 기업이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하는 도매금융까지 다양한 업무를취급하고 있다. 프랑스에만 2천개 이상의 지점을 운용하고 있는 등리딩뱅크의 하나다. 해외에도 비슷한 규모의 해외점포를 확보하고있다. 미국과 스페인 등 전세계 75개국에 진출해 있다.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금융기법을 축적했다.특히 금융상품투자나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첨단금융노하우를 요구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 1976년 10월에 진출됐다. 주로 외환과 기업자금지원 그리고 해외무역금융업무등을 취급한다.▶ 주한외국은행단 모임의 성격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한국에 진출한 외국은행장들의 모임이다. 한달에 한번 정례적으로만나 한국 금융시스템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한다. 또 한국금융계의 주요 현안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요즘같이 주요 이슈가발생하면 수시로 만난다. 또 저명한 경제학자들이나 재경원 한국은행의 고위 관료들을 초청해서 한국정부의 금융산업에 관해 설명을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