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옷차림에 007가방을 든 사나이들」. 지난 68년 한국에 상륙한 백과사전의 대명사 브리태니커는 국내 판매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적당히 팔던 기존의 세일즈와는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고객들을 파고들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영국신사를 연상케하는 세일즈맨들의 모습은 영업사원의새로운 상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한국브리태니커가 영업사관학교의 역할을 충실히 할수 있었던 것은혁신적인 판매기법에서 연유했다. 건장한 젊은이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깨끗한 매너와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시킨 다음 고객을 공략하게 함으로써 영업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물론여기에는 브리태니커만이 갖고 있는 영업노하우가 밑바탕이 되었다. 미국 등 선진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영업방식을 한국에도 그대로 도입했던 것이다.당시 브리태니커는 영업사원들에게 크게 2가지를 심어주었다. 먼저하나는 세일즈맨의 기본정신이었다. 특히 누구든 하면 된다는 점을강조했다. 패배정신에 사로잡혀 할수 없이 세일즈를 지망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한국브리태니커 출신인 권오근 한국판매교육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세일즈맨이 뭔지를 비로소 알고인생을 살아나갈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권원장은 당시사업실패후 실의에 빠져있다가 교육을 받고 명세일즈맨으로 거듭났다 .또 다른 하나는 세일즈테크닉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세일즈를 가르치는 기관은 고사하고 변변한 강사 한명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브리태니커는 명함을 주고받는 법에서부터 고객을 상대하는요령, 고객을 관리하는 방법 등 세일즈의 기본적인 기술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브리태니커 출신 가운데 나중에 산업교육 강사나컨설턴트로 진출한 사람이 많은 것도 이런 교육이 큰 힘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한국브리태니커는 영업사관학교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만큼 국내 영업분야의 걸출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특히 브리태니커에서의경험을 바탕으로 독립해 사업을 했던 사람 가운데 큰 기업을 일군사람들이 적잖다. 그 가운데서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단연 돋보인다. 70년대 초반 브리태니커 영업사원이었던 윤회장은 최고의판매실적을 자랑하며 두각을 나타내다 독립해 탁월한 영업력으로웅진을 일구었다. 지금도 웅진은 국내 최고의 영업력을 갖고 있는업체로 정평이 나있다. 또 고려원 김낙천 회장과 한국BBC문화센터이승환 사장, 성하룡 웅진미디어 사장, 박오규 월드마케팅 사장도한국브리태니커를 졸업(?)했다.브리태니커에서 판매 노하우를 익혀 독립한 다음 산업교육강사나컨설턴트로 나선 사람 가운데는 앞서 잠깐 언급한 권오근 원장과한국판매대학원의 곽준상 원장, 박태술 박스마케팅컨설팅 사장이눈에 띈다. 지난 73년 브리태니커를 나와 판매교육원을 설립한 권원장은 지금도 맹렬한 활동을 펼치며 국내 판매교육 분야의 개척자이자 일인자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