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참담하다.』 사실상 해체를 목전에 둔 재경원의 한 고참과장은 최근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동안 야근을 밥먹듯하며 경제를 챙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결국 돌아온 게 이거냐』며 허탈해 했다. 이런 허탈감은 요즘 재경원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다.그러나 공중분해되는 재경원을 향한 일반의 시선은 결코 동정적이지 않다. 과천의 다른 경제부처들 사이에선 매몰차다 싶을 정도의비판도 쏟아져 나온다. 『3년동안 경제총독부로 위세를 부리더니결국 남긴거라곤 IMF위기뿐』(통상산업부 모국장)이란 비아냥마저나오고 있다. 재경원은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다른 경제부처로부터도 돌을 맞고 있는가. 해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독주(獨走)가 심했다재경원의 폐단중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게 바로 정책독주다.예산 금융 세제 등 「경제 3권」을 재경원이 모두 틀어쥐고 있다보니 견제할 수 있는 부처가 없었다. 자연히 대부분의 경제정책은재경원 안에서 결정돼 나왔고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제정책의 최고 결정기구인 경제장관회의는 통과의례로 전락하고 재경원 1급회의가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얘기가 생긴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원과 재무부 통합 당시 국무총리 밑의 행정조정실이 그 견제기능을 맡도록 돼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던 탓에지금까지 제역할을 못한 게 사실이다.과거 통합이전엔 금융과 세제라는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던재무부의 정책결정에 기획원이 예산이란 칼로 견제를 해 그나마 균형된 정책이 나올 수 있었다. 통산부 등 「힘없는 부처」들도 기획원을 등에 업고 재무부와 싸워 나름대로의 정책을 구사할 수 있었다.그러나 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되면서 그런 정책결정 관행은 아예자취를 감춰 버렸다. 웬만한 경제정책 결정엔 재경원의 「방침 통보」만 존재할 뿐 경제부처간 토론과 조정은 하나마나였다. 중소기업들의 부도방지책 등을 골자로 지난 1월말 발표된 「중소기업 지원 종합대책」은 정작 주무부처인 통상산업부와 중기청조차 발표사실을 몰랐던 재경원의 「단독 작품」이었다. 이 대책이 발표된직후 통산부와 중기청 정책담당자들은 몹시 흥분했다.『한마디 상의도 없이, 해도 너무한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이런 사례는 지난 3년간 비일비재했다. 다른 경제부처 관료들이 『과천엔 재경원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종종 내뱉는 이유도 여기있다.●정책기획 기능이 죽었다장기적인 경제정책 비전 제시와 기획 기능이 실종된 것도 재경원의부작용중 하나. 과거 경제기획원이 맡았던 바로 그런 기능들이 재경원에선 자취를 감췄다. 기능 뿐만이 아니고 기획원의 리버럴한정책 스타일도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 세제 등 재무부쪽업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급한 정책기획등 기획원쪽업무엔 무게가 실리지 않았던 것. 자연히 재경원내 분위기도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재무부 사람들 스타일로 흘렀다.사실 재경원의 업무가 많긴 많다. 예산 금융 세제 등 모든 경제실권을 쥐고 휘두르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강경식 전부총리가 『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치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서류를 보고 사인하는데 30초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경제운용 방향을 잡고 정책 아이디어를 짜낼 수가없었다. 『재경원 3년동안 임기응변식 단타형 정책은 무성했지만경제운용의 철학을 담은 장타형 정책은 없었다』(민간 경제연구소장)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최근 외환대란의 원인(遠因)으로 이런 재경원의 거시적 안목 부족을 드는 이도 많다. 작년 10월이후 각종 금융안정대책을 쏟아냈지만 대부분 환율이나 금리급등을 그때 그때 막아 보려는 응급처방뿐이었다는 것. 진작부터 외환위기를 감지하고 대처하는 장기적인시각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사실 문민정부가 출범직후 제시한 신경제5개년 계획상으론 94년부터 경상수지 적자를 완전 해소하고 95년부터는 흑자기조를 유지토록 돼 있다.그러나 실상은 93년 3억8천만달러의 반짝 흑자를 냈을 뿐 94년(45억3천만달러 적자)부터 적자행진을 지속했다. 신경제 계획과 완전히 거꾸로 가버린 셈이다. 이같은 계획과 실적간의 괴리를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웠어야할 곳은 다름아닌 재경원이다. 그러나 재경원은 무엇에 정신이 팔렸는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변변한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인공위성’이 너무 많다관료사회에서 「인공위성」이라고 하면 본부에 근무하지 않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외부에 파견나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재경원은정부내 어떤 부처보다도 이 인공위성이 많다. 작년말 현재 국장급중 국내 연구소 파견이나 해외 유학 등으로 밖에 나가 있는 인공위성이 27명. 과장급은 무려 96명에 달한다. 이는 본부에 근무하는국장 36명, 과장 1백15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지면서 자리 수는 줄었지만 실제 사람은 크게 줄지 않아 그만큼 잉여인력이 많이 발생한 것. 실제로 통합 당시 재경원정원이 총9백70명으로 묶이면서 3백명 정도의 초과인원이 생겼지만이들중 대부분은 타부처 전출이나 해외유학 등으로 당장 몸을 피했을 뿐이다.떠도는 인공위성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인사적체로 잦은 순환인사가 불가피해진다. 이는 재경원의 일관된 정책 추진이나 관료의 전문성을 해치는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외화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금융정책실의 국과장들이 재경원출범이후 1년이 멀다하고 자리바꿈을 해 외환위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충분히 타당성을 갖는다.또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사람은 많다보니 자연히 인사때마다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과거 나웅배부총리가 재경원 일부과장들을 모아놓고 『내가 국회의원을 네 번이나 했으니 모르는 국회의원이 어디 있느냐. 요즘 의원들의 인사청탁이 많은데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솔직히 과장들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외부에인사청탁일랑 하지말라』고 하소연했다는 일화도 있다. 재경원이금융기관 등에 대한 규제나 영향력을 좀처럼 줄이지 않으려는 것도나중에 잉여인력을 낙하산 인사 등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집단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구 기획원·재무부 라인간 융화도 안됐다지난 96년 4월 재경원은 발족후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이환균차관은 『더이상 옛 기획원과 재무부 출신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기획원과 재무부 출신을 뒤섞는 파격적 인사를 발표했다. 실제로 이때 재무부 출신이 대거 예산실로, 기획원출신은 금융정책실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지개 떡」 인사라는신조어까지 나왔다.하지만 이들중 옮겨간 부서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전문분야가 다르다 보니 애를 먹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예산실이나 경제정책국 인맥은 역시기획원 출신이 주류이고 금정실 세제실 등은 재무부 라인이 꽉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간의 칸막이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특히 보안의식이 안기부 못지 않다는 금정실 쪽에선 통화나 외환과관련된 자료는 경제정책국 등에 공개를 안하기로 유명하다. 『매크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통화관련 통계를 금정실에 요구하면 딱지맞기 일쑤』라는 게 경제정책국 관계자의 실토다. 이처럼 기초적인통계 정보조차 교류가 안되다 보니 경제정책국과 금정실간 손발이맞을리 만무하다. 지난해말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까지도 종합적인경제정책을 다루는 경제정책국과 금정실간에 대책회의 한번 없었다는 것도 이같은 조직내 배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