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살아야 오너도 사는 것 아닙니까. 저희 가족의 재산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아까울게 없습니다.』최근 시가 1천5백억원 어치의 일가 주식을 그룹에 헌납한 세풍그룹고병옥회장의 둘째아들 고대용 그룹 전무 겸 세풍월드 부사장의 말이다. IMF의 고통을 함께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기업 오너들이 사재를 회사에 출자하거나 출연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세풍그룹 오너 가족의 재산 출연은 액수가 현재(2월13일)까지가장 크다는 점에서, 또 순수한 헌납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있다. 고부사장은 『사재 출자는 기업에 자금을 내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는 효과가 있지만그 재산은 결국 오너의 것으로 남는다』며 『우리 가족의 경우 지분을 포기하고 무상으로 주식을 회사에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세풍그룹 고판남 명예회장과 고병옥 그룹회장, 고대원 부사장, 고대용 전무 등 세풍그룹 대주주 일가가 내놓은 재산은 세풍월드 주식 18만4천주(시가 1천5백억원 상당). 세풍월드 전체 지분의 92%에해당되는 양이다. 이번 재산 출연으로 지난해 고판남 명예회장이헌납한 1만4천주를 포함해 세풍월드 주식의 99%가 세풍그룹의 모기업인 (주)세풍에 귀속됐다. 세풍월드가 가족 회사에서 명실상부한세풍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 셈이다.◆ 무상 헌납 … 그룹 계열사로 편입세풍그룹은 70년대 재계 12위였던 한국합판이 모체가 된 전라북도의 향토그룹. 53년에 설립돼 전북을 중심으로 크지는 않지만 알차게 성장해왔다. 현재 그룹의 주력사는 제지회사인 (주)세풍이며 세풍종합건설(주) 전주방송 (주)세풍월드 호남잠사 등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세풍그룹은 지난해 3천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으며 (주)세풍은 이중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주)세풍의 국내 제지시장 점유율은 13% 가량. 고대용 부사장은 『세풍월드는 3년전부터 거의 혼자서 기획해 키워온 회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다』며 『그러나세계적인 기업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세풍월드의 대주주가 개인보다는 세풍이라는 회사가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 가족에게 재산헌납을 먼저 제안했다』고 밝혔다.고부사장은 사재 헌납을 통해 세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오너 스스로가 직원들과 고통을 분담하려는 솔선수범을 보임으로써 전임직원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직원들의 애사심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둘째는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부사장은 『주식 헌납으로그룹의 자본이 총 3천억원으로 늘고 부채비율은 5백%에서 2백%로개선됐다』며 『이로써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셋째 세풍월드는 현재 대규모 스포츠 단지 건설을 위해 외국 자본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풍월드의대주주가 개인보다는 (주)세풍이 되는 것이 훨씬 공신력있고 자본을 끌어들이는데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세풍월드는 군산 바다에 인접한 1백60여만평의 땅에 국제 자동차경기대회인 F1그랑프리를 유치하기 위해 종합 스포츠단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 스포츠 단지에는 국제 규격에 맞는 자동차 경주시설과골프장, 각종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스포츠단지 건설은 내년 3월 자동차 경주장 준공을 시작으로 내년중순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스포츠단지를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외국 자본으로 충당된다. 고부사장은 『자본을 댈 사람은 유럽쪽 투자자인데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되는 3월말 정도면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고부사장은 외자가 투입됨으로써 세풍월드의 지분에도 변동이 있을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풍은 이 스포츠 시설을 기반으로 국제적인스포츠마케팅 회사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부사장은 『세풍월드가 진행할 스포츠 사업 중에서 자동차경주가가장 유망한 사업이 될 것으로 본다』며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F1그랑프리가 내년에 우리 경기장에서 열린다는 것 자체가 큰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단지 건설 … 2천억 매출액 예상F1그랑프리는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과 경주 선수들이 팀을 이뤄 FIA(국제자동차연맹)가 인정한 경주장에서 치르는 자동차 경주대회.이 경기는 전세계 2백2개국에 중계되고 연 시청인원만 4백9억명에달해 올림픽 및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고있다. 그런만큼 사업의 기회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못지 않다는게고부사장의 설명이다. 시청료와 관람료만으로도 많은 수익을 거둘수 있지만 세계 유수의 자동차회사들이 큰 돈을 들여 자동차 홍보의 장으로 삼고 있어 스폰서 수익도 엄청나다.고부사장은 『한국에서의 대회 유치권을 따내기 위해 3년간 FIA 관계자들을 쫓아 다니며 협상을 벌였다』면서 『이 대회를 한국에서열면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지고 국가 홍보에도 도움될 것』이라고말했다.고부사장은 또 『국내의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인이와서 즐길 수 있는 수준높은 스포츠 레저시설이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아직 국내에는 국제 규격에 맞는 자동차 경주장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다. 군산에 스포츠단지가 완공되면 해외 스포츠 관광객들을 끌수 있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고부사장은 스포츠단지가 완공되는 내년에 당장 2천억원의 매출액에 22%의 수익률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군산 자동차 경기장에서 4회의국제대회를 포함해 매년 20회 정도의 대회가 열리도록 할 예정입니다. 야간에는 자동차회사들이 시험 운전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하고요. 일반인들도 모터사이클을 즐기고 자동차 안전교육을 받을수 있게 됩니다.』세풍월드는 40년 이상 전북지역에만 투자해온 세풍그룹에서 국제적인 비즈니스로 시작하는 첫 사업이다. 고부사장은 『최근 무리한사업확장으로 부도가 나는 기업이 많아 사업다각화를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지만 세풍은 좀 다르다』고 말한다. 『별 연관이 없는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것은 조부께서 전북지역의 부실한 기업들을 하나 둘 떠맡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풍월드만 해도 3년전에 염전업을 하던 한국염업(주)을 인수한 것이다. 이 한국염업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바탕으로 시작할 수 있는유망사업을 구상하던 중 스포츠 마케팅을 선택하게 됐다.고부사장은 『제조업에 주력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이제는 3차산업으로, 또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분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차근차근 튼튼하게 진행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