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낼 것인가, 다시 만들어 보낼 것인가.』송호근 양지원공구사장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창업후 처음으로 받은 2만7천달러의 오더. 신바람이 나서 직원들과 야근을해가며 엔드밀을 제작, 통관까지 마친 상태였다. 내일 오후면 배에실려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엔드밀의 공차가 당초 약속보다 약간 웃돈 것을 안 것은 통관을 마친 뒤였다. 1만분의 5인치 이내로 제작해야 했으나 1만분의 7인치내로 만들었다.이 정도의 미세한 오차는 바이어가 눈치를 못챌수도 있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데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만에 하나 첫 수출부터 불량품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우리 회사가 설 곳은 어디인가. 새벽 2시를 알리는 시계소리가 들렸다.새로 만들어 보내려면 돈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또 납기를 못맞춘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학교졸업후 공구업체에서 5년간 근무하다 독립한 송사장은 이미 집을 잡혀 먹었고 부친의 집까지 담보로 넣은 상태였다. 2만7천달러어치를 다시 만들려다간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판이었다.◆ 고품질 제품에 가격 20~30% 저렴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결단을 내렸다. 날이 새자마자 세관으로 달려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반품을 요청했다. 바이어에겐 며칠 늦어질테니 양해를 해달라고 통보하고 그 대신 모든 책임은 지겠다고밝혔다.몇달후 그 바이어를 만났을 때 비로소 송사장은 첫 오더때 겪은 갈등을 털어놨다. 바이어는 그 정도면 그냥 보낼 것이지 왜 그렇게일을 힘들게 처리했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하지만 송사장의 꼼꼼한 일처리와 순박한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바이어는지금이라도 그 물건을 보내주면 자기가 처리하겠노라며 제품을 인수했고 해당제품은 미국내에서 고급품으로 판매됐다.인천에 본사를 둔 양지원공구는 절삭공구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올라선 기업이다. 엔드밀과 드릴 탭 등을 만드는 이 회사는 종업원 4백명규모의 작은 기업이지만 외국기업들이 무척 겁을 낸다.96년 영국 북아일랜드 정부엔 진정서가 날아들었다. 영국절삭공구협회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인즉 양지원공구가 짓고 있는 벨파스트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영국업체들이 다 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유럽 각국의 절삭공구단체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탄원서가 접수됐다. 북아일랜드 정부는 깜짝 놀랐다. 외국기업 투자를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해당업체와의 약속인데 왜 수많은 단체에서 진정서를 보내는지 알수 없었다. 큰 규모의 업체에도 여러건의 보조금이 나갔지만 누구도 시비를 건적이없었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의 중소기업인 양지원공구에 대해서만문제를 삼는데 대해 납득할수 없었다. 북아일랜드 정부는 이미 약속한 사항이어서 어쩔수 없다며 진정서내용을 무시했다. 나중에야양지원공구가 대단한 경쟁력을 갖춘 업체여서 유럽업체들이 바짝긴장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그 이유는 간단했다.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가격은 20~30%가량싸게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양지원공구의 종업원들은 제품의 원가를 낮추기 위해 일주일에 65시간씩 일한다. 하루 평균 2시간씩 잔업을 하며 일요일에도 교대로출근, 공장을 돌린다. 1년 3백65일 하루 24시간 가동하는 공장에서나오는 제품의 원가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일을 많이하는데도 노사분규가 발생한 적이 한번도 없다. 노조조차 없다. 직원들은 사장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한달에 두번씩 조회시간을 통해 회사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고 필요하면언제든지 사장과 만나서 대화를 할수 있어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없다.◆ IMF이후 직원 20명 신규 채용5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며 명성을 쌓은뒤 내수시장에 진출하자그동안 한국시장을 장악해온 일본 독일업체 제품들이 하나 둘씩 철수하기 시작했다. 엔드밀 분야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이미 60%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 이 제품은 금형 등을 깎는데 쓰이는 공구로고속도강으로 만들어진다. 로봇과 CNC선반 머시닝센터 등 자동화된첨단 라인에서 제작되며 정교한 열처리를 거친다. 20명에 달하는개발인력은 각국의 바이어로부터 접수되는 주문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한다. 현재 만들고 있는 제품은 크게 봐서 4~5종에 불과하지만 규격별로 따지면 5천종에 이른다. 생산제품의 70%는 수출되고 나머지는 내수시장에 판매한다.이 회사는 몰려드는 주문으로 3개월치의 작업물량은 항상 확보한상태이고 IMF사태이후에 20여명을 새로 뽑을 정도로 인력도 늘리고있다.올해 매출목표는 작년보다 62%나 늘어난 5백50억원. 수출예상치(3천만달러)의 환율을 달러당 1천3백원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환율이 높아지면 매출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수출은 그가 직접 챙긴다. 일년에 1백일이상을 해외로 출장 다닌다. 수십개국을 돈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다니며 값싼 숙소에 머문다. 미국에서 공구상을 대상으로 수주활동을 벌일땐 43일동안 23개 도시를 도는 동안 20달러가 넘는 모텔에서 자본 적이 없다.사장실엔 소파가 없고 책상과 의자 뿐이다. 그리고 책상위엔 팩스가 놓여 있다. 팩스를 통해 하루 30통 이상의 문서가 들어온다. 팩스내용은 직접 처리한다.양지원공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발 앞선 해외진출도 한 요인이 됐다. 81년 창업후 4년뒤에 시카고에 지사를 만들었고 92년미국 아칸소주에 공장을 건설했다. 96년에 영국 공장을 건설해 글로벌 경영체제를 확립했다. 무역장벽을 뚫고 바이어에게 신속히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IMF이후 수출대금 네고가 어려워지자 신용장 대신 현금거래로 돌렸는데 바이어가 한명도 이탈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양지원공구를 신뢰하고 있어서이다.『한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어떤 분야든 세분해서 보면 가능성있는 길을 찾을수 있고 한우물을파면 달성할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정신력이지요.』송사장은 영국 투자시 해당정부가 고용창출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는지 피부로 느꼈다며 실업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한국도이제는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업체에 대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많은 벤처기업인들이 나올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게 시급하다며 벤처기업이 쏟아져 나올때 비로소 한국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