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연도표기를 네자리로 하지 않고 두자리로 표기함으로써발생할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 재앙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는높지만 문제해결은 부진하다. 가장 최근의 경고는 미국 시사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designtimesp=7693>. 3월2일자 미주판 커버스토리로 2000년 표기문제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뉴스위크 designtimesp=7694> 역시 지난해 6월4일자 커버스토리로 「2000년 1월1일컴퓨터 세계대란」을 다뤘다. 본지 역시 지난해 2월11일자 심층기사로 「2000년 소프트웨어 대재앙」을 경고했다. 이뿐 아니다.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국내 주요일간지들 역시 2000년 표기문제의심각성을 틈나는 대로 지적해 왔다. 각 언론들이 지적한 내용은 모두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온라인 전송 뿐 아니라 입출금이 안될 수 있습니다』 『공장이 멎을 수 있습니다』 『항공기 관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엉뚱한 약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등 재난이라할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수준이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2000년 문제가 일으킬 각종 재난이 아니라 예견된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이 미비하다는데 있다.◆ 2000년 연도표기 문제란연도를 두자리로 표기하는데서 비롯된 문제다. 1998년을 98년으로적어놓으면 누구나 1998년으로 이해하듯 컴퓨터도 「98」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앞에 「19」를 붙여 1998년으로 인식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이런 방법은 과거 컴퓨터자원이 천문학적으로 고가일 때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로 여겨졌다.그러나 2000년이 다가오면서 「00」을 컴퓨터가 2000년으로 인식하지 않고 1900년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컴퓨터의 연도표기 두자리를 네자리로 바꾸는 작업자체는 어렵지 않다. 단일 프로그램이라면 숙련된 프로그래머에게는 단순한 작업에 불과하다.그러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규모시스템은 경우가 다르다. 우선작업량이 적지 않다. 최근 2000년 문제를 해결했다고 발표한 LG화학의 경우 1만4천개의 프로그램과 2천2백개의 파일을 대상으로 두자리 연도표기를 네자리연도표기로 바꿨다. 지난해 10월에 2000년문제해결작업을 마쳤다고 발표한 삼성항공의 경우 3년이란 기간과20억원이라는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경고 불구 문제해결 소홀90년대 초부터 2000년 연도표기문제의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정보산업연합회가 지난해 6월부터 9월 사이에국내 1백50개 기업 및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컴퓨터 2000년문제 국내 업종별대응 실태조사」에 의하면 단지 12%만이 「스스로 완료했다」고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도 20.8%에 불과했다. 2000년문제 해결이 활발하지않다는 사실은 2000년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소프트웨어 공급업체들의 매출이 저조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 자각 중요설사 최고경영자가 2000년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2000년1월1일이 되기전에 정말로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확인해줄 공증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문제를 완료했다」고 응답한 12%의 기업시스템이 정말로 2000년문제를 완벽하게 해결된 것인지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2000년문제가 해결됐는지의 여부는 실제상황을 겪어봐야 알수있기 때문이다. 초대형 신용카드회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사는 2000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년이 넘는 기간동안 수백만달러를 들였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2000년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1월 중소체인점의 컴퓨터들이 카드의 사용기한이 2000년을 넘는 것은 무조건「기한이 지난 것」이라며 결제를 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가을부터 발급한 만기가 2000년 이후인 카드가 문제를 일으킨것이다. 두 회사는 「일부 중소형 업체들의 기계가 낙후한데서 오는 잘못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2000년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사례다. 두 회사의 2000년 문제해결을 추진한 담당자들이 낙후된 기계를 갖추고 있는 중소형업체까지 고려하지 못한채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것으로 해석할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선구적인 기업이 2000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나서 연도를 네자리로 변환하더라도 둔감한 협력업체가 2000년문제를 방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결론은 둔감한 협력업체 시스템의 2000년문제로 인한 부품공급의 차질이다.◆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2000년 문제는 「나 홀로 해결했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시스템은 전세계에 걸쳐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은행 보험 등 개별 금융기관이 2000년 문제를 해결했다 해도 온라인으로 연결된 여타의 금융기관이 2000년문제를 일으킬 때 생길 문제는 심각하다.금융기관 사이에 온라인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가간 거래다.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은 온라인전산망을 통해 거래한다. 금융기관의 전산망은 자금의 이동 뿐 아니라 신용장발급 등 무역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국내은행들이 2000년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외국은행들이 2000년문제로 시스템장애를 겪는다면 국제무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분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은행을 염두에 둔미국쪽에서 나오는 우려다.◆ 남은 시간은 겨우 10개월2000년문제는 지극히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2000년문제를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도 없다. 2000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자체가 많은 시간과 인력을 요구하지만 제대로 수정됐는지 테스트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2000년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은 대규모 기업은 기한내에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없다.2000년까지 남은 22개월간 영향평가-계획수립-이행-테스트 등 일련의 과정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남은 시간은22개월이 아니라 10개월이다. 1999년 1년간은 시행점검기간이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가능성2000년문제해결은 부가가치 창출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작업이다. 단지 과거에 설치한 낡은 정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수정할 뿐이다. 그것도 적지않은 비용과 인력 시간을 투입해서 손봐야 한다. 기회비용으로 따질 때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비즈니스위크에 의하면 2000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자원을 분산투입한 결과로 미국의 경우 1999년 성장이 0.3% 둔화될 전망이다. 2000년에는 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이는 최근의 동아시아 경제위기와 맞먹는 충격이다.◆ 국가적 인증프로그램 필요이제 시작하려는 기업은 이미 때를 놓쳤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의사결정이 빨라 지금 당장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2000년문제의 해결은 의사결정권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전제조건이다. 부가가치창출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하는 프로젝트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만이 할수있다. 또한 2000년 문제는 전산부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사적인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해결과제다. 컴퓨터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각 부서에서 활용하는 모든 데이터를 검색해 연도코드를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업체와 협조도 중요하다. 쉬운 것부터시작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의 기간시스템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그러나 2000년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제도적인 강제다. 당장 살아남기 급급한 기업이 「2000년에 발생할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해결에 투자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 2000년인증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