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땅에서 눌러앉아 산 기간은 81년 봄부터 94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13년 5개월 조금 못된다. 날수로 따져 총 4천8백80일이다. 이렇게 날수까지 헤고 있는 것은 그곳에서의 삶이 그만금 「치열」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생활보다 기본적인 생존을 영위해가는 그 자체가 중요했으므로, 고통으로 말하면 정신적 고통이더욱 컸다.나는 특히 한국 이민자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사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그들 속에서 살았다. 더구나 작가이면서 그곳 한국신문의 「기자」라는 직업상 그들의 고뇌와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누구보다 더욱 잘 느끼고 보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들」속에 나와 내 가족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이 세상엔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수용하고 대처하는 우리 이민자들의 마음과행태는 각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보니 어떤 점이 좋더라든지 나쁘더라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비슷한 생활배경을 지니고 간 사람들 중에도 한 사람은 『생각하고또 생각하고 백번 생각해도 미국에 잘 왔다』고 큰소리치고 다른사람은 『와서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과연잘 왔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미쳤지.이렇게 살려고 왔나. 정말 잘못 되었어.』 이렇게 장탄식을 하는것이다.그래서 내가 가장 확실히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것은 자기 마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들과 나 자신이 겪은 일들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름해볼 수는 있다.다른 외국은 잘 모르겠고 미국은 우선 땅이 넓어 좁고 복잡한 것에서 오는 답답함 같은 것을 덜 느끼게 된다.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뚫려있는 고속도로를 훨훨 날듯이 달려갈 수 있는 대상(자연이든도시든)도 많아, 그렇게 달려가노라면 탁 트인 길과 들판과 하늘처럼 마음마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문화 달라 현지 적응이 최대 걸림돌법을 어기지 않고 질서를 지키고 관습에 따르는 이상, 아무에게도제약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걸릴 것도 눈치볼 것도 없이 그야말로자유스럽게 살수 있음은 큰 은총이다. 사람들도 대부분 합리적인사고에 젖어있어 짜증날 일도 별로 생기지 않는다. 보는 것 모두신기하고 그곳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사회이기 때문에(촌뜨기 의식인지 모르나), 지구상 「최고」의 문물을 값싸게 즐길 수 있으며살아가는 일들이 편하기 이를데 없다. 물질적인 풍족함, 교육기회의 넓음 따위도 부러움의 대상이다.반면에 문물이 다르고 생활의 내용과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바뀌지않으면 살 수가 없다) 한국 이민자들이 적응에 애를 먹는 것을 어려운 점의 첫째로 꼽을수 있다. 그것으로 하여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것이다.한국에서 전문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도 거기 가면 힘겨운 단순노동같은 것도 각오해야한다. 『한국에서는 이랬는데…』 그런 생각은김포공항을 떠나는 즉시 싹 없애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데 그것들과 과감히 맞설 태세가 돼있지않으면 아예 미국이민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미국에는 자기를 보호해주던 「울타리」가 없다. 동문 동향 족벌과같은 비빌 언덕이 없다. 오로지 나와 가족의 「능력」만 있다. 그나마 엄격히 집행되는 법이 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인들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안된 말이지만 대개의 경우 아무리잘돼봐야 소수민족 「변두리 인생」이다. 단순히 소시민적인 「안락한 생활」 이상의 욕심은 안부리는 게 좋다. 「환상」은 환상이고 「꿈」은 꿈일 뿐이다. 옛 이민과 달라 요즘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살다가 안되면 돌아오면 된다』는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그런 생각은 금물. 그런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만족을 못해 결국 자기 인생 헛보내고 가족 고생 시키기 알맞다.또한 우리에게는 누구나 또 다른 「함정」을 갖고 있다. 해외여행의 기회가 많아 자칫 이민에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여행하며 본 그곳과 실제로 사는 그곳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