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캐나다 토론토로 순수투자이민을 떠났던 이모씨(51). 이민 당시 의욕적으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이씨는 그러나꿈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채 지난해 9월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역이민을 한 셈이다. 한국에는 부인과 함께 돌아왔고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1남1녀)은 현지에 남겨 두었다.7년전 이씨는 캐나다로 떠나면서 큼지막한 슈퍼마켓 사장님과 교육잘 시키는 부모를 꿈꾸었다. 캐나다에서 슈퍼마켓이나 야채가게를운영하면 괜찮다는 말을 들은데다 자녀의 교육에도 나을 것이라는말을 들었던 터였다. 특히 당시 이씨 부부는 먹고 사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막상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의 현실은 그렇게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육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으나 낯선 땅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소외감이 가족들을 위축시켰다. 더욱이 언어가잘 통하지 않아 애로가 많았던데다 가게(잡화상)의 장사도 여의치않았다. 특히 주변에 하나둘씩 초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는 바람에매출이 오히려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현지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지금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이민은 나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 살다가 다시한국으로 들어오는 역이민자들도 상당수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이민자수에서 역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50.2%로 이민가는 사람2명 가운데 한명꼴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외무부(현 외교통상부)가 역이민현황을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80년에는 역이민자수가 1천49명이었다. 전체 이민자 3만3천여명의2.8%에 지나지 않는 수치였다. 이러한 상황은 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해마다 약간씩 늘어나긴 했지만 2백~3백명 느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부터 상당한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89년에는 역이민자가 한해동안 전년에 비해 무려 2천여명이나 증가하기도 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이러한 U턴현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92년의8천8백92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도 96년의 6천8백여명에 비해 6백여명 줄어든6천2백60여명이 역이민 형태로 국내에 다시 돌아왔다. 특히 국내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올해는 역이민자수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20% 가량 줄어든 불과 3백66명만이 U턴을 한 것으로집계되고 있다.역이민자수를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히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엄연히 역이민자는 존재하고 또 그 숫자도 한해 6천여명을 헤아린다. 그냥 팔짱만 낀채 바라보기에는 너무 많은 수치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한때 기회의 땅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속속 다시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기회의땅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일까.역이민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정체(?)를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역이민자들이 누구이고 왜 U턴을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까닭이다. 국내에서 이민이 극성을부렸던 시점은 지난 70년대말~80년대 초반이다. 당시 국내 상황은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특히많은 사람들이 폭압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 무렵 소위 엘리트 계층들이 희망을 찾아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못할 정도였다.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라 국내에서 살기가 힘겨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천지를찾아나섰던 것이다.외국에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향수병이다.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풍요롭게 살지만 가슴 속에 사무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다. 이들 가운데는 60대 전후의 노인층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5년전 큰 아들을 따라 미국 LA로 이민 갔다가 지난해 10월 상계동에 사는 막내아들집으로 돌아온 양모(67) 할머니는 너무 쓸쓸해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며 요즘은 아파트단지의 노인정에 나가 여러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맛이 꿀맛같다고 소개했다.◆ 이민 2세들도 역이민자대열 참여U턴의 또 다른 유형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고무돼 기대감을 안고 들어오는 경우를 들수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외국에서 사업을 하다 망했거나 직업이 변변치 못해 한국을 제2의 기회의 땅으로 보고들어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은 최근 IMF의 영향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5년 동안캐나다에 살다가 지난해 8월 한국에 재차 뿌리를 내린정모씨(45)도 비슷한 케이스에 속한다. 밴쿠버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던 정씨는 과당경쟁으로 점포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서울행을 결심했다. 다행히 점포 하나 낼 돈은 남아있던 터라 곧바로 구로동에세탁소를 차리고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역이민자 가운데는 이민 2세들도 다수 끼여 있어 눈길을 끈다. 대부분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대학 이상을 마친 이들은 전문지식으로 무장, 국내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변호사 혹은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2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이민컨설턴트 조덕기씨(31)는 이민 2세 중에는 기회만 닿으면 한국에들어가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아직은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아 실제로 한국행 티켓을 손에 쥐는2세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외국인 상대 케이블TV인 아리랑텔레비전의 공채에 1백여명의 이민2세들이 몰렸던 것도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유명인된 역이민자들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역이민자들이 적지 않다. 오랫 동안의 외국생활에서 익힌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분야에서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그야말로 맨손으로 출국했다가 금의환향한 케이스가적지 않아 이민 희망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우선 꼽을 수 있는 유명 역이민자로는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종근 전북지사를 들수 있다. 현재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유지사는 대학 졸업후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박사학위를 받은 후 럿거스대 교수 등으로 생활하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으로 20여년만인 90년대 초 귀국,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지사는 오는 5월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다시 전북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당인 국민회의의 실세로 꼽히는 유재건, 김한길 의원과 역시 국민회의 출신인 박지원 청와대 공보수석도 한때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역이민자들이다. 유의원은 68년 유학길에 올라 공부를 마친 다음 현지에서 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다 20년만에 귀국했고, 김의원은 미국에서 현지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이민생활을 하다가 7년만인 87년 돌아왔다. 박공보수석은 약간 색다른 경력의 소유자로 미국에서 가발과 액세서리 무역업을 해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뉴욕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84년 정치에입문하면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요즘 방송가에서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는 KBS-1TV <심야토론 designtimesp=7770>의 사회자 박원홍씨도 19년간 미국물을 먹은 역이민자다. 기자 출신인박씨는 75년 국내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다음 4년전 다시 한국으로 컴백, 정열적으로뛰고 있다. 박씨는 최근 TV CF에도 심심치 않게 얼굴을 비치고 있다.이밖에 역이민자 가운데 한국무대에 성공적으로 재입성한 인물들이적지 않다. 특히 대학교수나 의학분야의 권위자 가운데 이민경력을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 최근에는 연예계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민 2세나 역이민자들이상당수 포함돼 있어 바야흐로 국제화시대를 실감케 하고 있다. 현대이주공사에서 이민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린다윤씨는 성공한역이민자들은 대부분 아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사람들이라며 이는 오랜 외국생활에서 터득한 생활방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