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은 잘 잡은 것 같은데 아직 눈에 띄는 개혁이 없다.』 『어떤 건 되레 거꾸로 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부실 대기업에 대한은행들의 협조융자가 대표적인 예다.』 『개혁의 순서도 잘못 됐다.구조조정은 정치권-정부-은행-기업 순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 개혁이 더딘 곳이 정치권과 정부다. 구조개혁은 오히려반대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직후 한국의 새 정부가 과감한 개혁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기대하며 반겼던 외국인들이 지난 1백여일간의 개혁과정을 지켜 보고 나선 다시금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아직 한국에선 뭔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는 반응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의 구조개혁에 대해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대대적인 외국인 투자가 재개되지않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조급해진 정부가 외국인의 적대적M&A(기업인수합병)를 즉각 허용하고 국내 부동산 시장도 완전히열어 제쳤지만 외국인들은 여전히 신중한 관망 자세다.이런 외국인들의 태도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한 외국기업인 5백여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잘 드러나 있다.『한국의 투자여건은 동남아 보다도 못하다.』(응답자의 57.1%)『가장 큰 투자저해 요인은 행정규제다.』(40%)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에 대한 국민들의 배타적인 감정도 심하다.』(67.1%). 한마디로IMF이전이나 이후나 한국은 바뀐 게 별로 없다는 결론이다.더 큰 문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정부의 말을 불신하기 시작했다는점. 『한국 정부는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선 살리고 보자」며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 등을 아끼지 않았다. 도산했어야마땅할 금융기관들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한 외국증권사 간부)◆ 위기극복은 결국 한국 자신의 선택물론 외국인들은 한국경제에 대해 궁극적으론 낙관한다. 『한국은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높은 수준의 인적 지적 자산을 갖고 있다. 멕시코 칠레 등 중남미 국가와 비교해 봐도 경제의 기본 축이튼튼하다. 지금의 위기를 누구보다도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자질을갖추고 있는 셈이다.』(로버트 호매츠 미국 골드먼 삭스 부회장)하지만 외국인들은 강조한다.『10년 가까이 IMF체제로 허덕인 남미의 전철을 밟느냐, 아니면 힘들더라도 짧게 고통을 끝내느냐는전적으로 한국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지금 보다 빠르게 실질적으로 구조개혁을 단행한다면 내년 하반기부터 한국경제는 회복될 수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회생엔 몇년이 더 걸릴 것이다.』(스티브 마빈 쌍용투자증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