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비 넘겼지만 아직 살 얼음판IMF구제금융 이후 한국의 외환사정은 점차 호전되고 있긴 하다.지난해말 국가부도(모라토리엄)위기에 몰려 가슴 졸였던 사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1월28일 뉴욕외채협상타결에 따라 해외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를 만기 연장하는데 동의해줬기 때문이다.지난 3월17일 최종 집계된 만기연장 신청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환기일이 돌아오는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만기 1년미만) 2백26억4천1백만달러중 96.5%인 2백18억3천9백만달러가 만기 1~3년의중장기로 전환됐다. 우리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는 조건이긴 하지만당초 예상보다는 높은 만기연장률이다. 김대중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당국자들도 대단히 흡족해하는 기색이다.외환위기 이후 해외로부터 엄청난 단기외채 상환압력에 시달려왔던한국이 일단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지난해말 88억5천만달러로 주저앉았던 가용 외환보유고(국내은행 해외점포예치금을 제외한 금액)도 이달들어 2백억달러를 넘어섰다.그러나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한국경제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우선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의외채가 너무 많다. 지난 1월말 기준으로 총대외지불부담 1천5백12억달러에 국내기업과 해외현지법인이 외국 금융기관에 진 빚(3백24억달러)까지 합하면 총 외채는 1천8백36억달러에 달한다. 한해 이자만도 1백14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금융기관의 단기외채 2백18억달러가 만기연장됐다고 해서 위기를완전히 모면한 것처럼 좋아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말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급으로 떨어뜨려 놓았던 무디스사와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의 시각은 여전히 냉정하다.단기외채의 성공적인 연장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국가신용 등급을 높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여전히 투자하기에는 불안한 나라라는 인식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재정경제부의 정덕구 차관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해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낙관은 절대 금물』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어느정도 상태라야 한국이 외환위기를 해소했다고 말할수 있는가.체이스맨해턴은행 서울지점의 이성희부장은 『당장은 외환보유고를확충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그 뒤에 외채규모를 줄이면서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규차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각부문의 개혁을 더욱 가속화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그렇게 해서 달러를 끌어들인 다음 외채 규모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시각엔 재경부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외환보유고 전망정부는 올해 외환보유고 최소 적립목표를 4백7억달러로 잡고 있다.그러나 총외채 규모를 감안할 때 연말까지 5백억달러 이상은 돼야어느정도 안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3월이후 올 연말까지 정부의 외화조달계획은 다음과 같다. 우선 △IMF 등 국제기구와 서방 선진국들로부터 1백87억달러를 차입하는것을 비롯해 △경상수지흑자 80억달러 △증권및 채권시장에 해외자본유입 70억달러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90억달러 △민간금융기관 신디케이트론 30억달러 등 모두 4백57억달러의 외화를 끌어 들인다는 것. 그러나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의 외채원금 상환부담은 2백2억달러로 예상돼 지출분을 제외한 외화 신규 유입규모는 2백55억달러 정도로 전망된다. 3월13일 현재 2백5억달러의 가용 외환보유고에 2백55억달러를 더하면 연말 가용 외환보유고는 4백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이렇게 보면 일단 정부의 적립 목표치는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0억달러로 책정된 경상수지 흑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과 2월의 경상수지 흑자만 합해도 이미 80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재경부의 김석동 경제분석과장은 『개인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1백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지만 2백억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올들어 자본시장 개방 이후 지난달까지 40억달러가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확인돼 연말까지 해외자본유치 목표치 70억달러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연말 외환보유고는 5백억달러를 훨씬 넘어설 가능성도 점쳐진다.다만 변수가 있다면 국내기업과 해외 현지법인의 해외 현지금융이다. 이 규모는 3백26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롤오버(상환기간 연장)비율이 70%선을 넘어서고 있지만 국내 시장환경의 변화나 기업들의 개별적인 여건에 따라 외화수급이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이 때문에 해외 현지금융의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 위앤화의 기습적인 평가절하에도대비해야 한다. 만약 위앤화 절하가 현실로 닥칠 경우 한국경제에미치는 파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외환위기 극복 계획이 수포로돌아갈 수도 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질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차입 언제쯤 가능할까정부는 이달말까지 해외시장에서 30억달러 규모의 외평채를 글로벌본드 형태로 발행한 뒤 4월부터 일반은행들을 중심으로 신디케이트론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발행조건과 금리가 문제이긴 하지만일단 성사되면 추가적인 차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 차입의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및 개별 금융기관의 신용도가투자적격 등급으로 높아져야 한다. 무디스나 S&P사는 한국 금융기관들의 신디케이트론 도입을 전후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가능성이 높아 전망이 그리 비관적이진 않다.그러나 개별 금융기관의 신용도 향상은 그다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의 국내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미달해 있고 거래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떠안은 부실채권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 우량 은행들을 제외하고는 신인도 개선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결국 금융기관이스스로 구조조정에 성공하지 못하면 신규 차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외채 축소방안외채를 줄이는 방안은 뾰족한 게 없다. 지속적으로 경상수지를 늘리고 해외 자본유치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선 산업연구원(KIET)원장은 『수출형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외에 부품 플랜트 등에 있어서 수입대체형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대만의 경우 중소기업들이 수입대체 물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해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또 기업 인수합병(M&A)과 부동산 등의 분야에 외자를 유치하는것도 외채를 줄이는 유력한 방안이다. 김대통령도 『부동산을 판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땅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라거나 『일본에 진출한 IBM현지법인은 일본기업이지,미국기업이 아니다』라며 외국인 투자유치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외자유치를 위해서는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보다 시급히 진행돼야한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또 외국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도 가라앉혀야 한다. 정부가 나서 각종 행정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야만 국내 기업이나 부동산도 제 값을 받고 외국인에게 팔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