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Big Bang)과 빅딜(Big Deal).」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금융계와 산업계를 강타한 화두다. 빅뱅이란용어는 물론 IMF(국제통화기금)시대 이전부터 유행했다. 다만그땐 자발적 구호 정도였다. 일종의 선택사항인 셈이다. 그러나IMF가 엄습하면서 빅뱅과 빅딜은 구조개혁의 필수과목이 됐다. 이젠 그 둘이 생존의 과제처럼 여겨진다.이중 빅딜은 미흡하지만 조금씩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가 있었다. 대상그룹은 알짜배기 라이신사업을 6억달러를 받고 외국기업에 넘겼다. 정부가 원하는 사업 맞교환은 아니지만 「큰 거래」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빅뱅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소리만 요란하다. 빅뱅은 통상금융대개혁을 지칭한다. 요즘 말로 금융산업 구조조정 쯤으로 보면된다.빅뱅이 지지부진한 것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금까지 「구조조정」된 금융기관은 15개다. 삼삼 한화 등 12개의 종금사가 문을 닫았고 고려증권은 부도를 냈다. 동서증권은 영업을 중지했다. 신세기투신도 영업정지됐다. 일견 많다고 보면 많은 숫자다. 그러나 여기서 시장을 조금만 더 관찰하면 사정은 그렇지 않다. 리스사는 대부분 요즘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연명한다. 영업중인 종금사도 허덕이는 곳이 많다. 은행도 부실한게 한두개가 아니다. 투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버텨 나간다. 이상한 일이다.◆ 구조조정은 ‘공자님 말씀’이유는 간단하다. 정부는 고객예금에 대해 2000년까지 한시적으로원리금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금융혼란기에 있을 예금자들의 불안심리를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부실 금융기관들이 이 기회를 놓칠리 만무하다. 예금을 빨아 들이고자 너도나도 금리를 올렸다. 원리금도 보장되고 금리도 높고, 더구나 만기 3개월 수준의 단기다. 고수익을 좇는 시중부동자금은 「얼씨구나」했다.부실 금융기관들은 늘어난 예금 덕분에 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이 와중에 금융시장은 한마디로 「개판」이 됐다. 고금리 수신은고금리 대출로 이어졌다.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패거리로 이동했다. 이들에게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공자님 말씀일뿐이었다. 적자생존의 시장논리는 자취를 감췄다.이런 상황에서 어느 금융기관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전력을 다하겠는가. 선진국에선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대량감원 또는 합병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국내에서도 최근 합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강원은행은 현대종금과 합병하겠다고 했다. 대한종금은 동방페레그린과 짝짓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합병다운 합병이라고 볼수 있을까. 집안끼리 합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기관도 생존차원의 합병을 「검토중」이지 않다. 단지 선진국 사례를 「연구」하고 있을 뿐이다. 합병을 통한 대형화, 경쟁력 강화는 안중에도 없다.마땅히 합병주체도 없다. 특히 은행이 그렇다. 은행장은 임기만 채우면 된다. 합병같은 골칫덩어리를 감당할 엄두조차 못낸다. 여기에는 원초적으로 대량감원을 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한다.은행들은 올해초 일제히 명예퇴직이란 걸 실시했다. 1만2천여명의은행원들이 명예퇴직 딱지를 달고 은행문을 떠났다. 사상 유례없는일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흑자 은행도, 적자 은행도명예퇴직자들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퇴직금을 두둑히 집어줬다. 기본 퇴직금 1억5천만원에 특별퇴직금 1억5천만원을 더 챙겨줬다. 인건비가 은행수지에 그렇게도 부담이 된다고 해놓고선 말이다. 「주인없는 돈」이라고 함부로 막 썼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은행 구조조정을 기대하기란 부지하세월이다.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단행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는게 세간 중론이다. 자구라곤 하지만 내놓는 메뉴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결국 외부에서 칼 들이대금융개혁이 가시화되지 않으면 제일 서울은행의 매각도 어려워진다. 투명성과 개혁만이 외국인들 입맛을 당길 수 있어서다. 정부와 IMF가 가만 있을리 없다. 채찍을 들었다. 은행감독원은 지난달말 12개 은행에 대해 경영개선 명령을 내렸다. 대상은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에 못미치는 은행들. 개선명령을 받은 은행은 4월까지 경영정상화 계획을 내야한다. 그리고 6월말까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지 못한 은행은 폐쇄 종금사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죽는다는 각오로 자구해야 비로소 목숨이 보장된다.IMF도 가세했다. 은행들은 당초 지난 2월말까지 부실채권 상당부분을 성업공사에 팔기로 했다. 지난해말 현재 26개 은행들의 부실채권(무수익여신)은 22조6천억원. 총여신 3백75조4천억원의 6.0%다. 은행엔 최대 애물단지다. BIS비율을 갉아먹는다. 은행의 대외이미지도 실추시키는 주범이다. 그러나 IMF가 제동을 걸었다. 자구계획을 승인받은 은행에 대해서만 부실채권을 사주라고 가로 막았다.확실한 갱생의지가 있을 때만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침이었다. 비장의 카드였다. 내부로부터 싹트는 게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칼을 들이 대 구조조정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4월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출범한다. 금융개혁 작전사령관 이헌재금감위원장은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은행장과 임원의 임기는 없다』『부실 금융기관은 퇴출시키겠다』등등.새정부로부터 기업 구조조정 완수란 임무를 부여받은 은행들이 자신의 체질은 어떻게 바꿀지 외국인들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