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두워 널 볼 수 없으니 불을 밝히라」는 것이 우리가 얘기하던 투명성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투명성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수년간 목청을 높였고 이제는 많은 주장들이 실제 입법화되고있다. 우선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회계기준의 선진화, 공시제도의 개선, 감사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제고하는 선임절차, 외부감사인과 기업내 회계업무담당자의 책임 강화 등은 모두 직접적인 투명성정책이다. 그 밖에 소수주주권의 강화나 사외이사의 도입과 같은지배구조조정책도 주주와 사외이사의 감시 견제능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영투명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이다.물론 아직도 우리네 기업현실은 더 밝게 비추어야 할 측면이 있고제도적으로도 문제가 남아 있다. 아무리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한들기초자료가 부실하면 결국 결합된 자료도 부실하므로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외국과 같은 연결재무제표가 아니라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의 현주소 때문이지만 앞으로 사실상 지배관계의 규명이 더욱 어려워질 현실을 생각하면 결합대상 계열사의 범위는 두고두고 말썽이 될 것이다. 또한 상호채무보증이 해소되면 결합의 실효성도 많이 사라진다. 이런 저런이유로 결합재무제표에 대한 과잉기대는 금물이다.회계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생각해 봐도 제도를 바꾸는 것은 오히려 쉽지만 공인회계사와 기업주의 양심을 바꾸는 것은 더 어렵기때문에 이 목표가 결코 하루 아침에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고민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와 남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투명성이라는 갈 길은 정해졌고 우리가 이미 그 길로 들어섰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작 지금부터 기업투명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문은 「도대체 어디까지 투명해야 하는가?」일 것이다.최근 많은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일부 소액주주 혹은 이들의 대변자들이 강화된 권리를 바탕으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주식회사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우리가 지향하는 기업지배구조는 그 구체적 형태가 무엇이든 작동원리만큼은 더 이상 정부가 아니라 시장, 주주, 채권자가 경영을 규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최근의 한국판 주주행동주의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경영자들도 이제는 주주에게 책임지는 경영을 확립한다는 뜻에서 주주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고상법이 정하는 주주총회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열시간 이상 걸리는 주주총회라도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소액주주는 말 그대로 지분이 작은 주주에 불과하다. 1인1표의 민주적 운영이 아니라 1주1표의 주주적(株主的) 운영이 주식회사의 기본임을 상기할 때 경영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투명성이나 소액주주권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기업이 과거의 성과에대해서는 투명하되 전체 주주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민감한 기업비밀의 과다한 노출이나 경쟁전략의 수정은 방지해야 할 것이며이러한 견제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는 여타의 주주들이다. 기업민주주의(corporate democracy)라는 것이 법이 정하는 권리를 벗어나이념적 목표가 된다면 기업내에 적대적 관계를 초래할 뿐이다.마지막으로 행정기관이 경영정보를 공개할 때에도 법치주의가 준수되어야 한다. 예컨대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 등이 기업거래와 관련된 행정정보를 잘못 누설하여 기업에 손실을 끼친 경우에는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직권남용의 책임이 철저히 추궁되어야 한다.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너무 어두운 것이 문제였었다. 그러나 햇빛에 모든 것을 들춰내는 것이 좋다는 것도 현실과 괴리된 극단이요오만이 아닐 수 없다. M&A를 위해서 투명해야 한다지만 너무 투명하면 M&A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어두운 홍등에 비친 여인의 모습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둡고 붉기 때문이기도 하다. 침실의 조명을 애들 공부방 같이 밝힐 수는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