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일편단심 기술력 세계 정상「전광판이 없을 땐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지?」할 정도로 최근 몇년새 거리에는 전광판이 부쩍 늘었다. 비단 길거리 뿐 아니라 건물 옥상이나 벽, 실내체육관, 대형 운동장, 경마장,증권사, 지하철, 역, 공항, 부두 등 공공장소에는 거의 예외없이 전광 안내 및 광고판이 들어섰다. 목적과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가있기는 하지만, 전광판 내용도 단순 문자안내에서부터 수치·백분율 표시, 정지영상과 동영상 구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기술과 다양한 모습으로 시선집중을 유도하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이 전광판 시설물들의 거의 대부분이 순 국내 기술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국내 전광판 기술력은 「뜻밖에도」 세계 최고다. 국내 한 업체가 98 프랑스월드컵 주경기장의 전광판을 낙찰받은데서도 알수 있듯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도 전혀손색이 없다고 한다.(늘 그렇지만 일본은 제외)한국이 세계 정상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주변을 살펴보면 최소한 한개는 눈에 들어올 만큼 전광판 홍수속에 살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연간 대략 8백억원에서 1천억원 사이. 이가운데 삼익전자공업(대표 이재환)이라는 한 회사가 전체 시장의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막강한 점유율을 보이며 맏형 자리를 굳건히지키고 있다. 지난 69년 회사 설립 이래 오로지 한 분야에만 매달려온 전문기업이자 동종 업계 국내 최초의 업체로서, 이를테면 국내 전광판업계의 산 증인인 셈이다.◆ 88올림픽 공식공급업체로 지정삼익전자는 체육시설 전광판의 95% 이상을 제작한 것을 비롯해 증권사 전체 1천여개의 증권 시세판 가운데 4백개 이상을, 도로 교통안내 표지 등 시스템 안내판의 30% 이상을, 광고판의 10% 이상을각각 수주 납품했다.(이영대 기획담당 이사) 최근에는 잠실 야구장의 전광판을 전면 개보수, 화려한 총천연색 동화상이 구현되도록일신시켰다. 『전혀 새로운 잠실의 명물이 될 것』이라는게 삼익측관계자의 얘기다.체육 시설에 비해 다른 분야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까닭은 몇 개의주요 경쟁업체들이 상대방 영역에 침범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전문분야에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A사는 교통안내 시스템에강점이 있고 B사는 광고쪽에 주력하고 있으며 C사는 대기업의 계열사로서 그룹 수요를 담당하는 식이다.실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삼익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운동장이나 실내체육관 등 체육 관련 시설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삼익의성장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실 삼익이 사업을 벌이기 시작할 때인 60, 70년대만해도 국내 전광판 기술은 특정위치에 전구를끼워놓고 이를 켜거나 꺼서 문자를 표시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점수나 단순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에는 다른 기능을 나타낼 수 없었다.그러다가 80년대 초반 신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삼익전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맞는다. 신군부는 정권유지 방안의 한 축으로서 체육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운동장 건설 및 전광판 수요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86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은 삼익전자의 입지를 증진시키는 결정적 동인으로 작용했다. 선도업체로서 당시 기술력이 가장 뛰어난 삼익이 「88 서울올림픽 전광판공식공급업체」로 선정돼 돈과 명성과 기술력을 함께 쥐게 된 것이다. 우직하리만큼 한가지 사업에 묵묵히 정진해왔던 삼익전자가 그야말로 「고생 끝에 낙」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플랩방식 제품 생산 국내 유일삼익은 이어 과천 경마장에 풀 컬러(Full Color)전광판, 시청앞 옥상에 스펙터 컬러(Specta Color) 전광판 등을 잇따라 설치한다. 특히 시청앞 전광판은 국내 최초로 동영상 기술이 도입된 옥외 광고매체로서 그 파급효과가 상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전광판업체가 소자 개발 또는 외국 기술도입에 나서는 등 국내 기술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전광판을 구현하는 기술로는 발광 다이오드(LED)를 비롯, 형광램프(FL), CRT, 플랩(Flap) 등 여러 가지가 있다. LED는 지금 가장보편적인 형태로서 빛의 3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의 3색 소자(다이오드)를 혼합해 화상을 나타내는 기술이다. LED 방식은 수명이 길고 전력소모가 적으며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가시각도가 좁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자표면을 화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가시각도를 ±60도까지 넓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백열전구를 사용하는 FL방식은 전기 소모량이 많고 가격이비싼 대신 가시각도가 넓다(±70도)는 장점이 있다. CRT방식은 일본서 개발된 기술로서 수명은 짧으나 화면이 제일 선명하다. 하지만 가격이 LED의 1.5배에 달할 정도로 비싼게 흠이다. 플랩방식전광판은 공항이나 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으로 『차르륵』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도착·출발 안내판을 연상하면 된다. 사각형태의막대소자를 적절히 조합, 글자나 화상을 표현할 수 있으며 전기소모가 특히 적다는게 장점이다.플랩 방식 전광판을 생산하는 업체는 국내에서 삼익이 유일하다.삼익은 특히 지난 92년 12색으로 구성되는 칼라 플랩 전광판 개발에 성공, 세계특허를 얻는 한편 포항, 창원, 춘천, 대전 등 전국체전과 도민체전 개최지에 설치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방식은 동영상 구현은 불가능하지만 가시각도가 ±85도에 달해 소형 운동장 등에 적합하며 LED 방식의 3분의 1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다.삼익은 IMF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는 올해에도 전년 대비 20% 이상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예산 절감」이 모든 행동수칙의 최대 전제가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플랩 방식의 전광판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삼익을 기대에 부풀게 하고 있는 한 요소다.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오는 2002년의 월드컵 개최라고 할 수 있다. 『10개 경기장에서 최소한 경기 시설은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전광판만큼은 대폭 개보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이사)이기 때문이다. 「사업 다각화 같은 말은 우리회사 사전에 없다」는 삼익전자에, 86·88에 이은 또 한차례의 「기회의 장」이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