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리비아와 25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성명을 통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수도 트리폴리에 곧 미국대사관을 개설하는 등 양국간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라이스 장관은 성명에서 리비아가 지난 2003년 12월 이후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폐기했음을 지적하며 리비아는 북한, 이란과 같은 나라에 ‘중요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성명은 “2003년이 리비아 국민들에게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2006년은 북한과 이란 국민들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 북한과 이란에도 리비아에 적용했던 것과 유사한 정책을 펼칠 것임을 시사했다.데이비드 웰치 미 국무차관보는 리비아의 행동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과 평가를 거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미국은 1979년 트리폴리 주재 미국대사관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는 등 공격을 받은 뒤 80년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끊었으며, 이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등 장기간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다.특히 86년 미군 병사들이 많이 출입하는 독일 베를린의 디스코클럽 테러사건에 리비아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고 88년 270명의 희생자를 낸 팬암기 폭파사고에도 리비아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양국관계는 크게 경색됐다.미국은 이들 사건과 관련, 지난 81년과 86년 두 차례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다.그러나 리비아는 2003년 12월 미국과 WMD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으며, 이후 구체적인 핵무기시설 해체에 나서 관련시설들을 미국으로 옮겨 보관하는 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리비아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는 국제사회에서 이른바 ‘리비아식 모델’이란 새로운 핵문제 해결방식으로 꼽혀왔으며, 핵프로그램 폐기 후 외교관계 전면 정상화까지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리비아는 이라크의 WMD 프로그램을 이유로 미국이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자 다음 공격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그해 12월 미국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자진 폐기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분석돼 왔다.미국은 리비아와 WMD 폐기를 합의함에 따라 2004년 2월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으며, 그해 6월 이를 연락사무소로 격상한 데 이어 곧 정식 대사관을 오픈함으로써 외교관계 전면 정상화에 이르게 됐다.미국은 리비아와의 관계 정상화가 이란, 북한 등에 대한 외교적 압박이라는 점을 숨지지 않고 있어 이들 나라의 반응도 주목된다. 실제로 미국 관리들은 지난 2003년 리비아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리비아식 모델’이라며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 제시해 왔다.미국이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한 것은 WMD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한 것뿐 아니라 리비아가 석유부존량이 많은 주요 산유국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가다피 리비아 대통령은 69년 대령으로 근무하던 중 토후들과 종교인들이 다스리던 리비아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후 중동지역에서 유가상승을 처음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현재도 500만명이라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중동 정치권에서 ‘지중해의 사자’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따라서 최근 고유가로 인한 석유자원 확보 차원에서 미국이 리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서둘렀다는 분석이다.미 국무부는 리비아와의 수교와 관련, 팬암기 사건 희생자 유족들을 불러 그 배경을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으나 일부 유족들은 ‘석유 때문에 리비아와 수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한편 업계에서는 리비아와 미국의 국교가 정상화됨에 따라 석유매장량 세계 9위인 리비아의 석유생산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국제유가도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리비아가 그동안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석유생산 관련 신규투자를 거의 하지 못한 만큼 앞으로는 이 같은 투자가 재개되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김선태·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