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뉴욕.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는 빨간 우산을 배경으로시티코프 그룹의 존 리드회장과 트래블러스그룹의 샌포드 웨일회장은 시종 미소 띤 얼굴로 기자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세계최대 금융그룹의 산파역답게 기자들을 위해 여유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진촬영이 끝나자마자 자산규모 7천억달러의 세계최대 금융그룹인「시티그룹」의 탄생을 전세계에 알렸다. 시티그룹을 형성할 두주역중 하나인 시티코프그룹은 시티은행의 지주회사로 3천1백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또 트래블러스그룹은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인 살로만스미스바니증권 등을 거느리고 있는 복합금융그룹으로 자산규모는 3천8백70억달러다.양자의 합병은 세계금융시장의 지각개편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세계최대금융그룹의 탄생을 알린지 1주일만에 뱅크아메리카와 내이션스은행이 한가족이 되겠다고 발표한 것. 이들이 합치면 5천여개의 지점과 1만5천여대의 현금자동인출기 등을 보유한 미국최대은행이 된다. 97년말기준으로 4백53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지난 95년 8월 체이스맨하탄은행과 케미컬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세계최대은행인 체이스맨하탄은행을 2위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상업은행중 매출액 기준 7위와 9위인 뱅크원과 퍼스트시카고은행이합병한다고 밝혔다.◆ 수익률 극대화 전략의 연장최근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미국금융기관의 합병움직임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낮은 수익률에 고전하는 상업은행이 중심이 돼 투자은행과의 결합을 추진하는 형태로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강호병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80년대의 합병이 인건비나점포운용비를 줄이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현재의 움직임은 업무영역이나 업무지역의 확대 등을 통한 수익성 제고가 주목적이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경비절감차원의 소극적 차원이 아닌 수익극대화를 위한 공격적 경영이라는 설명이다.미국 상업은행들은 90년대 들어 수익성 향상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후 베이비세대들이 은행보다는 뮤추얼펀드 등을 통한 재테크를 선호하면서 영업영역이 급속히 감소한 것이다. 예들들면 80년미국민들의 금융자산중 상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37%였다. 뮤추얼펀드는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96년에는 상황이 완전히바뀌었다. 상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26%고 뮤추얼펀드는 무려18%로 급증했다. 9천포인트를 상회하는 주식시장의 호황으로 뮤추얼펀드의 수익률이 은행이자보다 훨씬 높아 뮤추얼펀드를 선호한다. 상업은행은 이같은 시장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투자은행과의 합병을 적극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체이스맨하탄은행이 메릴린치증권과의 합병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연유에서이다.영업비용 절감과 리스크부담능력의 제고요청도 대형화를 재촉하고있다. 합병은행들은 중복되는 지점이나 인원의 감축을 통해 영업비용을 감축하려고 한다. 케미컬은행은 지난 91년 7월 매뉴팩처스하노버은행과 합친후 80여개의 점포를 폐쇄했다. 그다음해인 92년에3천5백여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조직슬림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한후95년 8월 체이스맨하탄은행과의 합병을 다시 성사시켰다. 이후 6백여개의 점포를 폐쇄했고 전체 직원의 16%를 줄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모두 15억달러의 고정비를 줄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또 합병을 통한 자기자본의 대형화로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도 합병의 메리트다. 한국 동남아 등 이머징마켓의 불안정과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로 금융기관의 위험이 급증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대형화가 요청된다. 자기자본이 늘어나야 부실채권이 발생하더라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합병비용이 적은 것도 금융기관들의 합병을 촉발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80년대의 인수합병이 정크본드 발행을 통한 적대적방식(LBO) 위주였다면 최근의 합병은 주식교환 등 우호적방식으로이뤄지기 때문에 합병비용이 적다. 시티코프그룹과 트래블러스그룹간의 합병때도 트래블러스그룹주주는 새로운 지주회사인 시티그룹주식을 1대1로 교환한다. 시티코프 주주는 1대2.5의 비율로 교환한다. 이것은 시티코프그룹이 시장에서 트리블러스그룹보다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미국금융기관의 덩치키우기에 일본과 유럽금융기관도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세계금융시장의 주도권을 완전히상실하겠다는 위기의식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14일 하시모토 총리가 앞장서서 『국제금융계를 강타하고 있는 초대형 합병에 대비해 생존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일본금융업계에서는 부실채권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경영정상화를 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상업과 투자 은행간 합병이 대세유럽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는 프랑스의 보험그룹인 악사그룹, 스위스은행그룹인 크레디트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JP모건 등과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HSBC홀딩사도 미국의 JP모건이나 미국의 웰스파고은행 등과 합병논의를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유럽계 은행의 이같은 행보는 미국계금융기관의 메가머저가 계속될 경우 미국시장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시장 등에서 경쟁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유럽통화통합(EMU)으로 금융복합그룹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초대형의 복합금융기관이 한국에 직접 진출할 경우 국내금융기관은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은 국내금융기관이 제공하지 못하는 고급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이들은탁월한 금융상품개발능력과 자산운용능력으로 국내의 여유자본을끌어당길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과정에서 국내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심화될수록 외국계금융기관으로 이동하는 국내여유돈은 늘어날것이기 때문이다.이밖에도 정부의 거시경제운용에도 일정부문 영향을 미칠 것으로예상된다. 이들 복합금융그룹이 국내 채권시장에 대해 본격적으로투자하면 한국은행의 통화관리가 쉽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