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터널 빠져 나오는데 10년 걸려부의 불평등과 과도한 주식투자가 원인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마침내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던 뉴욕증권 시장이 붕괴됐다. 개장 30분만에 3백만주 그리고 폐장까지는무려 1천6백만주가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미국 각 산업을 대표하는 50여개 종목은 하루만에 50%나 급락했다. 은행 등 기관투자가들의 매수 공세로 부분적인 회복세를 보였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역부족이었다. 1차대전후 「신시대」라고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경제는 일순간 「대공황」의 암습한 터널로 접어든 것이다.대공황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시대와 경제학파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달라져왔다. 그렇지만 부의 불평등과 과도한 주식투자가 대공황을 가져왔다는데는 대체로 공감한다.당시 부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0.1%가 벌어들인 총소득은 하위 42%의 합계와맞먹었다. 또 상위 0.1%가 미국 저축의 34%를 차지했다. 나머지80%는 저축할 여유가 한푼도 없었다. 부의 편중으로 중하층의 구매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수요가 부족해서 시장에는 기업의 생산물량이 항상 넘쳐 흘렀다. 중산층과 하류층은 구매력의 부족을 신용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1920년말의 통계에 따르면 이들 계층은 자동차의 60%, 라디오의 80%를 신용으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연체금액도 1925년에서 1929년동안 13억8천만달러에서 30억달러로급증했다. 이같은 할부금융은 소비자의 지불능력이 상실되면서 금융기관 부실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과도한 주식투자는 대공황의 직접적 원인. 증권시장 관계자들 조차도 『증시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거품이 빠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실제로 1928년초반에서 1929년 9월까지 다우존스 지수는 1백91포인트에서 3백81포인트로 상승했다.이같은 상승폭은 투자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신용과 대주거래를 통해 자기돈의 몇배에 해당되는 주식투자를 할 수 있었다. 개인투자자들은 뮤추얼펀드 등을 통해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기업들도 증시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했다. 그러나 이같은 황금기도 한순간에 끝나고 말았다.1929년10월부터 같은해 12월말까지 단3개월만에 개인들이 입은 손실은 2백50억달러. 증시에서 돈을 모두 날린 개인투자자들은 소비를 줄여야만 했다. 소비감소는 기업들의 생산위축으로 연결됐다.1929년 10월부터 12월까지 공산품 생산량은 9%이상 줄어들었다.공장이 문을 닫자 실업자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1932년말까지 1천3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공장에는 재고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미국의회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수입품에 대해 무역장벽을 쌓기 시작했다.(홀리 스무트 관세법) 유럽 등해외교역국은 미국 수출품에 대한 구매력이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빌린 차관을 갚을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수많은 해외은행이나 업체가 지불유예선언을 했고 미국경제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걸었다.세계경제가 대공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무려 10여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