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간 순익 양극화 현상선진국에서는 자동차 판매량의 변화가 아주 미미하다. 많이 늘거나줄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 2월 일본의 신차 판매량은 놀랍게도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2%나 떨어졌다. 지난해 2월의 자동차 판매가 두달 뒤 시행될 고세율부과 조치 때문에 갑자기 늘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일본의 신차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지난 3월의 판매 사정도 2월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일본 회사가 유럽현지에서 만든 자동차들 덕분에 일본 자동차의 대유럽 수출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모든 업체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도요타 니산 혼다 미츠비시 마쓰다 등 일본의 5대 자동차 메이커 중 도요타와 혼다 두 회사만이 번영을 구가하는 정도고나머지는 수요감소에 품질저하, 판매량 감소, 경영부진 등으로 큰타격을 받아 생존자체를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자체 이익기대치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서도 도요타와 혼다는 지난달 31일로 끝난 97회계연도에 사상최대의순익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도 나머지 회사들에게는 남의 잔치다. 1년여동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온 니산은 최근이익이 예상치로 잡았던 1천억엔(약 7억7천4백만달러)에 훨씬 못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쓰다는 5년 연속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3월 미츠비시가 올해 예상적자가 1천1백억엔이라고 실토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처한 문제점은 일상적인 것과 주기적인 것,두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 일상적인 문제는 과잉공급으로 인한 것이다. 일본의 자동차생산량은 지난 90년 1천3백50만대로 최고조에이른 이래 점차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1천1백만대에 약간 못미치는 자동차가 생산됐다. 이처럼 수요가 줄어드는데도 일본 업체들은별로 개의치 않았다. 95년에 니산이 자마의 공장을 폐쇄했음에도93년에 도요타가 큐슈에 새 공장을 지었고 마쓰다도 같은해 히로시마 근교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국내에서만연간 1천4백만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수요가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의 고속도로상에서 체증에 시달려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일본은 지금 온통 차로 가득하다. 인구 1천명당 자동차가 791대인 미국에 비해 일본은 534대로 더 낮지만 일본보다 넓은 유럽국가들보다는 많다. 또 도로공간이 충분하지 않고주차공간도 부족하다. 여기에다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은 반드시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어 수요가 급격히 느는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주기적인 문제는 일본경제의 침체다. 지난 몇 년간 일본의 자동차수요는 90년대 초에 산 차를 신형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창출해왔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들은 암울한 경제사정과 자신의 일자리에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차는 사치일 뿐이다. 이때문에 신차 판매량은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96년에는 배기량600cc 이하의 초소형차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5백40만대만 팔렸다. 메릴린치의 전문가 다카키 나카니시는 올해는 자동차 판매량이더 줄어들어 4백80만대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국내 시장에서 부진을 면치 못할 때 일본업체들은 엔화 약세와 해외 공장의 자동차 판매에 힘입은 수출을 통해 약간의 숨통을 터 왔다. 일본은 자동차업계 전체로 본다면 계속 커지고 있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1/4 정도를 점하고 있다. 대유럽 판매도 역시 활발하게이뤄지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수출은 지난 2월 35% 증가했다.하지만 이것도 역시 도요타와 혼다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도요타의미국수출은 지난해 6.5% 늘었고 혼다는 12%나 증가했다. 이들 두회사는 미국에서 상당히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츠비시의 판매량은 아주 조금 늘었고 니산과 마쓰다는 줄어들었다. 특히 니산은 판매망이 붕괴위기까지 몰렸다.유럽에서 상황도 미국과 마찬가지다. 유럽 자동차업계는 과잉설비로 인해 일본과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다. 자동차 생산이 해마다4%씩 증가하는 데 비해 수요는 겨우 1.5% 증가에 그칠 뿐이다. 도요타와 혼다의 유럽 공장들은 가까스로 겨우 이익을 남기고 있지만니산과 미츠비시는 손해를 보고 있다. 일본업체들은 가격을 제외하고는 어느 면에서도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나카니시의 말이다.그렇다면 아시아 시장은 어떨까. 이곳에서도 사정은 좋지 않다. 최근 아시아 지역의 경제위기 탓에 자동차 판매는 거의 지리멸렬한상태다. 판매량이 절반만 유지돼도 일본업체들은 감지덕지해야 할판이다. 지난 2월 태국에서는 1만2천대의 자동차가 팔렸다. 그러나모건스탠리은행 도쿄지점의 투자분석가 스테판 포크만은 일본 자동차업체들에게 중요한 것은 판매량의 증감보다는 수지타산 여부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용 절감해도 경쟁력 좋아지지 않을듯일본업체들이 운영하는 아시아 지역 현지 합작회사들의 경영이 부실해질수록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은 또다른 자본을 투입하라는 거센압력에 부딪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기업들은 별 쓸모없는 자산과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된다. 실제로 태국에 있는 미츠비시의합작사는 이미 큰 어려움을 맞고 있다. 견실한 경영을 하는 도요타와 혼다는 아시아의 경제위기속에서도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업체들이 이미 거대한 부채를 떠안고있는 가운데서도 두 회사는 현찰에 아주 여유가 있다.(도표참조) 사실 혼다가 3월16일 태국 합작사에서 지분을 두배로 늘려 97%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한 것도 이런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회사들, 그 중에서도 미츠비시에게 아시아 시장은 큰 골치거리다.이처럼 아주 어려운 재정상태에 처한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안팎의 큰 관심거리다. 혼다와 도요타는내수시장의 침체를 해외에서 큰 이익으로 벌충할만한 여유가 있다.하지만 나머지 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을 만회하는 데 필수적인 신모델 개발을 위한 자금조달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미츠비시의 경영진은 비용절감은 신모델 개발에도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미츠비시는 앞으로 2,3년 동안은 신차를 선보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동안 여러 차례 신차를 내놨지만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한니산도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비용을 절감한다 해도 일본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쟁력이 나아지지는않을 것이다. 그들의 경쟁자들도 그들처럼 비용을 삭감하는 데 큰관심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쓰다는 이미 자체생산보다는 포드에 자동차부품을 공급하는데 더 큰 힘을 쏟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어느 시기가 되면 미츠비시는 소형차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 현지공장을 폐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강점이 있다고 여겨지는 트럭과 튼튼한 여가용 차량 제작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니산은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 큰 돈이 잠겨있는 니산은 아직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지만 재고 자동차들을 처분할 길이 없어 보인다.이들의 생존여부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전망이 엇갈린다. 마쓰다는포드라는 거대한 후원자를 갖고 있다. 포드는 니산 주식의 1/3을보유하며 회사를 통제한다. 미츠비시는 계열사인 도쿄미츠비시라는큰 은행에서 지원하고 있다. 미츠비시는 이 은행으로부터 싼 값에대출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츠비시가 이대로 계속 어려워진다면 10여년전에 분리돼 나온 미츠비시중공업에 통합될 것이라는예측도 있다.가장 큰 의문은 니산의 장래다. 니산은 위기에 빠진 푸요그룹 계열사 중 하나로 다른 회사들에 비해 든든한 버팀목이 없다. 그룹의중심은행인 일본산업은행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정부는 니산이너무 커서 쓰러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니산은 4만1천명정도를 고용하고 있고 거래업체들에게도 많은 일감을 주고 있다.그러나 그룹내에 부실한 큰 회사들이 많아 그룹차원에서 이들 모두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니산의 운명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