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의 전주곡이다」, 「그래도 해고는 아니니까 훨씬 인간적이다」.무급휴직을 둘러싼 양론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봉급을 주지 않고 무조건 쉬라는 것은 해고를 위한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해고하거나 쉬지도 못하게 하면서 일방적으로 봉급을 깎는 것보다는 무급휴직이 훨씬 더 직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무급휴직은 직원들에게 1개월∼1년가량 봉급을 주지 않고 쉬게하는제도. IMF의 영향으로 불황이 극심해지자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생각해낸 묘안이다. 올초부터 한 두 기업이실시하기 시작하면서 최근들어 업계에 급격히 퍼지기 시작했다.기업들이 무급휴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리해고의 경우직원들의 생계수단을 완전히 차단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인정상」 섣불리 시도하기 힘든 면이 많은데다 법적으로도 걸리는 부분이 많다. 반면 무급휴직은 인건비 절감 효과도 적지 않은데다 일정기간을 휴직하게한 후 다시 복직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인정상」으로나 「법적」으로나 걸리는 부분이 훨씬 적은게 사실이다.「안식 휴직제도」란 이름으로 올 1월부터 무급휴직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IMF의 영향으로 사업규모가 축소돼 인력에 여유가 생겨 휴직제도를 실시하게 됐다』며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1개월∼1년가량 봉급을 지급하지 않고 쉬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팀별로 전체 직원의 20%이내에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정리해고의 전단계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3월말까지 1천6백여명의 직원들이 무급휴직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의 홍보담당 조영석씨는 『무급휴직 기간동안 직원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 운영하고있다』고 밝혔다. 외국어와 정보통신, 전통문화 등에 대해 다양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기계발 코스를 봄학기와 가을학기로 나눠 운영하는가 하면 한달에 한 번씩 휴직자들이 모여 봉사활동도하고 체육대회도 벌이는 라이프파워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또 복직 일주일 전에는 직무 전반에 대해 적응훈련을 받는 복직전 교육코스도 진행시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휴직자 위한 프로그램 운영현대정보기술의 경우 올 3월부터 무급휴직을 실시하고 있는데 아시아나 항공처럼 희망자 우선으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3천2백명 전직원이 의무적으로 1개월씩 휴직을 하도록 하고 있다. 경영지원본부 홍보팀의 최상기씨는 『희망자를 받을 경우 주위 눈치를 보면서지원하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전직원이 내년 2월까지 무조건 1개월씩 쉬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부장이 휴직기간 중에는 무조건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한번씩은 쉬게되니까 『자리 보장도 되고 실제로 쉴 수도 있어 좋은 것 같다』는게 최상기씨의 설명이다. 현대정보기술의 경우 한달에 3백명씩 무급휴직을 하고 있는데 매달 약 4억원 정도의 인건비 절감 효과를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휴직 기간 동안에도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개인연금 등은 회사에서 보조를 해주고 있다. 또 팀별로 자율적으로 한달에 10만∼20만원씩 기금을 모아 그 달의 휴직자에게 지급하는 계모임도 운영되고있다. 최상기씨는 『홍보팀의 경우 전체 직원이 6명인데 10만원씩걷어 그 달의 휴직자에게 50만원을 건네 주고 있다』며 『큰 돈은아니지만 휴직하는 달에 아무 것도 못 받는 것보다는 생계에 도움도 되고 정신적으로도 위안이 된다』고 휴직자를 위한 계모임의 장점을 설명했다.휴직기간 동안 휴직자들이 시도하는 일도 각양각색이다. 3월에 무급휴직을 다녀온 임성식대리의 경우 외국어 공부를 했고 이호석씨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임대리는 『좀 여유있게 쉬면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했는데 무급이긴 하지만 휴가를 얻으니 좋았다』면서 『한달이 생각한 것만큼 길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휴직자 생계 돕는 계모임도 생겨무급휴직이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직원들에게 상당한불안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금강기획의 한 관계자는 『IMF 이전에 무급휴직을 보내준다면 좋아라고 갔겠지만 솔직히 요즘은 휴직을 갔다온 후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게 사실』이라고 심정을 밝힌다.특히 이 관계자는 『현재 40명 가량이 1년 기한으로 무급휴직으로떠났는데 이 40명이 희망자 우선으로 선정됐다고는 하지만 강제성이 전혀 없었다고도 할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박모부장은 회사로부터 무급휴직 권고를 받자 『이전부터 회사를 옮길까 했는데아예 전직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휴직기간 동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일하면서 여행도 할수 있는 제도)를 떠나려고 계획 중인김모씨도 인터뷰를 거절하며 『좋은 일도 아닌데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금강기획의 경우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한 것도 아니고 극히 일부의 인원을 1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동안 휴직시키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심한 것 같다고 광고업계는 분석한다. 금강기획측은 업무가 단절되기 때문에 한 팀의 인원들이 1∼3개월씩 돌아가면서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같은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도 올들어 남성에게 3∼6개월의 육아휴직을 허용하는가 하면 자기 계발을 위한 연수 휴직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신청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일기획 홍보팀의 김형근대리는 『휴직기간 동안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복직은 완벽하게 보장한다고 해도 현재까지 육아휴직을 신청한 남자 직원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연수휴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대리는『매년 1∼2명씩 자기 계발을 위해 연수휴직을 신청했는데 올해는가겠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샐러리맨치고 「한번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시대가 어려워 강제로 쉬게 되니 「그래도 매일 내 자리를 확인해야지 안 그러면 불안하다」는게 IMF시대샐러리맨들의 심정이다. 하루에도 1만명씩 직장을 잃고 실직자로거리에 내몰리는 상황에 장기 휴직이라는게 선뜻 마음에 들 리가없다. 그럼에도 무급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직장인들은 한결같이 『무급휴직이 회사도 살리고 직원들도 사는 「공생」의 한 방법인 것같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예 「목줄」을 뺏는 정리해고나 아무런보상없는 무조건식 임금 삭감보다는 무급휴직이 회사와 직원들이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급휴직 알차게 보내기사내 도약파 : 한마디로 말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파다. 「내 뼈를 묻을 곳은 이 회사 뿐」이라는 일념으로 무급휴직 기간에도 회사 내에서 더 인정받고 사내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노력하겠다는 「불굴」의 「사내 야망파」다. 사내 도약파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한 가지는 공식적으로 무급휴직 기간인데다출근을 한다 한들 월급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사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회사가 어려워서 공식적으로는 휴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출근을 안하면 회사 일이 진행되겠나」하는 심정으로 하루에 단 몇시간이라도 회사에서 보내다가 집에 들어간다. 이런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주로 중간 관리자에40대라는 점이 특징. 30대 사내 도약파들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실력 뿐」이라는생각으로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거나 어학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회사내 규정상 승진이나 봉급에서 인센티브를 얻을수 있는 자격증이나 시험을 적극 공략한다.진로 모색파 : 「무급휴직을 한다니 곧 정리해고 소리가 나오겠군」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IMF시대에 믿을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할 경우에 대비한다. 단순하게 자격증을 따거나 어학공부를 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기도 하지만 창업 아이템을 찾는다거나 자신의 경력으로 옮길 수 있는 다른 직장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서 단기전에 대응하기도 한다. 입사로 중단했던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고 골프 교습 자격증을 목표로 연습에 골몰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창업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휴직기간내 PC통신을 돌아다니며 구인란을 훑는 사람들도 있다.돈벌자파 : 「IMF든 뭐든 돈이 최고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휴직기간에도 계약직이든 아르바이트든 기회가 닿는대로 일을 하면서돈을 모으는 일명 「개미파」다. 돈벌자파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무급휴직 기간 동안에 정말로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느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는데 돈이나 벌지」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편의점이나할인점, 주유소 등 자기의 경력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수 있다면닥치는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기회가 닿아서 일하는 유형은 주로 자기의 경력이나 회사 내의 직책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프로그램 담당자라면 휴직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로 중소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일을 해주는 식이다.유대 강화파 : 「그 동안 시간이 없어 못 만나던 사람들에게 인사나 하지」라는 유형. 회사 업무로 소홀했던 친구나 친지 은사 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간단하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오랜만에 식사를한다든지 술자리를 함께 하며 회포도 푼다. IMF시대에 여러 가지「굴곡」을 겪으며 인간 관계에 대해 중요성을 절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등한히 했던 아내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족여행을 떠나는 등 「가정가꾸기」에 주력하는 경우도 많다.체력 보강파 :일을 하느라 허약해진 몸을 보강하는데 주력하는 유형. 「체력이 실력」이라는 생각으로 쉬는 기간동안 집중적인 운동을 통해 체력 보강과 건강 유지에 힘쓴다. 수영이나 헬스, 테니스등 매일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아예 암벽등반이나극기훈련 프로그램 등에 도전하기도 한다.쉬자파 : 「다 귀찮다, 쉬고보자」는 사람들. 무급휴직 기간이 1∼3개월인 경우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마음 편히 쉬면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며 별 생각없이 지내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계획없이 여유있게 취미생활을 즐기며 오랜만의 여가를 즐긴다.여행파 : 「여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배낭을 짊어지고무조건 떠난다. 항상 「방학이 있는 대학생은 좋겠다」는 생각을품고 있었는데 잘됐다는 심정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배낭여행을 선호하며 주로 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나는경우가 많다.★ 인터뷰 / LG애드 기획팀 임우영『처음에는 「이러다간 회사를 영영 그만 두는 것은 아닌가」라는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렇지만 선배들이나 부모님의 「재충전의기회로 삼으라」는 격려에 힘을 얻어 한달간의 무급휴가를 즐겁게보낼 수 있었습니다.』지난 2월 한달간 인도와 네팔을 배낭여행한 LG애드 기획1팀 임우영씨의 소감이다. 입사 2년차의 신출내기가 팀원중 첫번째로 무급휴직을 떠나면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이다. LG애드는 2월부터 IMF한파로 회사경영이 어려워지자 사람을 줄이는 대신 불요불급한 경비를줄이자는 차원에서 무급휴가제를 도입했다. LG애드 전임직원은 업무량과 팀별사정에 따라 장기(1년)와 단기(1개월)무급휴가에 들어가야 한다. 임씨의 기획1팀도 팀장을 제외한 10명이 순번제로 무급휴가를 실행하고 있다. 이같은 회사방침에 따라 임씨는 자신이 담당하던 진미식품과 대전의 동양백화점 광고를 선배에게 맡기고 한달간의 무급휴가에 들어간 것이다.임씨는 영어공부와 컴퓨터 학습 등을 놓고 고민하다 배낭여행을 선택했다. 배낭여행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특히인도와 네팔은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나라였다.왕복 비행기 요금과 체재 경비 등 모두 1백만원 정도가 들었다. 여행경비는 2월상여금으로 조달했다. 회사측이 정기급여는 지급하지않았지만 상여금은 평소처럼 지급했다. 인도에서는 봄베이와 델리등을 중심으로 여행했다. 네팔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을 돌아다녔다.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에서 5년간 근무한 현지 네팔인들을 만난 것. 네팔인은 임씨를 초대해 닭도리탕을 대접했다. 한국에서 배운대로 요리한 음식이 매우 맛있었다. 일본인 배낭여행객들과 만나귀국후에도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여행의 성과다. 이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여름휴가때는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임씨는배낭여행동안 인터넷을 통해 회사동료들에게 안부편지를 보낸 것이 인상에 남는다고 들려준다. 『조만간 찾아 뵙겠다』며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전송한 것.한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출근하니 전보다 힘이 샘솟는다. 3월초 1주일간의 광고 프리젠테이션이 있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임씨는 『무급휴직을 제일 먼저 떠나면서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어차피 맞아야할 현실이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면서 『무급휴가를 가야한다면 즐겁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