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지음/김홍신 의원 추천『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 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라팔라니가 엮은 <간디어록 designtimesp=7885>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우리들이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에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되자 장마에 갇혔던 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놓은 채 온 것이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어른거려 더 지체할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이 축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 너무 집착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도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것이다.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꾸면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 그건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백하지 않을 수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한다. 그래서 자기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인해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범우사 / 138쪽 /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