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현대아파트에 사는 김진숙씨는 세탁비를 아끼려 남편의 신사복바지를 물빨래했다가 낭패를 봤다. 바지가 쭈글쭈글해지고 줄어든 것. 아무리 다리미질을 해도 소용없었다. 고민끝에 제품을 구입한 부평공단내 미켈란젤로매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신선한충격을 받았다. 직원이 아무소리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준 것. 단지한마디만 덧붙였다. 『우리 제품을 많이 선전해 주세요.』 부평역앞 동아아파트에 사는 신경숙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편허리가 굵어져 멀쩡한 바지를 못입게 됐다. 새 바지를 버릴수도 없고 그냥 놔두자니 장롱속 공간만 잡아먹었다. 그녀도 매장을 찾았다. 무상으로 바지허리를 늘려주자 고마움은 말할수 없었다. 이들이 단골고객이 된 것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만날 때마다미켈란젤로 신사복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런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번져갔다. 인천 부천등 인근은 물론 목동아파트단지까지 퍼져 나갔다.미켈란젤로가 요즘같은 불황에도 잘 팔리는 까닭이다. 미켈란젤로는 세우실업(대표 황규인·49)이 만드는 신사복의 브랜드.세우실업은 「크게 많게 싸게 좋게」 라는 전략으로 급성장하고있다. 크게는 매장대형화, 많게는 품목다양화, 싸게는 제품가격인하, 좋게는 품질고급화를 뜻한다.황사장은 소비자중심의 서비스와 양질의 제품을 싼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전략을 철저하게 구사한다. 이 회사는 공장옆에 아울렛매장을 만든 최초의 신사복업체다. 이 매장은 지하1층 지상 3층 건평6백여평으로 신사복 단일매장으론 국내 최대규모.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볼수 있는 서구식 건물과 고급인테리어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매장엔 2백여가지 색상4천여벌의 남성복을 구비하고 있다. 사이즈나 색상이 다양, 어떤 디자인이나 색상도 고를수 있다.신상품이면서 가격이 절반에 불과한 것도 강점이다. 알뜰고객이 몰리는게 당연하다. 제일모직 경남모직등 최고급복지로 신사복을 싸게 만들다보니 가장 먼저 자사제품을 찾는 고객은 바로 회사 직원들. 또 이들은 새상품이 나오면 친인척에게 권한다. 미켈란젤로 매장이 IMF한파에도 월평균 5억원이상을 판매, 단일매장으로 손꼽히는 성과를 기록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주말에는 하루 매출 1억원을 넘길 때도 있다. 요즘엔 고객 요청에 따라 골프웨어 신사화 숙녀화 여성의류까지 취급하는 종합매장으로 변신했다. 아울렛매장으로 성공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사복업체들이 줄지어 이 매장을 찾았다. 구로공단내에 신사복아울렛매장이 많이 생긴 것은 미켈란젤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무엇보다 이 회사 최대의 강점은 철저한 서비스. 물건을 사건 안사건 다녀가는 고객 모두에게 음료수를 대접하고 사장이 직접 상품에관해 대화를 나눈다. 또 내집을 찾은 것처럼 푸근하게 대해준다.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매장에 보관하고 있던 우산을 빌려준다.매장을 찾은 고객의 인적사항을 파악, 전산에 입력시킨뒤 계절이바뀔 때마다 카탈로그등 신상품정보를 제공한다. 제품착용중 불편한 사항은 언제든지 무료로 수선해 준다. 이런 친절이 구전을 통해퍼져 1만명이 넘는 단골을 확보하게 됐다.◆ 신사복전문 아울렛매장 최초로 개장황사장이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2년. 중앙종금에서 근무하던 그는 월급쟁이 생활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 사표를 던지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분야는 그동안 눈여겨본 의류. 경공업은 큰 돈이들지 않는데다 한국적 특성에 맞는다고 파악했다. 40여명의 미싱사를 뽑아 신사복 코트 점퍼를 만들었다. 미국지역에 주문자상표를붙여 수출했다. 의류경기가 좋을 때라 시작후 큰 어려움없이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첫해 1백만달러를 수출했고 86년엔 6백만달러어치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이 오르고 사람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점차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돌파구로 찾은게 내수시장참여. 캠브리지 논노 모두스비벤디 등에 주문자상표 방식으로 납품하면서 동시에 고유브랜드를 통한 판매를 시작했다. 자체상표는 미켈란젤로로 정했다. 신사복 발상지가 유럽인만큼 유럽의 첨단기술을가미한 최고급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깔려 있다.막상 독자브랜드로 내수판매를 시작하자 어려운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내수는 수출과는 전혀 달랐다. 매장확보 재고부담 광고등 해결해야할 난제가 많았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대대적으로 자금을 투자할 수도 없었다. 생각해낸 것이 아울렛매장. 공장옆에 조그만 매장을 만들어 인근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자는 것. 대신 싸고 질좋은 제품을 만들면 잘 팔릴 것 같았다. 광고는 고객을 통해 구전으로 알리는 방법을 썼다. 가끔 신문배달 때 삽입되는 전단지도 활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내수진출 첫해 아울렛매장 판매액이 10억원을 넘었다. 지방의 대리점매장을 한개씩 확장, 여수 제주등 13개로늘렸다. 96년에는 본점격인 부평매장을 최고급 인테리어를 가미한대형매장으로 개조했다.『내수 진출당시엔 의욕에 넘쳐 직접 디자인도 하고 색상도 골랐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선택한 색상의 제품은 하나도 안팔리더군요. 그때 비로소 전문디자이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어요.』황사장은 상품을 자기 안목에서 디자인해선 안되며 철저하게 소비자 위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음부터는 디자이너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그대신 자신은 직원에 대한 친절교육에 정성를 쏟는다. 황사장이말하는 친절은 이런 것이다. 초일류호텔에 가보면 서비스맨들이 너무 가까이 붙어 부담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먼 곳에 있지도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든 부르면 쫓아와 거든다. 미켈란젤로 고객에 대해서도 절대 귀찮게 하지 않고 원하는 내용에맞춰 적절히 봉사를 하는게 품위있는 서비스라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야말로 고객을 늘리며 회사를 살찌우는 영양소라고 강조한다.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1만여명인 단골고객을 연내 2만명이상으로늘릴 계획이다. IMF위기를 계기로 신사복 내수판매가 줄고 대형거래선의 부도가 늘자 주문자상표방식에 의한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고유브랜드제품 판매를 늘려 올해 1백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황사장은 신사복업체들이 축소지향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4월말 서울 신림동에 새 매장을 개설하는등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032)515-1771~6